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베트남 하노이 만남 이전에 친서 외교가 있었다. 트럼프에겐 너무도 사랑스러웠던 편지. 어느새 ‘꼬마 로켓맨’은 ‘위대한 지도자’로 바뀌었다. 트럼프의 하노이로 가는 길, 미국 내 다수가 김정은은 그런 사람이 아닌데 덜컥 그의 손을 잡지 않을까 걱정했다. 트럼프는 ‘여태껏 실패만 한 것들이 뭘 알아. 협상은 나한테 맡겨’라는 태도였다. 김정은의 66시간 기차 여행은 설렘과 기대로 가득했을 것이다.


하노이에선 가망 없는 제안들이 오갔다. 두 사람은 서로 다른 곳을 바라봤다. 트럼프는 영변을 포함한 모든 대량살상무기(WMD)와 생산시설을 완전히 폐기해야 유엔 제재를 해제할 수 있다고 김정은을 설득했다. 김정은은 민수경제와 인민생활을 어렵게 하는 제재 몇 개만 풀어주면 ‘북한 핵개발의 상징’인 영변을 폐기하겠다고 했다. 핵무기와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영변 이외 시설은 대상이 아니었다. 두 사람은 점심도 먹지 않고 호텔을 빠져나왔다.


빈손으로 돌아섰으니 전 세계가 놀랐다. 그럼에도 2차 정상회담 결렬이 파국으로 평가되진 않았다. 서로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게 됐고, 얼굴 붉히지 않고 돌아섰으니 2보 전진을 위한 1보 후퇴가 아니냐는 것이다. 훗날을 기약할 수 있으리라고 봤다. 하노이 회담 후 20일이 지났다. 지금 서로의 생각은 달라지지 않았다.


리용호 북한 외무상(오른쪽)과 최선희 부상이 1일 새벽(현지시간) 2차 북·미 정상회담 북측 대표단 숙소인 베트남 하노이 멜리아호텔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회담 결렬에 대한 입장을 밝히고 있다. 하노이 _ 연합뉴스

트럼프 정부는 전략을 재수정하지 않았다. 협상의 문턱을 올리면 올렸지 내리진 않았다. 실무협상을 이끈 스티븐 비건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는 “우리는 점진적 비핵화를 하지 않을 것” “북한이 WMD와 관련 프로그램 제거를 전적으로 약속해야 한다”고 말했다. ‘단계적’이란 표현은 지워버렸다. 만날 생각은 있으니 현명하게 결정하란 얘기다. 북한은 15개월간 핵·미사일 실험을 중단해서 비핵화 의지를 충분히 보여줬고, 영변 폐기를 약속했다고 반박한다. 그런데도 제재를, 전부도 아니고 몇 개만 풀어달라는데 안된다면 만나봐야 무슨 얘기를 하겠냐는 식이다. 미국의 셈법, 북한의 셈법은 평행선이다. 지금, 위험한 교착 상태임을 직감케 한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커진다. 두 사람의 사랑도 변하는 것일까. 트럼프는 ‘밀당의 귀재’를 자처한다. “나는 거래를 하는 사업으로 수십억달러를 벌었다. 협상은 내가 잘하는 일”이라고 호언하는 트럼프에게 협상은 그의 정체성과 다름없다. 남들은 이쯤에서 되지 않을까 할 때, 던져버리는 ‘노딜의 기술’을 선보인다. 그는 미국은 물론 세계적으로 중대 전환점이 된 합의를 줄줄이 깼다. 냉전시대 군비경쟁을 종식시킨 미소의 1987년 11월 중거리핵전력조약(INF)을 파기해 유럽 안보 불안을 고조시키고, 이란 핵 합의 탈퇴로 중동 정세를 흔들었다. 파리기후변화협약 탈퇴 등 사례는 널려 있다. 실상 그는 세계 평화에 쿠데타를 번번이 일으키는 인물이다.


트럼프가 있던 합의는 잘 깨지만 새로운 합의 만들기에는 성과가 시원찮다. 상대를 협상장에 끌고들어온 뒤 결정적 순간, 상대가 감당하기 어려운 제안으로 놀라게 하는 것이 ‘거래의 기술’일지는 모른다. 우군이 별로 없는 북한엔 강하게 나갈수록 유리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트럼프도 돌아가기엔 너무 많은 길을 달려왔다.


