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어느 더운 오후 아들과 영화를 보기로 했습니다. 일본 애니메이션의 대표작 중 하나인 <인랑>을 골랐죠. 내친김에 다음날 또 다른 일본 애니메이션인 <아키라>를 봤습니다. 한국뉴스에 아베 총리가 나와 한·일관계에 대해 설명을 해준 뒤였습니다. 한편으로 일본에 비판적이지만 일본 애니메이션을 같이 보는 아빠의 모습에 아들이 혼란스러워하지 않아 다행이었습니다.


하지만 한국 내 사정은 그리 간단하지 않아 보입니다. 식민지 역사 해석을 두고 시작한 갈등은 결국 양국 간 무역분쟁으로 번지는 양상입니다. 정부 사이 거친 말이 오가고, 감정도 격해졌습니다. 덕분에 21일 열린 참의원 선거에 한국 사회의 관심이 이례적으로 뜨거웠죠. 실권 있는 중의원 선거도 아니고, 일본 유권자의 참여도 시들했지만 말이죠. 선거 결과를 두고 여러 해석이 나왔지만, 논의가 좀 덜 된 부분 세 가지만 돌아보겠습니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21일 도쿄 자민당 당사에서 참의원 선거 승리에 대한 입장을 밝히며 웃고있다. 도쿄 _ AP연합뉴스


첫째, 무역분쟁 원인으로서의 선거입니다. 일본 경제산업성은 한국을 에칭가스 등 세 품목에 대한 포괄적 수출 허가 대상에서 제외하면서 포문을 열었죠. 당황스러웠고 그 배경이 궁금했습니다. 곧 그럴듯한 설명 하나가 나왔습니다. 바로 참의원 선거 때문이라는 것이었죠. 한국을 때려 반한 감정을 자극, 우파표 모아 의석 3분의 2를 차지, 평화헌법을 개헌해 전쟁을 할 수 있는 정상국가 건설. 아베의 잘 알려진 숙원을 고려할 때 앞뒤가 딱 맞아 보였습니다. 이제 선거가 끝났으니 선거용이었던 수출규제는 끝나야겠죠. 하지만 그럴 기미는 안 보입니다. 왜 그럴까요.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무역규제 뒤에 선거 말고 다른 그 무엇이 있을 가능성이 큽니다. 그럼 그것에 대한 탐구와 토론이 당장 있어야겠죠. 그래야 더 명확한 사태 이해, 더 효과적 대응이 나올 테니까요. 하지만 기존의 주장이 오히려 더 확대되고 있습니다. 좀 더 유연하고 다양한 사고가 필요해 보입니다.


둘째, 일본의 다양성을 보여주는 선거였습니다. 일본 사회는 획일적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개인은 집단에 희생하고 그 안에서 비슷하게 살려는 구심력이 강합니다. 태평양전쟁에서 보여준 전투력, 남을 배려하는 공공질서 준수, 외국인에 대한 차별 등에서 그 흔적을 볼 수 있죠. 그 반작용일까요. 의외로 놀라울 정도의 다양성도 찾을 수 있습니다. 이번 선거에서도 말이죠. 입헌민주당의 이시카와 다이가는 성소수자로 커밍아웃한 후 당선됐습니다. 루게릭병을 앓는 후나고 야스히코, 뇌성마비 장애인인 기무라 에이코도 당선됐죠. 한국에서는 상상하기 힘듭니다. 소수자를 존중하고 공존하는 게 현대사회의 척도라면 이번 선거는 일본의 위상을 돋보이게 한 것이죠.


셋째, 일본 정치구조도 잘 드러난 선거였습니다. 일본 선거, 정당구조는 한국과 아주 다릅니다. 어디가 더 낫다고 딱 잘라 말할 수 없죠. 하지만 눈에 확 띄는 장점이 하나 있으니 바로 다양한 정당의 의회 진출입니다. 우리는 일본 공산당의 존재에 주목해야 합니다. 이번 선거에서도 7석을 얻어 13석을 유지하게 됐습니다. 한 석 줄어들기는 했지만, 전체 의석의 5%를 차지하고 있죠. 중의원에서도 12석(전체의석의 2.5%)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부침은 있지만, 공산당이 의석 획득에 실패한 경우는 전후 딱 한 번밖에 없습니다. 한국에는 꿈에도 있을 수 없는 일이죠. 이유는 많지만, 그중 하나는 국가보안법 때문임에 이견이 없을 겁니다. 국가보안법의 모델은 일제의 치안유지법이었습니다. 공산주의, 민주주의 등에 맞서 ‘천황제’를 지키고자 만들어진 대표적 악법이었죠. 전후 일본에서는 사라졌지만, 역설적이게도 한국에서 명맥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그마저 일본이 일깨워주고 있는 것이죠.


