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20~21일 북한을 국빈방문해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정상회담을 한다. 시진핑 주석의 이번 방북은 2005년 후진타오 전 주석 방북 이후 중국 최고지도자로서는 14년 만에 처음인 데다 북·중 수교 70년을 계기로 이뤄지는 것이어서 의미가 작지 않다. 또한 김 위원장이 지난해 3월부터 지난 1월까지 4차례 방중하면서 시작된 북·중관계 복원 작업의 화룡점정(畵龍點睛)이 되는 셈이다.


지재룡 주중 북한대사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방북을 준비하기 위해 18일 서우두공항에서 평양행 고려항공 수속을 밟고 있다. 연합뉴스


주목되는 것은 방북 시점이다. 미·중 갈등이 전방위로 확대되면서 이달 말로 예정된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벌어질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시 주석 간 담판에 국제사회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한편으론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 1년을 맞아 김 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 간 ‘친서외교’가 재개되면서 장기 교착 중이던 북·미 협상에 모종의 변화가 감지되던 참이다. 그런 만큼 시 주석의 방북에는 우려와 기대가 교차한다. 시 주석이 트럼프 대통령과의 회담에 앞서 북·중 결속을 과시해 미국을 압박하려는 것 아니냐는 우려, 시 주석의 방북이 북·미 협상 재개의 마중물이 될 것이라는 기대다.


트럼프 행정부의 시선에도 복잡함이 감지된다. G20에서 시 주석을 압박해 미국에 유리한 무역합의를 이끌려는 구상에 ‘방북변수’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백악관이 17일(현지시간) 시 주석의 방북에 “우리의 목표는 북한의 최종적이고 완전하게 검증된 비핵화 달성”이라는 원론적인 논평을 하는 데 그친 것도 이런 속사정 탓일 것이다. 정부는 기대감을 표시하고 있다. 청와대는 17일 방북 발표가 나온 뒤 “시 주석의 방북이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 협상의 조기 재개와 이를 통한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 정착에 기여할 것”이라고 논평했다. 시 주석의 방북이 문재인 정부와 긴밀한 협의 속에서 이뤄진 것이라는 청와대 관계자들의 언급도 나온다.


18일 북한 평양의 한 상점에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악수하는 모습을 담은 기념우표가 진열돼 있다. 평양 _ AFP연합뉴스


시 주석의 방북은 한반도 평화에 기여하는 것이어야 한다. 결코 미·중 패권 경쟁을 위한 지렛대로 이용돼서는 안된다. 한반도 평화프로세스가 미·중 갈등에 휩쓸려 좌초하거나 부정적 영향을 받는 일은 용납할 수 없다. 한반도 평화와 비핵화 문제만큼은 미·중이 갈등을 멈추고 협력할 것을 당부한다.


시 주석의 방북을 시작으로 28~29일 일본 오사카 G20까지 열흘간 북·중, 미·중, 한·중, 한·미가 연쇄 정상회담을 여는 등 한반도를 둘러싼 정상외교가 숨가쁘게 전개된다. 그 결과에 따라 북핵 문제와 한반도 정세의 향방이 가려질 것이다. 한동안 작동을 멈췄던 한반도 평화프로세스가 재가동하는 기회가 될 수 있도록 정부도 집중력을 발휘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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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은 시시포스를 떠올리게 했다. 신들을 기만한 죄로 무거운 바위를 산 정상으로 밀어 올리는 형벌을 받는 그리스 신화 속 인물. 바위는 정상 근처에 다다르면 아래로 굴러떨어져 형벌은 영원히 되풀이된다. 북·미 협상도 9부 능선에서 갑자기 바닥으로 추락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항우의 가랑이 밑을 기어간 한신’ 소리까지 들어가며 만든 자리 아닌가. 그보다 한반도 평화의 소중한 기회가 무산된 것이 더 실망스럽다. 하지만 여기서 멈출 순 없다. 멈추는 순간 우리의 운명은 또다시 남의 손에 넘어갈 것이기 때문이다.