미국이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를 목표로 설정하는 것은 이해할 수 있다. 일부 비핵화로 제재 완화를 얻어낸 뒤 돌변하는, 북한의 ‘먹튀’에 미국의 조야가 우려하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선 비핵화, 후 제재해제’를 고수하면 어떤 결과가 나올지는 더 분명하다. 과거의 전철을 답습하지 않고 비핵화를 달성할 방법은 있을 것이고, 이를 찾아야 한다. 크고 빠른 걸음으로 가려고 해도 다리는 신체조건이 허락되는 선에서만 최대로 뻗을 수 있다. 잘못하면 가랑이가 찢어지고 뛰기는커녕 걷지도 못할 수 있다. 한 발을 크게 뻗은 다음, 또 한 발을 크게 내디딜 수밖에 없다.


지금 필요한 것은 북·미의 요구 수준을 조정하는 일이다. 미국은 더 작게, 북한은 더 크게 가야 한다. 북한은 미국의 한 방 전략을 판깨기 전략과 같은 말로 인식한다. 미국의 위협에 대한 대응 수단으로 핵무기를 만든 만큼 마지막 도장을 찍을 때 내놓을 카드로 본다. 이를 비핵화 의지가 없다고 단언하긴 곤란하다. 북한도 트럼프라는 말만 나오면 으르렁대는 미국 야당이 빈손으로 귀국한 트럼프를 칭찬한 이유를 곱씹어야 한다. 영변만으로는 트럼프가 움직일 공간이 없다고 봐야 한다. 하노이 이후에도 서로를 신뢰한다는 트럼프와 김정은이 여전히 사랑하는 사이라면 말 대신 증표를 보여줘야 할 때다. 눈높이를 맞추는 것이 출발이다.


<안홍욱 국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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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3월1일자 지면기사-

 

베트남 하노이에서 28일 열린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간의 2차 북·미 정상회담이 결렬됐다. 두 정상은 이날 오후 메트로폴호텔에서 확대정상회담을 열었으나 오찬과 합의문 서명식을 취소한 채 회담을 종료했다.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번영을 위한 주춧돌이 놓일 것을 기대하던 국제사회는 갑작스러운 반전에 충격을 금치 못했다. 회담 성공을 간절히 바라온 남북의 많은 이들이 낙담한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트럼프 대통령의 기자회견을 보면 회담 결렬의 직접 원인은 제재 완화와 비핵화 조치의 범위를 둘러싼 이견으로 추정된다. 트럼프는 회견에서 “제재가 쟁점이었다”면서 “우리가 원하는 비핵화를 우리에게 줘야 우리도 제재 완화를 해줄 수 있다”고 했다. 미국이 추가 핵시설의 존재를 거론한 것도 분위기를 냉각시킨 것으로 보인다.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영변 핵시설 외에도 굉장히 규모가 큰 시설이 있었다”면서 “미사일도, 핵탄두도 빠져 있었고, 핵 목록 작성과 신고 이런 것을 합의하지 못했다”고 했다.

 

즉 영변 핵시설 폐기를 대가로 제재 완화를 요구한 북한에 대해 미국은 더 많은 비핵화 조치 요구로 맞섰고, 이 과정에서 새로운 우라늄 농축시설이 돌출적으로 거론되면서 합의불능의 흐름이 만들어졌던 것 같다. 트럼프 대통령의 옛 개인 변호사인 마이클 코언이 미국 국회에서 트럼프에게 불리한 증언을 한 것으로 미국 정계가 들썩거린 것이 트럼프의 대북 태도를 강경하게 만들었을 가능성도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왼쪽)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7일 베트남 하노이의 소피텔레전드메트로폴호텔에서 비공개 회담을 하기 전 악수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석연치 않은 점은 정상회담에서 새로운 핵시설을 거론했고, 이에 북한이 놀랐던 것 같다는 트럼프의 발언이다. 그 정도로 중대한 핵시설이라면 미국이 왜 그간 거론하지 않다가 정상회담에서 불쑥 꺼냈는지 의문이다. ‘딜브레이커’가 될 정도로 중대 시설인지, 실체가 불분명한 의혹 수준인지도 분명하지 않다. 하지만 이것이 협상을 교착시키는 악재가 돼서는 곤란하다. 북한이 적극적으로 설명할 필요가 있다.   