결국 일본은 크고 복잡한 나라입니다. 아베 정부가 주요 세력이지만 거대 사회의 일부일 뿐이죠. 뜨거운 ‘전쟁’의 대상인 일본은 게이, 한인, 공산주의자, 평화주의자, 방탄소년단 팬 등을 포함합니다. 서방 경제 제재가 북한 핵무기 개발을 막지 못한 데서 볼 수 있듯, 경제 제재는 큰 효과가 없습니다. 수출규제도, 불매운동도 마찬가지죠. 유연한 사고와 깊은 성찰이 절실한 이유입니다. 그리고 그 성찰은 우리가 어떤 모습인가를 돌아보는 데도 미쳐야 합니다. 우리의 발전이 저들을 움직이는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하고 효과적이니 말이죠.


<남태현 미국 솔즈베리대 정치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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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정치 무대에는 문명과 야만이 공존한다. 대화·타협·배려·상호존중·설득에서는 문명이, 협잡·배신·모욕·완력·이기심에서는 야만이 얼굴을 내민다. “우리가 사는 세계는 불만을 가진 국가가 만족하는 나라를 상대로 집적거리는 무질서한 세상”이라는 폴 케네디의 말을 빌리면, 문명보다는 야만의 힘이 우세한 세계임이 틀림없다. 이른바 문명국가라고 자부하는 한국과 일본에서 작금에 벌어지고 있는 일이기도 하다. 


한·일 갈등은 대부분 과거사 문제에서 출발했다. 과거사에 대한 공감의 정도에 따라 한·일관계는 춤을 추었다. 요즘 상황도 궁극적으로는 과거사 정리가 미흡했기 때문이다. 1965년 한·일 양국은 모호한 내용을 놔둔 채 청구권협정을 체결했다. 양국은 이를 자국의 입맛대로 해석했고 국민 설득에 이용했다. 한국은 일본으로부터 돈을 받음으로써 일본이 한일합병의 불법성을 인정한 것으로 해석했다. 그러나 일본은 불법성과는 무관하게 경제원조라고 풀이했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지난해 대법원의 판결은 한일합병이 불법이었고 따라서 일본이 불법행위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일본은 이미 청구권협정으로 5억달러를 한국에 지불함으로써 모든 배상이 끝났다는 입장이다. 일본의 반발은 불 보듯 했다. 현실적으로 경제적인 행위들이 이뤄진 마당에 정부는 사법부의 판단을 존중하면서 양국 관계를 새롭게 정립할 방안을 찾아야 했다. 한·일관계는 청구권이 전부가 아니기 때문이다. 남북, 한·중, 한·미, 나아가 동아시아와 글로벌 이슈에 머리를 맞대고 협조해야 할 국가다. 


그런데 한일의원연맹 소속 의원과 일본 관련 전문가들의 말을 종합해보면 정부가 문제 해결에 적극적으로 나선 모습은 찾기 힘들다. 오히려 일본이 한국 정부에 한국 사법부의 판결에 대한 협의를 요구했으나 한국 정부가 미온적으로 대처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일본의 반격 가능성을 전문가들이 정부에 경고했다는 말도 나온다. 한·일 간 정면충돌에 정부의 책임이 없다 할 수 없다. 하지만 ‘일본 정부가 아무런 외교적 협의나 노력 없이 일방적으로 조치를 취했다’는 게 정부의 입장이다. 정부는 일본이 비상식적인 방식으로 대응하지 않을 것이라고 낙관한 것 같다.


그러나 한국은 일본에 허를 찔렸다. 일본은 무역보복 조치를 감행했다. 일본은 반도체 제조에 쓰이는 고순도 불화수소 등 3가지 품목의 한국 수출규제에 나섰다. 한국이 절대적으로 일본에 의존하는 소재다. 규제 이유는 ‘북한 화학무기나 독가스 개발에 사용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얼토당토않다. 하지만 문제는 일본이 갖은 이유를 대면서 앞으로도 보복수단을 동원할 것이라는 점이다. 


