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16일로 북유럽 3개국 국빈방문을 마무리했다. 이 기간 중 문 대통령은 오슬로포럼, 한·노르웨이 정상회담 공동기자회견, 스웨덴 의회 연설 등을 통해 사흘 연속으로 대북 메시지를 발신했다. ‘하노이’ 이후 교착된 북·미 협상과 남북대화의 복원을 위해 담아둔 생각들을 적극적으로 펼쳐 보이며 북한의 화답을 촉구한 셈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스웨덴 국빈방문 중인 지난 15일(현지시간) 스톡홀름 뮤지칼리스카 콘서트홀에서 칼 구스타프 16세 스웨덴 국왕과 함께 문화행사 공연을 본 뒤 한국 태권도 공연단을 격려하고 있다. 김기남 기자


문 대통령이 지난 12일 노르웨이 오슬로포럼 기조연설에서 ‘국민을 위한 평화’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은 그간 추진해온 대북 정책의 본뜻을 되새기자는 취지로 보인다. “평화가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이익이 되고 좋은 것이 되어야 한다”고 한 것은 추상적인 평화가 아니라 당장 실행 가능한 실천적·적극적 평화가 필요하다는 메시지다. 남북대화, 북·미 협상이 결국은 무엇을 위한 것인가를 성찰해 보자는 의미가 담겼을 것이다. 문 대통령은 지금 필요한 것은 “새로운 비전이나 선언이 아니라 서로에 대한 이해와 신뢰를 깊게 하는 것이고, 이를 바탕으로 대화 의지를 확고히 하는 것”이라고도 했다. 대화 교착을 타개하기 위해 상호 이해와 신뢰라는 기본 태도를 강조한 것은 북·미 양측 모두 귀담아야 할 내용이었다.


문 대통령은 지난 14일 스웨덴 의회 연설에서 “평화를 지켜주는 것은 핵무기가 아닌 대화”라면서 “북한이 대화의 길을 걸어간다면 전 세계 어느 누구도 북한의 체제와 안전을 위협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한발 더 나아가 “북한은 완전한 핵 폐기와 평화체제 구축 의지를 국제사회에 실질적으로 보여줘야 한다”고도 했다. 북한이 안전을 보장받으려면 신뢰를 얻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문 대통령이 연일 강한 톤으로 대북 메시지를 발신한 것은 미국의 대선국면이 임박한 것과도 관련이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18일 플로리다에서 2020년 대선 출정식을 열고 재선 도전을 공식화한다. 이달 말 트럼프 대통령의 방한 계기를 살리지 못할 경우 북·미 협상 교착이 상당 기간 이어질 우려가 있다. 대선기간 중 협상이 재개된다고 해도 득표전략과 연계되는 만큼 북한의 운신 폭이 좁아질 가능성도 크다. 


문 대통령은 할 말을 다 했고, 공을 북한으로 넘겼다. 문 대통령은 “시기·장소·형식을 묻지 않고 언제든지 대화에 응할 준비가 돼 있다”며 “김정은 위원장에게 달려 있다”고 했다. 김 위원장이 이번 기회를 놓치지 않기를 바란다.

Posted by KHross

댓글을 달아 주세요

20일 뒤면 무술년을 보내고 기해년 새해를 맞이합니다. 지난 1년은 김 위원장의 표현처럼 ‘공상과학 영화’ 같은 한 해였습니다. 핵·경제 병진노선 폐기, 북한의 핵·미사일 실험중단 및 한·미의 군사훈련 중지, 남북 및 북·미 정상회담 개최 등 과거엔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역사적 사변들이 잇달아 전개되었습니다. 한반도는 분단 70년 사상 최초로 전쟁의 공포 없는 1년을 보냈으며, 평화번영의 미래를 꿈꿀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 같은 ‘한반도 대전환’은 정권과 국가의 운명을 건 김 위원장의 담대한 결단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한국인의 한 사람으로서 감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이제 시작일 뿐입니다. 올해 ‘한반도 비핵화-평화체제 프로세스’라는 해법을 마련했으니 내년은 구체적인 로드맵을 짜고 이행하기 시작해야 합니다. 그래야 2020년을 프로세스 완성의 해로 만들 수 있습니다. 온 길 못지않게 가야 할 길도 녹록지 않습니다.