 

지난해 6월 1차 북·미 정상회담 이후 8개월여 만에 열린 하노이 정상회담이 결렬되면서 한반도 대전환의 여정에 제동이 걸린 것은 유감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섣부른 비관은 금물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 위원장과 계속 좋은 친구관계를 유지하겠다”고 했고, 폼페이오 장관도 “앞으로 몇 주 이내에 합의가 이뤄지기를 기대한다”며 협상의 모멘텀을 유지하겠다는 뜻을 비친 점을 봐도 그렇다.   

 

북한과 미국 간의 핵협상은 이미 30년에 가까운 세월이 실패와 우여곡절로 점철돼온 과정이었다. 이번 회담 결렬도 북핵 문제 해결의 지난함을 다시 일깨우는 정도의 의미로 받아들이면 된다. 북·미가 후유증을 훌훌 털고 조속한 시일 내 회담 테이블에 마주앉기를 바란다. 문재인 정부도 협상의 모멘텀을 살리려는 중재 노력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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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노이의 아침이 밝았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세계사를 새로 쓰고 있다. 일각의 방해와 폄훼를 뒤로하고 이 두 인물은 여기까지 왔고, 또 거대한 한 걸음을 함께 내디딜 것이다.

 

회담은 핵동결과 핵봉인 단계를 중간 목표로 삼고 있다. 이후 핵폐기와 핵신고로 모든 비핵화를 마무리하는 것이다. 이는 매우 중요한 변화다. 완전한 비핵화까지의 일정표가 윤곽을 잡아가기 때문이다. 북·미 간 관계정상화도 일정표가 있다.

 

베트남 케이스는 북한 개혁·개방의 이정표다. 베트남 경제발전의 관건은 외자 유치였다. 베트남은 1986년 도이머이를 개시했지만, 1995년 미국과 수교하고 나서야 활발한 외자 유치에 성공했고 마침내 경제발전이 본격화되었다. 이번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에서 이익대표부 설치를 합의한다면, 베트남의 경우처럼 북·미수교와 대북 제재의 전면적 해제, 그리고 활발한 국제투자로 이어질 것이다. 머지않은 미래다.

 

엊그제 문재인 대통령이 동아시아 질서의 근본적 변화와 신한반도 체제를 이야기했다. 동아시아 신질서의 주도권을 이야기했다. 3·1절에 구체화되겠지만, 한민족의 새로운 100년을 이야기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차 북·미 정상회담을 앞둔 26일 베트남 랑선성 동당역에 도착한 뒤 경호원들의 호위 속에 이동하면서 현지 관계자들에게 손을 흔들어 인사하고 있다. 동당 _ 연합뉴스

 

북·미 하노이선언 이후 필연적으로 다가올 동아시아 신질서를 또렷이 응시할 때다. 냉전체제에선 ‘소련-중국-북한’ 대 ‘미국-일본-남한’이 대립하는 질서였다. 북·미관계 정상화 후 이 질서는 비현실적이다. 동아시아의 냉전 스위치가 꺼지면, 동아시아의 낡은 질서는 해체된다. 신질서에서는 무엇보다 6자 경제공동체가 핵심이다.

 

시작은 북한 개발이다. 미국, 일본, 중국, 러시아 등 주변국 민간 기업이 모두 참여하게 될 것이다. 이미 미국의 민간은 발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미국은 국제부흥개발은행을 활용한 지원 방식도 추진할 것이다. 민간 기업들이 독자적으로 또는 한국 기업과 손잡고 송·배전망 개보수, 화력·태양광·풍력발전소 건설, 항만 개보수·신축 등에 참여할 수 있다. 자원개발이나 관광·레저 사업, 제조업과 IT 첨단산업에도 뛰어들 수 있다. 머잖아 철도공동체를 시작으로 6개국의 경제협력기구 창설로 이어질 것이다. 이러한 경제협력과 개발은 2차대전 직후 미국 정부가 일방적으로 지원한 마셜 플랜이 아니다. 마셜 플랜은 엄밀히 냉전 전략이었다. 앨빈 토플러의 예언이 맞다면, 동아시아는 북미권, 유럽권을 능가하는 새로운 성장지대가 될 것이다. 여기에 한민족 번영의 기회가 있다.