일본은 수출규제를 하면서 적어도 2가지를 각오하고 있다. 먼저 한·일 간 신뢰관계의 균열이다. 일본은 “한국 정부를 신뢰하지 못하겠다”고 공공연하게 밝혔다. 한·일 정부 간 믿음에 금이 갔고, 기업 간 수십년 동안 쌓아온 신뢰도 흔들리고 있다. 시간이 지나면서 불신의 골은 깊어질 것이다. 다른 하나는 일본이 자국 기업의 피해를 각오하고 있다는 점이다. 두 나라 기업은 국제분업의 사슬에 매여 있다. 서로가 필요한 공생관계다. 한국 기업이 피해를 입으면 일본 기업도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일본은 자해적인 수단을 동원해서라도 목표를 달성하겠다는 생각이다. 


아베 총리는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중국을 상대로 했던 방식을 원용하고 있다. 미국은 중국이 가장 아파할 곳을 찔렀다. 미국이 타깃으로 삼은 중국 화웨이는 미래산업인 5G산업의 총아다. 미국은 화웨이 규제 이유를 ‘미국 안보 위협’이라고 했다. 일본은 한국 경제의 버팀목인 반도체산업을 공략 대상으로 삼았다. 이유도 ‘일본 안보 위협’이라고 했다. 미국은 중국을 상대로 규제 강도를 높이면서 궁지에 몰아넣고 있다. 미국은 중국이 저항하자 관세규제 대상을 전체 수입품으로 확대했다. 일본도 수출규제 품목은 3가지로 출발했으나 대폭 늘어날 것이다. 당장의 대처 방안이 없다. 시간은 공격자의 편이다. 미·중 갈등 속에 중국의 올 2분기 성장률이 27년 만에 가장 낮은 수준으로 떨어졌다.


외교는 도덕이 아니다. 정의(正義)도 각자의 해석에 달려 있다. 한·일 무역갈등이 장기화하면 한국의 미래산업은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 한국의 피해가 일본보다 크다. 자신의 힘을 과소평가하는 것이 문제라면, 더 큰 문제는 과대평가하는 것이다. 반일감정이나 애국심에 호소하는 것은 대책이 아니다. 우리 기업에 부메랑이 될 수 있다. 위정자는 감상이나 울분이 아닌, 냉정한 시각으로 세상을 진단하고 행동해야 한다. 지금 필요한 건 죽창가가 아니라 거란 소손녕의 입을 틀어막고 강동6주를 획득한 서희의 외교술이다.


<박종성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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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8일 일본의 수출규제 조치를 직접 언급하면서 일본 정부의 철회를 촉구했다. 문 대통령은 이날 청와대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일본의 무역 제한 조치로) 한국 기업들에 피해가 실제로 발생할 경우 정부로서도 필요한 대응을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며 “저는 그렇게 되기를 바라지 않는다”고 했다. 문 대통령은 “일본의 무역 제한 조치에 따라 우리 기업의 생산 차질이 우려되고 전 세계 공급망이 위협받는 상황에 처했다”며 “일본 측의 조치 철회와 양국 간 성의 있는 협의를 촉구한다”고 밝혔다. 


문 대통령의 언급은 일본 정부의 수출규제 사태 자진 철회가 해법임을 분명히 한 것이다. 문 대통령은 “대응과 맞대응의 악순환은 양국 모두에게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면서도 기업에 실질적인 피해가 발생할 경우 맞대응할 것임을 경고했다. ‘싸움을 바라지는 않지만, 싸우게 되면 물러서지 않겠다’는 메시지다. 일본 정부가 문 대통령의 언급을 무겁게 받아들이고, 수출규제 조치를 철회할 것을 촉구한다. 


[김용민의 그림마당]2019년7월5일 (출처:경향신문DB)


문제는 일본이 자진 철회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특히 아베 총리의 지난 7일 ‘수출규제 북한 관련성’ 시사 발언은 귀를 의심케 한다. 아베 총리는 이날 일본 민방TV에 나와 “한국은 ‘(대북)제재를 지키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며 “(하지만) 징용공(강제징용 피해자) 문제에 대해 국제적인 약속을 지키지 않는 것이 명확하게 됐다. 무역 관리도 지키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했다. ‘약속을 지키지 않는’ 한국이 대북 제재도 제대로 이행하지 않을 것이니 일본의 전략 품목들이 북한에 유출될 수 있다는 얼토당토않은 논리다. 한 나라의 최고지도자가 근거도 제시하지 않은 채 이웃나라를 음해하는 발언을 공개적으로 했다는 것이 기가 찰 노릇이다. 아베 총리의 측근들은 더 노골적이다. 하기우다 고이치 자민당 간사장 대행은 “(한국에 수출한 화학물질의) 행선지를 알 수 없는 상황이 발생했다”고 했다. 또 다른 정치인은 “화학무기 생산에 사용될 수 있는 에칭가스가 한국에 수출된 이후 행방이 묘연해졌는데 행선지는 북한”이라고도 했다. 수출규제를 합리화하기 위해 가짜뉴스들까지 동원하고 있는 것이다. 