북·미 협상은 늘 오해의 게임이었다. 도발하면 언제나 미국이 움직일 것이란 북한의 오해, 제재하면 북한이 협상 무대로 나올 거란 미국의 오해가 합세해 진전을 막았다. 하노이에서도 이런 맹신이 진지한 협상을 방해한 듯하다. 마지막 기회였다면 트럼프가 일괄타결을 밀어붙이지 않았을 테고, 김정은은 회담을 연장해서라도 파국을 막으려 했을지 모른다. 회담을 낙관한 우리 정부도 진지한 성찰이 필요하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오른쪽)이 2월28일 오전(현지시간) 하노이 소피텔레전드메트로폴호텔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의 단독 정상회담 중 고개를 숙이고 있다. 두 정상의 2차 정상회담은 합의 없이 종료됐다. 하노이 _ AP연합뉴스


하노이합의 실패의 또 다른 요인은 미 국내 정치였다. 트럼프가 ‘빅딜’을 밀어붙인 것도 정치적 곤경을 타개하기 위해서였다. 미국은 2005년에도 6자회담에서 9·19 공동성명을 도출한 바로 다음날 마카오 방코델타아시아은행(BDA)의 북한 계좌를 동결했다. 대북 강경 노선의 조지 부시 정권이 마음에 들지 않는 공동성명을 파기하려 한 것이다. 비핵화는 무산됐다. 김정은도 다르지 않다. 2012년 2·29합의 직후 느닷없이 장거리 로켓 발사를 예고했다. 신생 세습 정권이 세를 과시하고 권력입지를 다지기 위해 합의를 희생양으로 삼은 셈이다. 


국내외 정치의 연계는 흔히 불신과 반목의 축적을 낳는다. 대화론자들이 물러나고 강경론자들이 득세하는 현상도 벌어진다. 추후 협상이 성사돼도 이런 현실이 발목을 잡기 십상이다. 30년 역사의 북핵 문제가 냉·온탕을 오가며 해결의 가닥을 잡지 못한 이유다. 북한의 장거리 로켓 발사 예고 당시 미 버락 오바마 행정부는 대북 대화를 포기했고, 상처받은 대북 대화파는 매파로 옮겨갔다.


국내외에서 존 볼턴 백악관 안보보좌관을 비난하는 말이 나온다. 하노이에서 다 된 밥에 재를 뿌려 판을 깼다고 보는 것이다. “재수없는 사람”이란 거친 표현도 등장했다. 그가 북핵의 고비마다 등장해 악역을 맡은 것은 사실이다. 제2 북핵 사태나 지난해 1차 북·미 정상회담 무산위기도 볼턴의 간여 속에서 발생했다. 그럼에도 그에 대한 비난에 100% 동의하기 어렵다. 그는 선제타격을 주장할 정도의 대북 강경론자이지만 하노이 협상을 망친 당사자가 될 수는 없다.


볼턴은 물속에 거대한 밑동을 숨긴 채 겉에 노출된 빙산 같은 존재다. 미국 행정부와 정치권, 주류사회에는 수많은 ‘볼턴’이 활동하고 있다. 어디 미국뿐인가. 하노이합의 실패에 반색한 일본 정치권과 한국의 보수 야당에도 ‘볼턴’은 존재한다. 이들은 남북 및 북·미 간 불신과 반목을 자양분 삼아 성장한다. 서정주 시인의 말을 빌리면 볼턴과 그의 ‘동기들’을 키운 것은 8할이 북한이다.


지금 북·미에 필요한 것은 행동으로 비핵화 의지를 증명하는 일이다. 구체적인 조치로 신뢰를 쌓고 그것을 토대로 다음 단계의 행동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하노이에서 얻은 교훈도 비슷하다. 평양은 핵폐기에서 실질적 진전이 없으면 제재타파 문제의 진전도 어려워진다는 것을 알게 됐을 것이다. 워싱턴 역시 북한의 행동에 맞춰 한반도 평화구축과 제재 해제를 추진하지 않고는 비핵화를 기대할 수 없다는 점을 깨달았을 것이다. ‘태생적 볼턴’은 아니라도 최소한 ‘변심한 볼턴’들의 마음을 달래는 효과도 거둘 수 있다.