 

가까운 미래를 철저하게 준비해야 할 때다. 한반도 신경제를 근거로 동아시아 신경제 건설의 이니셔티브를 쥐어야 한다. 그래야 정치적인 통일이 아니어도 경제를 통해 민족을 회복할 수 있다.

 

이때 우리가 지향해야 할 민족주의는 무엇일까. 과거 저항적 민족주의가 제국주의 시대를 이겨낼 독립과 생존의 깃발이었다면, 구제국주의가 사라진 오늘날, 신자유주의 세계화 20년 이후의 민족주의는 철저한 민족이기주의, 배타적 국수주의로 왜곡되고 있다. 과연 세계는 어디로 가야 하는가.

 

한반도에선 상황이 다르다. 대한민국의 이념적 기준이던 북한 변수는 현저히 약화될 것으로 보인다. 마찬가지로 북한에서의 미국 변수도 빠르게 호전될 것이다. 다소의 혼란이 있겠으나 남북한의 ‘마음의 통일’은 한반도 신경제를 통한 민족의 회복에 의해 가능하다.

 

민족의 회복에서 한발 더 나아가면 새로운 민족이 있다. 낡은 민족주의나 왜곡된 민족주의와 달리 우리 민족은 새로운 민족주의에 가장 가까이 다가서고 있다. 동아시아 신질서가 내장해야 할 이념은, 폭력적 세계화가 아니라 호혜적 세계화여야 한다. 배타적 국수주의가 아니라 새로운 민족주의여야 한다. 새로운 민족주의는 전쟁을 반대한다. 새로운 민족주의는 개방적이고 포용적이며 인류의 공동번영을 지향한다. 한반도가 동아시아 새 역사의 주역이다.

 

<최민식 |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정책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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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6일 오전 전용열차 편으로 베트남 랑선성 동당역에 도착했다. 인민복 차림의 김정은 위원장은 장시간 열차여행의 여독에도 불구하고 미소 띤 표정으로 영접행사를 마친 뒤 하노이로 향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도 이날 밤 전용기 편으로 하노이에 도착했다. 27~28일 북·미 정상 간의 역사적인 협상이 열리는 베트남 수도 하노이에 전 세계의 시선이 쏠리면서 현지 분위기도 한껏 달아올랐다. 두 정상이 이번 회담에서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번영을 위한 주춧돌을 놓기를 희망한다.

 

지난해 6월12일 싱가포르에서 열린 1차 북·미 정상회담 당시 70년 만에 대좌한 두 나라 정상은 적대관계 청산을 위한 시동을 걸었지만, 가야 할 목표를 공유하는데 머물렀다. 이후 8개월간도 순탄치는 않아 후속 협상에서 실질적인 이행방안을 이뤄내지 못했다. 미국에서는 북한의 비핵화에 대한 회의론이 커졌고, 북한도 상응조치 없이 핵 신고를 압박하는 미국에 대한 의구심을 키워갔다. 이런 교착을 풀기 위해 두 정상이 다시 톱다운 방식으로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를 진전시키기 위한 구체적인 합의를 시도하게 된 것이다. 그런 만큼 이번 회담은 싱가포르 정상회담 못지않게 역사적인 의미를 갖는다. 한반도 비핵화에 탄력이 붙고 평화가 정착할지, 지루한 교착과 긴장이 반복될지가 이번 회담으로 결정될 것이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차 북·미 정상회담을 하루 앞둔 26일 오전 베트남 동당역에 도착해 베트남 정부 대표단과 취재진에게 인사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양측의 태도는 긍정적이다. 북한 매체들이 김정은 위원장이 베트남에 도착하기도 전인 지난 24일 출발 소식을 보도한 것은 이례적이다. 신변안전을 우려해 최고지도자의 이동 중에는 보도하지 않던 관행을 깬 것은 이번 회담을 기필코 성공시켜 북한의 밝은 미래를 열어가겠다는 김 위원장의 의지가 반영됐을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도 25일(현지시간) 출국에 앞서 트위터에 올린 글에서 “완전한 비핵화로 북한은 급속히 경제 강국이 될 것”이라며 기대감을 표시했다.