일본 정부는 이날 문 대통령의 수출규제 철회 요구에 대해 한국측이 개선 움직임을 보이지 않으면 응하지 않겠다며 거부했다. 규제 대상을 일부 공작기계와 탄소섬유 등 다른 수출품목으로 확대할 것을 검토한다는 보도도 나온다. 사태가 장기화할 공산이 크다. 사태가 악화될 경우 한국은 물론 일본에도 좋을 게 없다. 지금이라도 일본이 이성을 되찾아 외교적 방식으로 사태 해결에 나서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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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일본 방문에서 거듭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 대한 신뢰를 언급하고 북한과 대화하려는 의지를 밝혔다. 지난 27일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와의 정상회담 후 공동기자회견에서는 “북한의 미사일 발사는 유엔 제재 결의 위반”이라는 아베 총리의 말을 면전에서 반박했다. 그 전날에는 트윗을 통해 “북한이 작은 무기들을 발사했다. 이것이 다른 사람들의 신경을 거슬렀지만 나는 아니다. 김 위원장은 약속을 지킬 것”이라고 해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의 발언도 정면으로 뒤집었다. 최근 두 차례에 걸친 북한의 미사일 발사에도 불구하고 대북 유화 자세를 유지하고 있다. 


일본을 국빈 방문 중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8일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 함께 가나가와현 요코스카 기지에서 해상자위대의 이즈모급 호위함 가가에 승선한 뒤 환영하는 자위대 대원과 미 해군 장병에게 인사하고 있다. 요코스카 _ 로이터연합뉴스


트럼프 대통령의 대북 유화 제스처는 정치적으로 계산된 측면이 보인다. 2020년 말에 치러지는 대선에서 자신의 외교 치적으로 자랑해온 북한의 핵·미사일 실험 중단이 타격받지 않도록 관리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노이 정상회담 후 북·미 대화가 석달째 열리지 못하는 상황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대화 의사를 견지하는 것은 예삿일이 아니다. 역대 어느 미국 대통령도 이처럼 견고한 대화 자세를 보여준 적이 없다.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의 비핵화를 촉구하면서 “북한과 많은 좋은 일이 일어나고 있다. 중요한 것은 2년간 핵실험이 없었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 위원장에 대한 신뢰의 표현도 톱다운 방식의 협상에 대한 동력을 유지하면서 대화에 힘을 싣고 있다는 점에서 상당히 전략적이다. 협상 전문가답게 북한과 대화하고 나아가 북핵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상호 신뢰가 있어야 한다는 점을 알고 있다. 북한을 일방적으로 몰아붙이기만 하는 일본과 한국 내 보수세력은 트럼프의 이런 현실감각을 배워야 한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차기 대선 국면에서 북한과의 관계 개선을 외교적 성과로 공인받으려면 이 정도로는 안된다. 트럼프는 이날도 “무슨 일이 일어날지 지켜보자”면서 “나는 서두르지 않는다. 엄청난 제재가 북한에 가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대북 압박을 유지하면서 기다리는 방법으로는 문제를 풀 수 없다. 트럼프 대통령은 말이 아닌, 북한을 협상 테이블로 이끌어낼 실질적인 유인책을 제시해야 한다. 북한 역시 트럼프의 대화 의지에 화답해야 할 것이다. 한국도 중재 노력을 배가해야 한다. 여러 측면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대화 의지가 무한정 이어질 수는 없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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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새해가 밝았다. 일본에서는 새해 첫날인 ‘오쇼가쓰’를 맞아 가족이 함께 모여 음식과 술을 즐긴다. 신사나 절을 찾아 한 해의 소원도 빈다. 새해에는 좋은 일만 생기길 바라는 것은 한국과 마찬가지일 것이다.

 

지난달 29일부터 휴가 중인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도 2019년이 어느 해보다 뜻깊은 해가 되길 바랄 것이다. 그는 올 11월 역대 ‘최장수 총리’ 등극을 앞두고 있고, 비원(悲願)인 평화헌법 개정에도 나선다. 장기 정권의 ‘레거시(정치적 유산)’로 북방영토(쿠릴 4개섬) 문제 해결도 노리고 있다.