북핵은 한반도 정세의 암덩어리이지만 그것을 제거한다고 해서 한반도 문제가 완전 해소되지 않는다. 이는 북핵이 없던 시기에도 한반도에 평화가 없었다는 사실에서 분명히 드러난다. 불신과 반목이 해소돼야 핵문제를 포함한 한반도 문제가 풀리고, 평화·번영의 땅으로 변신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북한과 미국 모두 시간이 별로 없다는 점이다. 북한 입장에서는 대북 제재가 일반 국민경제는 물론이고 통치자금에도 심각한 타격을 입히고 있는 상황을 오래 견디기 힘들 것이다. 미국으로서도 더 이상의 핵개발을 저지해야 화급한 이유가 있다. 지금 이 시간에도 핵프로그램을 돌리고 있는 북한의 핵탄두가 100기가 넘어가면 이른바 ‘최대억제’ 국가로 올라서고,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할 것인가 하는 전략적 문제에 직면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북·미 간 ‘간보기’는 이제 그만해야 한다.


<조호연 논설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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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개성공단 가동중단 조치를 발표한 지 10일로 꼭 3년이 됐다. 2016년 이날 박근혜 정부는 북한의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에 대응해 개성공단 가동중단 조치를 발표했다. 북한은 다음날 공단 폐쇄와 남측 자산 동결, 남측 인원 추방으로 맞대응했다. 입주 기업인들이 공장건물을 뒤로한 채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귀환하던 처연한 광경이 지금도 생생하다. 개성공단은 12년간 남북 경제협력의 성공 모델이자 남북 군사적 긴장완화의 결실이었다. 남과 북은 물론 국제사회도 남북 상생을 위한 모범적 사업으로 평가해왔다. 그런 개성공단의 폐쇄가 남북관계에 미친 충격은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였다. 

 

지난 3년간 박근혜 정부가 탄핵된 뒤 문재인 정부로 바뀌었고, 남북관계가 복원되면서 지난해 남북정상회담이 3차례나 열리는 변화가 있었다. 북·미 정상회담도 사상 처음으로 열리면서 한반도 정세가 대전환을 시작했다. 그럼에도 굳게 닫힌 개성공단의 문은 좀처럼 열리지 않았다. 기업인들이 시설 점검을 목적으로 방북하겠다고 정부에 7차례나 신청했지만 번번이 불허됐다.

 

이런 가운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간 2차 북·미 정상회담이 오는 27~28일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리는 것으로 확정됐다. 한반도 평화를 위한 중대 분수령이 될 이번 회담을 위해 스티븐 비건 미국 국무부 대북특별대표가 지난 6~8일 평양을 방문해 김혁철 북한 국무위원회 대미특별대표와 실무협상을 벌였다. 정상회담 합의문에 들어갈 비핵화 이행 조치와 미국의 상응조치를 집중 조율했던 것으로 관측된다. 방북 뒤 서울로 귀환한 비건 대표는 이번 방북 협의가 “생산적이었다”고 평가하면서 김 대표와 추가로 만날 것이라고 했다.

 

이번 북·미 정상회담에서 개성공단 재가동이 미국의 상응조치 목록에 포함될지는 현재로선 예단하기 어렵다. 개성공단 폐쇄는 한국 정부의 독자조치로 시작했지만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 매듭이 추가돼 풀기가 간단치 않은 점도 있다. 하지만 개성공단 재가동은 북한만큼이나 한국 정부와 기업인들도 희망하고 있음을 미국은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북한도 미국이 개성공단을 제재대상에서 풀어줄 명분을 제공해야 한다. 이번 북·미 정상회담에서 구체적인 비핵화 조치를 내놓는 것이 그 명분이다. 개성공단의 닫혔던 문이 활짝 열리는 날이 하루속히 오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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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봄 광활하게 보였던 북한 비핵화 공간이 겨울로 접어들면서 시야가 탁해지더니 갑자기 눈에 띄게 축소됐다. 판문점과 평양에서의 남북정상회담,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 등으로 훈풍이 돌던 한반도가 어느새 짙은 매연으로 채워지고 있다. 방치할 경우 한반도라는 공간 속에 사는 수천만명의 생명까지 위험해진다. 서둘러 매연을 빼내고 굳게 닫혀있는 공간도 최대한 열어야 한다.

 

북한 비핵화를 ‘북한 내 일체의 핵무기와 플루토늄·고농축 우라늄 등과 같은 핵물질의 완전한 제거 또는 국외 이전, 이와 관련된 재처리 및 농축시설 등의 폐기, 그리고 핵무기 제조 등에 관여한 과학기술자의 소개(疏開)’로 정의한다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임기 내에 비핵화를 달성하기란 불가능하다. 동네 이삿짐 옮기듯 핵무기와 핵물질을 이전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남북한 간 핵무기 비대칭성이 오랫동안 남아 있을 수도 있겠다는 불길한 우려가 결코 과장이 아닐 듯하다.

