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미 실무협상 미국 측 대표인 스티븐 비건 국무부 대북정책 특별대표가 11일(현지시간) 카네기국제평화기금 주최 좌담회에서 “북한 비핵화를 점진적으로 진행하지 않겠다”며 “우리는 토털 솔루션(일괄해결)을 원한다”고 했다. 하노이 2차 북·미 정상회담 후 대북강경파인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빅딜(일괄타결)’ 목청을 높이더니 ‘협상파’로 분류되던 비건 특별대표마저 한목소리를 낸 것이다. 그가 북한과의 실무협상을 책임지고 있음을 감안하면 일괄타결 원칙이 트럼프 행정부의 ‘포스트 하노이’ 전략으로 공식화됐다고 봐도 틀리지 않을 것이다.

 

비건 특별대표는 지난 1월31일 스탠퍼드대학 강연에서 ‘동시적·병행적’ 기조를 강조했고, 핵신고에 대해서도 속도조절을 시사하는 등 단계적 접근법을 수용하는 듯한 태도를 보였다. 그러던 그마저 ‘일괄타결’ 원칙으로 후퇴한 것은 적어도 핵시설과 핵물질, 핵무기 등을 떼어내 단계별로 합의하고 이행하는 북한식 접근법에는 동의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한 것이다. 

 

스티븐 비건 미국 국무부 대북특별대표(오른쪽)가 11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카네기국제평화기금이 주최한 핵정책 콘퍼런스 좌담회에서 사회자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워싱턴/박영환 특파원

 

북한은 ‘단계적 비핵화’ 입장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는 상황에서 미국이 일괄타결 방침을 공식화함으로써 북·미 협상 구도는 지난해 6월 싱가포르 1차 북·미 정상회담 이전으로 돌아가게 됐다. 협상하려면 북한이 태도를 완전히 바꾸고 들어오라는 고압적인 태도도 걱정스럽다. 그나마 미국이 하노이 회담 결렬 이후 비교적 이른 시일 내에 협상전략을 정리하며 채비를 갖추고 있는 점은 긍정적이다.    

 

이런 가운데 북한은 12일 대외선전 매체를 통해 “완전한 비핵화에로 나가려는 것은 우리의 확고한 입장”이라면서 “하노이 수뇌회담에서 논의된 문제해결을 위한 생산적인 대화를 계속 이어나가기로 했다”며 비핵화와 대화 의지를 재확인했다. 국제사회가 동창리 위성 발사장 등의 움직임을 우려하는 상황에서 정세를 악화시키지 않겠다는 메시지를 던진 것은 바람직하다.  

 

양측 간 입장차가 크지만 절충의 여지가 없지는 않을 것이다. 북한은 하노이 회담을 계기로 국제사회의 ‘비핵화 눈높이’가 자신들과 현격히 차이가 있음을 깨달았을 것이다. 비핵화의 범위와 최종목표가 분명히 드러나는 포괄적인 로드맵 마련을 고민해야 할 시기다. 미국도 북한이 제안한 영변 핵단지 전체 폐기의 무게감을 다시 잴 필요가 있다. 하노이의 실패가 반복되지 않으려면 양측이 한 걸음 다가서려는 열린 태도가 필요하다. 문재인 정부가 양측 입장에서 접점을 찾아내는 역할을 할 필요가 있다. 상황이 녹록지 않지만 그럴수록 중재노력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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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은 4일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전체회의에서 2차 북·미 정상회담 합의 무산과 관련해 “우리는 북·미 회담이 종국적으로 타결될 것으로 믿지만 오랜 대화교착을 바라지 않는다”며 “양 정상이 빠른 시일 내 만나 타결을 이뤄내길 바란다. 그 과정에서 우리 역할도 다시 중요해졌다”고 밝혔다. 북·미가 협상동력 유지를 위해 조속히 대화에 나설 것을 촉구하는 동시에 한국 정부가 중재 역할에 적극 나서겠다는 뜻을 비친 것이다. 하노이 정상회담 합의 무산의 충격에도 불구하고, 한반도 평화프로세스가 중단돼서는 안되며 중재자이자 당사자인 한국 정부로서 해야 할 역할을 하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한 점을 평가한다. 이는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가 암초를 만난 상황에서 한국 정부가 취해야 할 유일하고도 최선의 선택이기도 하다. 문 대통령은 “양측의 입장 차를 정확히 확인하고 좁힐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달라”면서 “북·미 실무대화의 조속한 재개를 위해서도 노력해주길 바란다”고 주문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4일 오후 청와대에서 열린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전체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하지만 상황은 녹록지 않다. 양측의 입장 차가 그동안 알려진 것보다 더 벌어졌을 것으로 추정케 하는 징후들이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존 볼턴 미국 국가안보회의 보좌관은 3일(현지시간) 방송들과의 인터뷰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하노이 회담에서 핵과 미사일 외에 생화학무기까지 포함하는 ‘광범위한 비핵화’를 요구했다고 밝혔다. 미국이 대량살상무기(WMD) 전체를 비핵화 대상에 포함시키며 북한을 사실상 압박했다는 뜻이다. 볼턴의 말대로라면 실무협상 과정에서 북한이 주장해온 ‘단계적 비핵화’에 동의하는 것처럼 보이던 미국이 정작 정상회담 테이블에서는 ‘전부(全部) 아니면 전무(全無)’식 태도로 돌변한 셈이다. 단계적 비핵화 해법은 70년간 적대하며 신뢰가 부족한 북·미 사이를 감안한 현실적인 방식으로, 한국 정부도 동의해왔다. 미국이 태도를 바꾼 배경에 의구심이 커질 수밖에 없다. 

 

문 대통령의 언급대로 현 국면에서는 가급적 이른 시일 내 남북, 한·미 간 접촉을 통해 ‘하노이의 진상’을 파악하는 것이 급선무다. 대북특사를 조기에 보내는 방안부터 검토할 필요가 있다. 충격이 큰 북한이 당분간 ‘장고’에 들어갈 가능성도 있지만, 그럴수록 대화의 모멘텀이 사라질 수 있음을 설득해야 한다. 문 대통령이 “제재의 틀 내에서 남북관계 발전을 통해 북·미 대화에 도움을 줄 수 있는 방안을 찾아주길 바란다”며 남북협력 사업의 속도감 있는 추진을 당부한 점도 바람직하다. 북한도 남북관계가 정세에 구애받지 않고 정상 가동되는 것이 북·미 협상을 위해서도 도움이 된다는 점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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