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하원 외교위원회가 지난 17일(현지시간) 건설적이고 미래지향적인 한·일관계를 촉구하는 결의안을 채택했다. 하원 외교위는 ‘공동의 이익 추구를 위한 한미·미일 간, 그리고 3국 간 협력의 중요성과 활력에 관한 하원의 인식’에 대한 결의를 전체회의에서 가결했다. 엘리엇 엥걸 위원장이 지난 2월 대표 발의한 이 결의안이 이 시점에서 통과된 것은 한·일 간 갈등이 악화일로로 치닫는 최근 상황을 우려하는 미 의회의 인식이 반영된 것으로 봐야 할 것이다.


한국언론진흥재단(KPF) 주최로 18일 오전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일본의 경제보복과 한일관계’포럼에 참석한 패널들이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왼쪽부터 정인교 인하대 국제통상학과 교수, 이원덕 국민대 국제학부 교수, 남 교수, 유의상 식민과냉전연구회 이사(전 주영 한국대사관 총영사). 김정근 기자


한·일 갈등에 대해 미국은 중립을 지키고 있지만, 갈등이 수위를 넘어설 경우 미국의 동북아 전략에도 영향을 미칠 가능성을 경계하고 있다. 데이비드 스틸웰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차관보의 17일 발언에서도 이런 인식이 엿보인다. 그는 “미국은 가까운 동맹인 한국·일본과의 관계를 강화하는 데 큰 비중을 두고 있다”며 “미국은 가까운 친구이자 동맹으로서 ‘해결 노력’을 지원할 수 있는 일을 할 것”이라고 했다. 일본은 미국 행정부와 의회의 우려 표명을 가벼이 넘겨서는 안된다.


18일은 일본이 제안한 ‘제3국을 통한 중재위원회 구성’의 답변 시한이다. 청와대가 이미 수용거부 입장을 밝혔는데도 일본은 아랑곳없이 답변을 채근하고 있다. 자신들이 일방적으로 시한을 그어놓고 이를 도발의 빌미로 삼으려는 태도는 용납할 수 없다. 중재위는 본질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고,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쌍방 간에 분노만 키울 뿐임을 일본도 모르지 않을 것이다. 일본은 중재위 대신 현안을 포괄적으로 논의할 수 있는 외교협상에 나서야 한다.


일본이 협상에 전향적인 태도를 취한다면 한국도 협상에 응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일본은 한국 정부 관계자가 17일 외신기자 간담회에서 한 발언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 관계자는 “우리는 건설적 제안에 열려 있고 융통성을 발휘하려 한다. 모든 옵션을 테이블 위에 올릴 수 있다”고 했다. 일본과 물밑에서 접점을 찾으려고 노력할 의향이 있음을 명확히 밝힌 것이다. 


일본은 상황이 더 이상 악화되지 않도록 자제하면서 한국과의 외교협의에 나서야 한다. 대화할 의지가 있다면 ‘화이트리스트’ 한국 제외 등 추가도발은 삼가야 한다. 한국 정부도 강제징용 배상 문제를 실질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폭넓은 대안을 찾으려는 노력을 게을리하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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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한·일 갈등이 치킨게임의 양상으로 치닫고 있다. 한·일 화해치유재단의 해산과 대법원의 징용공 배상 판결과 같은 역사문제에다가 일본 해상자위대 초계기의 우리 군함에 대한 위협 비행과 같은 안보문제가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러한 한·일 갈등은 양국의 국민감정까지 개재되어 있는 터라 어느 한쪽의 양보나 승리로 끝나기는 어렵다.

 

현재 진행 중인 한·일 갈등이 아베 총리가 자신이 추진하는 개헌을 위해 국내 지지층을 결집하려는 정치적 의도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해석이 있다. 이러한 해석은 지난해 9월 3연임에 성공한 아베 총리가 2020년까지 개헌을 완료하겠다는 의지를 나타내면서 설득력을 얻었다. 오는 7월 참의원 선거에서 3분의 2 의석을 지켜내 올해 내로 국회에서 개헌안을 발의한 뒤, 도쿄 하계올림픽의 열기가 고조됐을 때 국민투표에 부쳐 과반수를 얻어 통과시키려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정치적 해석에 동의하지만 이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아베 집권 이전인 민주당 노다 정권 때부터 한·일 갈등이 시작됐고, 근년에 들어와 일본 내에서 이른바 ‘리버럴’(친한파 지식인 그룹)이라고 불리는 일본 인사들도 반한으로 돌아섰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갈등이 발생하더라도 조용한 외교를 통해 문제를 해결해 왔지만, 최근 수년간의 한·일 갈등은 초기에 관리되지 못하고 오히려 증폭되면서 장기화되는 추세이다. 특히 일본은 과거사 문제를 경제문제와 결부시켜 왔고, 최근 들어서는 안보문제로까지 연계하고 있는 것이다.