 

돌이켜보면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는 애당초 과욕이었다. 그래서일까. 조윤제 주미대사는 지난 11월 취임 1년 인터뷰에서 “모든 것을 협상 테이블 위에 올려서 큰 시간표 안에서 일괄적으로 타결했으면 좋겠다는 기대가 있었지만,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 것 같다”며 “70년간 쌓여온 불신과 적대관계가 하루아침에 신뢰 관계로 바뀌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조 대사는 영변 핵시설만이라도 서로 합의하고 뒤로 돌아가지 못하도록 잠금장치를 하자고 제안했다. 정부 내에 조 대사만 이런 시각을 갖고 있지는 않을 것이다.

 

러시아, 중국에 이어 미국의 세 번째 핵무기 위협국인 북한의 영변 핵 단지는 ‘주체 조선’ 핵무기 개발의 상징적 장소이다. 핵 관련 건물만 390개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지난 9월 평양공동선언에서 미국의 상응조치를 조건부로 영변 핵시설의 영구폐기 의사 표명에 한 걸음 더 들어가서 검증까지 받을 용의가 있다고 최근 보도됐다.

 

영변 내 원자로 및 관련 시설의 가동을 중단(shut-down)하고서 핵물질을 완전히 제거(closed-down)한 후에 주요 장비의 부품들을 제거하거나 작동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decommissioned)이 현실적 비핵화의 지름길이다. 다시 말해 영변 내 핵무기 제조와 농축 및 재처리 관련 시설을 없애고서 ‘(공원, 녹지용) 그린 필드’ 또는 ‘(해체 폐기물 저장소 용도) 브라운 필드’로 변경할 수만 있어도 획기적 진전을 이루는 셈이다. 영변 시설의 불능화만 달성할 수 있어도 트럼프가 언급한 ‘비핵화 20%’ 수준에 도달하는 미니 비핵화(mini-denuclearization)를 이루는 효과는 있다.

 

그럼에도 비핵화가 6·12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 이후 6개월째 이렇다 할 진전도 없이 피로현상을 지나 심폐소생술(CPR)이 필요한 시점에 이르렀다. 골든타임을 놓칠 경우 북·미관계는 물론 남북관계에도 재앙이다. 공교롭게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지난 11월 이사회 보고에서 영변 원자로에서 작업을 하고 있는 것이 관측됐다고 발표했다. 통일부 장관도 지난 4일 북한의 핵 활동이 완전히 중단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 모두 사찰단이 영변을 방문해야 확인 가능하다.

 

그러나 북한은 2009년 4월 IAEA 사찰단을 추방한 후 이들의 재방북을 일절 허용하지 않고 있다. 비핵화의 출발점인 사찰은 원칙적으로 서로 합의된 시설, 인력 등에만 국한되며, 핵무기 사찰은 IAEA 권한 밖의 일이다. 북한이 사찰관의 방북을 허용하더라도 이들이 마음대로 집 안 곳곳을 다니면서 딱지를 붙이는 집달리는 아니다. 무엇보다 북한이 군사시설까지 조건 없이 사찰을 허용할 리가 만무하다. 핵무기 접근은 김 위원장의 용단이 있어야만 가능한 일이다.

 

그렇다면 트럼프와의 진검승부를 앞두고 있는 김 위원장이 더 이상 좌고우면하지 말고 약속대로 방남하여 비핵화에 대한 확고부동한 의지를 보여주는 것이 정공법이다. 김 위원장이 리오넬 매시처럼 좁은 공간을 절묘하게 비집고 뚫고 나가는 묘기까지 선보이길 기대하진 않지만 서울 방문을 열망하는 사람들만큼은 실망시키지 않았으면 한다.

 

<이병철 | 평화협력원 부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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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치스코 교황이 18일 “북한으로부터 공식 방북 초청장이 오면 무조건 응답을 줄 것이고, 나는 갈 수 있다”고 말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날 교황청을 공식 방문한 문재인 대통령으로부터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방북 요청 의사를 전달받고 “문 대통령께서 전한 말씀으로도 충분하지만, 공식 초청장을 보내주면 좋겠다”며 이같이 밝혔다고 윤영찬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이 전했다. 교황이 사실상 방북을 수락한 것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또 “한반도에서 평화 프로세스를 추진 중인 한국 정부의 노력을 강력히 지지한다”며 “멈추지 말고 앞으로 나아가라.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했다. 이로써 남북이 추진하는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 행보가 큰 탄력을 받게 됐다. 교황의 방북 의지를 환영한다. 