 

이달 초순 평양에 이어 지난 21일부터 하노이에서 진행 중인 사전 협상에서 양측은 북한의 비핵화 조치로 영변 핵시설 폐기와 모든 핵·미사일 프로그램 동결, 비핵화 로드맵, 미국의 상응조치로 종전선언, 평화체제 구축논의 개시, 연락사무소 개설, 경제제재 완화 등을 테이블에 올려놓고 치열한 줄다리기를 벌여왔다. 이 중에서 몇 가지가 정상회담 테이블에 올라가 ‘하노이 합의’에 담길지는 현재로선 예측불허다. 다만 미국이 협상 교착의 원인이던 핵신고 요구를 유보하는 대신 북한이 주장해온 단계적·동시적 접근법으로 선회한 점에서 본다면 ‘등가교환’에 가까운 거래가 이뤄질 것이라는 기대감도 갖게 한다.

 

관건은 역시 대북 제재 완화 여부다. 미국이 실무협상에서 비핵화 상응조치로 종전선언과 연락사무소 개설을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제재 문제가 풀리지 않는다면 북한은 소극적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미국이 제재 완화에 대해 전향적 조치를 취하면서 북한이 통 큰 비핵화 조치를 내놓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협상결과가 될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9일 트럼프 대통령과 통화하면서 제안한 철도·도로 연결과 남북경협을 지렛대로 활용할 것을 기대한다. 문 대통령은 25일 ‘경제와 번영으로 나아가는 신한반도체제’를 언급했다. 대북 제재 완화나 해제 이후 대북 경제사업에서 주도권을 쥐고 남북 공동번영을 이루겠다는 의지를 피력한 것이다. 하노이 정상회담이 신한반도체제로 향하는 출발점이 된다면 더할 나위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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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23일 전용열차로 2차 북·미 정상회담이 열리는 베트남 하노이를 향해 출발했다고 북한 조선중앙통신이 24일 발표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도 25일쯤 베트남을 향해 출발할 것으로 관측된다. 공식일정은 27~28일이지만 사실상 북·미 정상회담의 막이 올랐다고 할 정도로 하노이 현지는 분위기가 달아오르고 있다. 

 

이번 회담과 관련해 앤드루 김 전 미국 중앙정보국(CIA) 코리아미션센터장은 지난 22일(현지시간) 스탠퍼드대에서 열린 공개 강연에서 김정은 위원장이 자신의 자녀가 핵 위협 속에서 살기를 원하지 않는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지난해 4월 방북한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이 김 위원장에게 ‘비핵화할 의향이 있는가’를 묻자 “나는 아버지이자 남편이다. 그리고 내게는 아이들이 있다. 나는 내 아이들이 핵을 이고 평생 살아가길 원하지 않는다”고 답했다는 것이다. 김 위원장의 비핵화 의지를 가늠할 수 있는 인상적인 발언이다. 북·미 협상의 초기 국면부터 흉금을 터놓은 진솔한 대화로 양국 간 불신을 조기에 해소하고 신뢰관계를 구축하려는 충심(衷心)이 엿보인다. 

 

22일 베트남 하노이의 한 티셔츠 업체가 북·미 두 정상의 얼굴 디자인을 티셔츠에 찍어내는 작업을 하고 있다. 하노이 _ AFP 연합뉴스

 

앤드루 김이 이번 정상회담에서 미국이 제공할 수 있는 상응조치를 경제·정치·안보 등 3개 분야에서 다양하게 거론한 것도 눈길을 끈다. 이 중에는 북한 은행의 국제거래 완화, 북한 수출입 제재 완화, 북한 경제구역 내 조인트벤처 제재 면제, 여행금지국 해제, 테러지원국 지정 철회 등이 포함돼 있다. ‘북·미 군사협력’ 등 그동안 공개되지 않은 내용도 눈에 띈다. 물론 대북 제재 해제에 대해서는 “최종적이고 완전하게 검증된 비핵화(FFVD)가 가시권에 노출됐을 때” 가능하다는 단서를 달았지만 발언의 무게중심은 상응조치에 놓여 있는 듯 보인다. 