 

지난해 9월 자민당 총재 3연임에 성공한 아베 총리는 2021년 9월까지 총리직을 이어갈 수 있다. 오는 8월에는 사토 에이사쿠(佐藤榮作) 전 총리의 전후 최장수 총리 기록(2798일)을 넘어서고, 11월엔 가쓰라 다로(桂太郞) 전 총리(2886일)를 제치고 역대 최장기 재임 총리가 된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 AP연합뉴스

 

일본 언론은 아베 총리가 개헌과 북방영토 해결을 올해 목표로 잡고 있다고 전하고 있다. 아베 총리는 개정 헌법의 2020년 실시를 내걸었다. 자민당도 전쟁 포기와 전력 불보유를 규정한 헌법 9조에 자위대의 설치 근거를 두는 당 개헌안을 지난해 3월 마련했다.

 

하지만 지난해는 오산의 연속이었다. 사학 스캔들과 연립여당인 공명당의 소극적인 태도, 전면 배치했던 측근들의 부적절한 언행으로 당 개헌안을 국회에 제출조차 하지 못했다. 자민당은 이달 하순 정기국회에서 당 개헌안을 제출할 생각이지만, 오는 7월 참의원 선거 전 국회 개헌 발의는 어려워졌다. 이 때문에 개헌 발의를 참의원 선거 이후로 미루고 내년 상반기까지 국민투표를 실시하는 안이 부상하고 있다. 이런 안이 현실화할 경우 참의원 선거 결과가 개헌을 크게 좌우하게 된다.

 

아베 총리는 “2019년은 러시아”라며 북방영토 문제 해결에도 강한 의욕을 보이고 있다. 그는 지난해 11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시코탄·하보마이 섬을 일본에 인도하는 내용을 담은 1956년 소·일 공동선언에 기초해 평화조약 협상을 가속하기로 했다. 오는 21일 모스크바에서 가질 러·일 정상회담에서 북방영토 문제에 진전을 이뤄낼지 주목된다.

 

다만 국내 여론을 의식할 수밖에 없는 푸틴 대통령이 2개 섬 인도에 동의할지는 불투명하다. 설혹 2개 섬 반환에 합의해도 아베 총리가 당초 4개 섬 반환에서 2개 섬 반환으로 방침을 바꾼 데 대한 여론의 반응도 예단하기 어렵다.

 

이런 상황을 감안해 중·참의원 ‘더블 선거’ 얘기도 솔솔 나오고 있다. 북방영토 협상에 대한 신임을 묻는다는 이유로 중의원을 해산한 뒤 중·참의원 동시 선거를 치러 개헌 정족수를 유지하겠다는 것이다. 올해의 ‘빅 이벤트’인 북방영토 협상, 참의원 선거, 개헌 발의가 얽히고설켜 있는 셈이다.

 

하지만 새해 소원이 대부분 그렇듯 아베 총리의 시나리오가 뜻대로 될지는 장담할 수 없다. 장기 정권에 필연적인 ‘레임덕’이 새 일왕이 즉위하는 5월1일을 기점으로 시작될 것이란 얘기도 나온다. 장기 집권을 가능하게 했던 경제도 불확실성을 더해가고 있다.

2019년은 돼지, 일본에선 멧돼지의 해다. 멧돼지는 무병장수와 용맹·모험을 상징한다. 저돌맹진(猪突猛進·앞뒤 안 보고 목표를 향해 돌진함)이라는 말도 있다.

 

아베 총리는 집권 6년간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가능케 하는 안보법, 알 권리 침해 우려가 있는 특정비밀보호법, 범죄를 계획 단계부터 처벌할 수 있는 공모죄법 등을 여론의 반대에도 강행 통과시켰다. 국민을 적과 아군으로 나눠 사회를 갈라놓는 수법도 두드러졌다. 그가 자신의 숙원을 이루기 위해 멧돼지처럼 무턱대고 돌진하는 한 해가 되기를 기원하는 이들이 얼마나 있을까.

 

<도쿄 | 김진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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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변석개(朝變夕改)도 이 정도면 ‘갑’이다. 보는 사람이 어안이 벙벙할 정도다. 최근 북한에 ‘러브콜’을 연발하고 있는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 얘기다.