 

교황과 마주앉은 문 대통령 문재인 대통령이 18일(현지시간) 바티칸 교황청 내 서재에서 프란치스코 교황과 단독 면담을 하고 있다. 바티칸 _ 서성일 기자 centing@kyunghyang.com

 

교황으로서는 방북이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터이다. 북한에는 가톨릭 신자는 물론 진정한 의미의 종교인도 없다. 국제적으로 비난받는 북한의 열악한 인권 상황도 문제다. 따라서 교황의 방북 의사는 한반도 평화에 대한 강력한 지원 의지로 해석된다. 교황의 방북이 실현된다면 한반도 평화가 획기적으로 촉진될 수 있다. 무엇보다 현재 진행 중인 비핵화 작업을 추동하는 의미가 크다. 교황의 방북은 다른 국가 지도자의 방북과 상징성이 다르다. 김 위원장이 교황 앞에서 비핵화 뜻을 밝힌다면 비핵화 의지에 대한 세계인의 신뢰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평화를 주창해온 교황이 북한의 비핵화 의지를 지지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이만한 비핵화 동력은 또 없을 것이다.

 

교황의 방북은 북한의 정상국가 이미지를 제고하는 데도 기여할 것이다. 북한이 고립국가에서 탈피해 국제사회로 나오는 변화의 촉매제로 작용할 것이다. 또한 인권 개선과 민주화 등 북한 내부 변화의 계기가 될 수 있다. 김 위원장으로서는 교황이 평양에서 미사를 집전하고 북한 주민들과 직접 접촉함으로 인한 변화의 충격이 있더라도 이를 감수하겠다는 단안을 내렸을 터이다.

 

문 대통령과 교황의 만남에 앞서 교황청은 성베드로대성당에서 피에트로 파롤린 국무원장의 집전으로 ‘한반도 평화를 위한 특별미사’를 봉헌했다. 문 대통령도 미사에 참례한 뒤 연설했다.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 대장정의 성공을 기원하는 가톨릭 교단 전체의 축복은 상징성이 크다. ‘평화의 사도’라 불리는 교황의 방북은 비핵화, 종전선언과 평화협정을 통해 한반도의 항구적인 평화체제를 이루려는 역사적 흐름을 뒷받침하는 강력한 추동력이 될 것이다. 북한은 즉각 교황에게 초청장을 보내 조속히 방북 일정을 잡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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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철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이 미국 뉴욕으로 날아가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을 만났다. 역사적인 ‘6·12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을 불과 13일 앞두고서다. 세 번째 만남이지만 그 의미는 앞의 두 번과 비교가 안된다. 만남 자체가 회담의 청신호다. ‘회담이 성사될 수 있을까’ 하는 불안감을 없애는 쐐기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이뿐만 아니라 예상 밖의 기대감까지 일게 한다. 33년 전 미·소 정상회담을 앞두고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1985년 11월4일 조지 슐츠 미 국무장관은 모스크바로 날아갔다. 회담을 꼭 보름 앞둔 때였다. 로널드 레이건과 미하일 고르바초프(고르비)는 11월19~21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정상회담을 하기로 합의한 터였다. 슐츠는 왜 모스크바로 날아갔을까.

 

김영철 북한 노동당 대남담당 부위원장 겸 통일전선부장(왼쪽)과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이 30일(현지시간) 뉴욕 맨해튼 38번가에 있는 주유엔 미국 차석대사 관저에서 만찬을 하기에 앞서 악수하고 있다. 뉴욕 _ AFP연합뉴스

 

1985년 미·소 정상회담은 훗날 냉전 종식의 기틀이 됐다는 평가를 받지만 추진 과정은 쉽지 않았다. 당시 미·소관계는 북·미관계 못지않게 나빴다.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과 주둔, 폴란드 민주노조 탄압은 미국의 반발을 샀다. 강경한 냉전 전사 이미지의 레이건도 문제였다. 소련을 ‘악의 제국’으로 낙인찍고, 군축을 말하면서 ‘별들의 전쟁’으로 불리는 전략방위구상(SDI)을 발표해 소련을 자극했다. 그러면서 ‘평화의 십자군’을 자임했다. 소련은 그런 레이건을 ‘현대판 히틀러’라고 비난했다. 소련 지도자들의 건강 악화와 잇단 사망도 장애물이었다.