 

앤드루 김은 지난해 북·미대화 재개와 지속 과정에 깊숙이 간여했다. 그런 그가 퇴직한 지 얼마 안돼 공개 강연에 나선 것은 미국 정부의 의중이 작용했을 것이다. 북·미 정상회담이 카운트다운에 들어간 시점에서 미국 내 뿌리 깊은 회의론을 불식시키고, 미국이 줄 수 있는 최대치를 제시하며 북한에 비핵화 조치를 독려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틀 앞으로 다가온 2차 북·미 정상회담은 김 위원장의 자녀들을 포함한 북한의 미래세대를 위해서도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번영의 큰 획을 긋는 만남이 돼야 한다. 260여일 만에 다시 만나는 두 정상이 흉금을 터놓는 생산적인 대화로 성과를 내기를 희망한다. 김 위원장은 구체적인 조치로 비핵화 의지를 입증하고, 트럼프 대통령도 과감한 제재 완화로 화답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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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인 투자가인 로저스홀딩스의 짐 로저스 회장이 다음달 북한을 방문한다. 정부 관계자는 경향신문의 단독 보도에 대해 “로저스 회장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초청을 받았고 미국 정부도 그의 방북을 승인했다”고 확인했다. 김 위원장이 하노이 2차 북·미 정상회담(2월27~28일) 직후 로저스를 북한으로 불러들인 것은 자신의 개방과 경제발전에 대한 의지와 함께 미국과의 관계개선에 대한 기대를 강조하기 위해서다. 로저스 회장의 방북이 대북 투자의 마중물로 이어질지 주목된다.

 

로저스 회장은 워런 버핏, 조지 소로스와 함께 세계 3대 투자가로 꼽히는 인물로, 전부터 북한 투자에 지대한 관심을 보여왔다. 지난달 KBS 프로그램에 출연해 북한을 1980년대 중국에 비교하며 “북한에 정말 투자하고 싶다”고 밝혔다. 2015년 CNN 인터뷰 때도 “전 재산을 북한에 투자하고 싶다”고 했을 만큼 수년째 대북 투자를 강조하고 있다. 실제 로저스는 지난해 12월 금강산에 골프리조트를 보유한 리조트 개발업체 아난티의 사외이사로 합류했다. 전 세계적으로 가장 유망한 투자처가 북한 관광산업이라고 본 것이다. 서방 자본의 대북 선도 투자가 임박했다고 볼 수 있다.

 

세계적인 투자가이자 로저스홀딩스의 회장인 짐 로저스 회장이 2018년 7월 2일 오전 서울 여의도 콘래드 호텔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북한이 베트남식 또는 중국식 개방을 추구하고 있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김 위원장이 2차 북·미 정상회담 장소로 베트남 하노이를 선택한 것은 그 현장을 보기 위함이다. 김 위원장이 로저스를 초청한 데는 대북 국제 제재를 풀어달라는 뜻도 담겨 있다. 그런 점에서 로저스의 방북은 대북 투자에 앞서 비핵화 협상의 보험이자 촉진제 성격을 갖는다. 

 

북·미 협상이 어떻게 될지 모르고, 대북 제재도 풀리지 않은 상황에서 북한에 대한 투자는 신중히 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중국의 성장 가능성을 가장 먼저 포착해 큰 수익을 거둔 로저스의 통찰을 무시해서는 안된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도 북한의 경제발전을 낙관하며 북한에 대한 민간 투자를 강조했다. 주목할 대목은 로저스가 남북한 경제발전을 하나로 본다는 점이다. 남한의 자본과 경영기술, 북한의 풍부한 천연자원과 값싸고 숙련된 노동력을 결합하면 엄청난 발전을 이룬다는 것이 북한 발전론의 핵심이다. 세계 최대 시장인 중국과 이웃하고 있다는 점도 강조한다. 국내 기업도 차근차근 북한에 대한 투자를 준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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