 

아베 총리는 지난 16일 “북한과 신뢰 관계를 증진해 가고 싶다”고 말했다. “북한의 일본인 납치 문제 해결을 위해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큰 결단을 기대한다”며 “상호 불신의 껍데기를 깨고 전진하고 싶다”고 했다. 18일에도 “납치 문제를 해결하려면 결국 내가 김 위원장과 정상회담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위원장에게는 북·미 정상회담을 실현한 지도력이 있다”고도 했다. ‘대북 강경’ 일변도였던 그 아베 총리가 맞나 싶다. 그는 불과 2개월 전까지만 해도 “대화를 위한 대화는 의미가 없다” “최대한의 압력을 유지해야 한다”고 했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일본 도쿄에서 북.미 정상 회담 관련 기자 회견을 갖고 있다. AP 연합뉴스

 

그런데 지난 12일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을 기점으로 태도를 180도 바꿨다. 아베 총리가 “도널드”라고 부르면서, “100% 일치”를 과시했던 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계기를 줬다. 문재인 대통령,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에 이어 트럼프 대통령까지 김정은 위원장과 만나 ‘유화’ 자세를 보이고 있는 상황. ‘도널드’가 하는데 ‘신조’가 안 한다? 상상하기 어렵다.

 

‘절친’ 도널드와 이심전심인 만큼 향후 전개 과정을 알아챘을 수도 있다. 한 전문가는 “아베 총리까지 정상회담을 하려는 건 비핵화에 진전이 있다고 보는 거 아니겠냐”고 했다.

 

아베 총리가 북·일 정상회담에 적극적인 이유는 더 있다. ‘재팬 패싱(배제)’ 우려를 씻고 현 국면에 올라타겠다는 셈법이다. ‘납치의 아베’로 지금 자리까지 오른 아베 총리로선 이번 기회를 놓치면 자칫 정치생명까지 위험하다고 직감했을 것이다. 각종 스캔들로 떨어진 지지율 부양과 오는 9월 자민당 총재 3연임에는 북·일 정상회담이 ‘믿는 구석’일 것이다. 실체 없는 ‘대북 교섭설’이 흘러나오고, ‘다음은 내 차례’ ‘나는 속지 않는다’ 같은 낯뜨거운 제목들이 친(親)아베 언론에 등장하는 게 우연일까. 한반도와 동북아시아 평화를 위해 북·일관계를 정상화하겠다는 걸 말릴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래도 찝찝함은 가시지 않는다.

 

아베 정권에게 ‘북한 위협론’은 주요한 자산이었다. 지난해 10월 갑작스러운 중의원 해산의 명분도 북한 핵·미사일 위기로 인한 ‘국난’ 돌파였다. 그런 북한이 이번에 정반대에서 아베 정권의 ‘동아줄’이 된 건 아이러니하다. 북한의 ‘대화 공세’를 “미소 외교” “시간 벌기”라고 비난하더니 지금은 “신뢰관계 증진” “상호 불신의 껍데기를 깨자”고 한다.

 

일본이 북·일 정상회담의 목표로 삼고 있는 납치 문제도 마찬가지다. 일본 정부는 그간 압력이 필수라는 자세로 일관해왔다. 스스로 선택지를 좁혀온 셈이다.

 

더욱이 아베 총리가 북·일 국교 정상화의 기초로 삼자고 하는 2002년 북·일 평양선언은 ‘불행한 과거의 청산’과 ‘현안사항의 해결’을 병기하고 있다. 식민지 지배와 납치 문제의 동시 청산을 말하는 것이다. 하지만 일본에선 후자만 강조됐고, 전자는 사실상 무시됐다는 지적이 없지 않다. 아베 총리가 과거 식민지 지배로 인한 피해와 고통에 대한 반성 위에 새로운 북·일관계를 만들어갈 준비가 돼 있는지 의문이다.

 

한 일본 언론인은 북·미 정상회담 공동성명에 일본 보수우익 세력들이 말 그대로 ‘멘붕(정신 붕괴)’이라고 했다. 지난 70년간 한반도 분단 체제와 미국과의 군사동맹에 의존해온 이들에게 새로운 북·미관계 수립과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전면에 내세운 공동선언은 적잖은 충격이었을 것이다. 비단 아베 총리나 일본 보수우익세력들에게만 해당되는 얘기는 아닐 것이다. 동북아시아가 새로운 평화체제로 가는 것을 맞이할 준비가 돼 있는지 말이다.

 

<도쿄 | 김진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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