 

오지 않을 것 같던 변화의 조짐이 나타났다. 레이건이 신호탄을 쐈다. 그는 1984년 1월 “이 핵무기 시대를 살아나가려면 대화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선언했다. 레이건의 변화를 이끈 이가 슐츠다. 슐츠는 레이건을 정상회담으로 인도한 ‘셰르파’였다. 1982년 7월 국무장관이 된 슐츠는 레이건을 유연하고 실용적인 사고를 갖도록 이끌었다. 1년 뒤 기회가 찾아왔다. 1985년 3월 체르넨코의 사망과 젊은 지도자의 등장이었다. 고르비였다. 그는 레이건보다 20살 어렸다. 레이건은 친서를 보냈다. “빠른 시일 안에 워싱턴으로 초대하고 싶다.” 고르비는 긍정적이라면서도 장소와 시기를 이유로 시간을 끌었다.

 

그 바탕에는 레이건에 대한 불신이 깔려 있었다. 그에게 레이건은 지킬 박사와 하이드일 뿐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7월3일 두 나라는 정상회담에 합의했다. 고르비는 25년 동안 외교장관을 지낸 그로미코를 사임시키고 셰바르드나제를 앉혔다. 외교정책 변화의 신호였다. 하지만 10월이 되도록 의제조차 합의하지 못했다. 슐츠가 모스크바로 간 이유는 마지막 걸림돌을 제거하기 위함이었다. 그는 셰바르드나제와 고르비를 처음으로 만나 이견을 조율했다. 마침내 레이건과 고르비는 제네바에서 마주 앉았다. 그러나 세계가 놀랄 만한 합의는 나오지 않았다.

 

북·미 정상회담을 1985년 미·소 정상회담과 단순 비교할 수는 없다. 상황도, 의제도 다르다. 두 주인공 트럼프와 김정은도 닮은 것 같으면서도 다르다. 그럼에도 북·미 정상회담에 시사하는 바가 있다. 미·소 정상회담의 교훈은 두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체제가 다른 강대국 간 회담은 한 차례로 성공할 수 없다는 점과 당장의 성과는 없더라도 계속 만나야 일이 풀린다는 점이다. 회담 성사는 군비감축에 대한 레이건의 의지와 미국과의 관계 개선과 내부 개혁을 원한 고르비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결과다. 트럼프와 김정은의 만남도 마찬가지일 터이다. 미·소 정상회담은 ‘셔틀 회담’이라는 새 형식을 낳았다. 레이건과 고르비는 제네바 회담을 시작으로 1988년 뉴욕 회담까지 모두 5번 만났다. 그 결과 1987년 중거리핵무기폐기협정(INF)을 체결하는 등 군비경쟁을 줄이고 냉전의 마지막 시간을 평화적으로 바꿀 수 있었다. 이런 점에서 모든 정상회담은 향후 협상의 무대를 위한 출발점이라 할 수 있다.

 

영국 케임브리지대 데이비드 레이놀즈 교수는 1985년 미·소 정상회담 등을 분석해 펴낸 <정상회담>에서 효과적인 정상회담의 전제조건으로 두 가지를 제시했다. 지도자와 국가의 힘이 비슷해야 하고, 상호 신뢰가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북한을 핵 보유국으로 인정한다고 해도 북·미 간 군사력 차이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과거 트럼프와 김정은의 상호 비방의 역사를 보면 신뢰가 움틀 틈조차 없었다. 하지만 두 정상은 모든 악조건을 극복하고 정상회담에 합의했다. 레이건과 고르비의 일련의 정상회담에서 보듯 중요한 것은 두 정상 간의 화학작용, 보좌진의 상호 신뢰, 끈질긴 인내심이다. 6·12 북·미 정상회담에서 어떤 합의가 나올지 알 수 없다. 기대 이상의 성과를 거둘 수도 있다. 한반도 평화 정착의 중차대한 기로에 선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낙관도, 비관도 아니다. 차분하게 지켜보는 일이다.

 

<조찬제 국제·기획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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