 

[김용민의 그림마당]2019년1월7일 (출처:경향신문DB)

 

과거사 문제를 경제 문제와 연계한 대표적인 예가 한·일 통화스와프 계약이다. 2011년 700억달러까지 늘었지만, 2012년 8월 이명박 대통령이 독도를 방문하자 노다 정권은 만기 도달한 570억달러의 연장을 거부했고, 아베 정권은 2015년 2월 잔여금액도 만기가 도래하자 종료시켰다. 우리 측이 통화스와프 재개를 요청해 협상이 시작됐으나 2017년 1월 부산 일본영사관 앞에 위안부 소녀상이 설치되자 이를 빌미로 중단시켰다. 지난해 9월 대법원의 징용공 배상 판결이 나오자 11월 일본 정부는 반도체 세척용 불산의 한국 수출을 제한했고, 최근 자민당 내에서 한국산 제품에 고율 관세를 매겨야 한다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그렇다면 최근 수년간 일본 정부가 한국에 대해 강경 입장을 펴는 배경은 무엇인가? 일본의 대한 강경론의 근저에는 위기감이 자리 잡고 있다. 일본은 유일한 아시아국으로 활동하던 G7이 2008년부터 G20 정상회의로 확대되고 여기에 한국, 중국 등이 참가하면서 아시아 대표의 자리를 잃었다. 또한 일본은 2010년에 제2 경제대국의 자리를 중국에 내주었고, 2018년 한국은 5000만 인구에 1인당 국민소득이 3만달러가 넘는 ‘3050클럽’에 세계 7번째로 가입하게 되었다. 일본 국력이 중국에 역전된 데 이어 한국에도 바짝 추격을 받고 있는 것이다.

 

이제 아베 정권은 과거사 문제를 안보 문제로 연결시키면서 전후외교를 총결산하고 대국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야심을 드러내고 있다. 최근 일본의 군사 도발 양상들을 보면, 모두 일본이 주장해 온 배타적 경제수역(EEZ) 내에서 발생했다. 해상자위대가 스스로를 ‘일본해군(Japan Navy)’이라고 부른 것도 문제지만, 아직 확정되지도 않은 일본 주장의 EEZ와 인접한 동해와 이어도 근해에서 한국 함정에 대해 노골적으로 위협비행을 감행한 것은 명백한 국제법 위반이다. 해상자위대의 우리 군함에 대한 근접 위협비행은 광활한 EEZ에 대한 통제권을 강화하려는 일본의 중장기 전략 속에서 나온 행동이다.

 

그렇다면 우리 정부는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우리 정부는 역사와 안보 문제를 분리해 대응한다는 투트랙 대일외교 원칙을 천명해 왔다. 하지만 일본은 두 문제를 연계시키고 있어 현 아베 정권하에서는 우리 정부의 투트랙 외교가 적용되지 않고 있다. 더구나 올해 한·일관계 전망도 밝지 않다. 아베 정권의 개헌 야심에 더해, 올해는 3·1절과 임시정부 출범 100주년을 맞이하는 해이고 일본에서는 5월1일 일본 역사상 처음으로 생존한 일왕이 퇴임하고 새로운 일왕이 등극하게 된다. 자칫 한·일 양국의 민족주의가 충돌할 가능성이 높다.

 

이제 정부는 과감하게 지금까지 견지해 온 대일 투트랙 외교를 재검토하고 변화된 정세에 맞게 한·일관계의 재정립을 위해 새로운 대일정책을 수립해야 한다. 현재 일본은 중장기 전략하에서 외교적 수단뿐만 아니라 경제, 안보적 수단을 동원해 우리를 압박해 오고 있다. 우리 정부도 한·일관계를 단지 외교적으로만 접근할 것이 아니라, 경제와 안보 등 다측면에서 종합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이를 위해 범정부적인 대일외교 종합대책 TF를 만들어 중장기전략을 수립해야 한다. 이제 한·일관계의 새판짜기가 필요한 시점이다.

 

<조성렬 | 전 국가안보전략연 수석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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