 

서울시민환영단 시민들이 9일 서울 종로구 마로니에 공원에서 서울남북정상회담을 기원하는 공연을 펼치고 있다. ‘서울 남북정상회담·김정은 위원장 서울 방문 서울시민환영단’ 소속 회원들이 9일 서울 종로구 마로니에공원에서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연내 답방과 남북정상회담을 기원하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김창길 기자

 

최대 관건은 표류 중인 북·미 협상과 서울 답방입니다. 김 위원장 입장에서는 모든 것이 불만스러울 것입니다. 자발적으로 지하 핵실험장을 파괴하고 싱가포르까지 날아갔지만 미국은 실질적인 비핵화로 인정하지 않고 제재완화의 ‘제’자도 꺼내지 못하게 하고 있으니까요. 핵신고-검증-폐기 카드만 고집한 채 한 발자국도 움직이려 들지 않습니다. 오히려 갈수록 제재를 강화하고 있으니, 이런 벽창호가 따로 없을 거라고 생각할 듯싶네요. 문재인 대통령에게도 섭섭한 마음을 갖고 있는 걸로 압니다. 미국을 설득해 제재완화라든가 북·미관계 정상화를 얻어내주리라고 기대했을 테니까요. 남북정상회담을 3번이나 열었으니 개성공단이나 금강산관광 정상화 조치 정도는 해줄 수 있지 않으냐고 생각할 수 있을 겁니다. 실제로 남측과 접촉하는 북한 인사들이 ‘불편한 마음’을 여과없이 드러내고 있다는 말을 전해들었습니다.

 

이해합니다. 하지만 간과한 게 있습니다. 북한은 김 위원장의 결단 하나로 움직이지만 남한과 미국은 여론에 의지할 수밖에 없습니다. 자연히 결정에 시간이 걸리고 결과도 당초 취지와 달라질 수 있습니다. 남북경협도 국제사회의 의사를 무시하면 더 어그러질 겁니다. 남·북·미가 각자의 방식대로 한반도 평화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현실에서 어느 정도의 충돌음은 불가피합니다. 중요한 것은 협상의 진전입니다. 남북 및 북·미 관계는 자전거와 같습니다. 앞으로 나가지 못하면 넘어집니다. 전진하기 위해서는 양보하고 인내해야 합니다.

 

전략적 자세가 필요한 시점입니다. 국제사회에서 힘의 논리가 통용되는 현실을 무시할 수 없습니다. G2라는 중국조차 무역전쟁에서 미국의 힘에 눌려 양보하고 있지 않습니까? 미국 조야는 대북 불신과 협상 비관론이 지배하고 있습니다. 상황은 명확합니다. 북한이 먼저 움직여야 합니다. 핵신고가 어렵다면 영변핵 영구 폐기 제안을 구체화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미국도 아예 꽉 막힌 것은 아닙니다. ‘초강경파’ 존 볼턴 백악관 안보보좌관이 최근 ‘비핵화에 성과가 있으면 제재 해제를 검토할 수 있다’는 취지의 발언을 한 것을 명심하십시오. 완전한 비핵화 이후에나 제재 해제가 가능하다는 미국의 기존 입장과 다른, 중요한 신호이니까요. 찌가 움직일 때 낚싯줄을 잡아채야 물고기를 잡을 수 있는 법입니다.

서울 답방을 놓고 고민하고 있는 걸로 압니다. 연내 답방은 어렵겠지만 답방 자체는 무산시키지 않을 걸로 기대합니다. ‘약속을 지키는 지도자’ 이미지만큼 큰 정치적 자산도 드물 겁니다. 물론 답방 시점은 2차 북·미 정상회담 이후가 좋겠지요. 하지만 먼저 답방해 북·미협상 교착을 풀고 진전의 계기를 마련하는 방법은 어떨까요? 답방은 문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정치적 기반을 강화해주고, 그것은 다시 남북 및 북·미 관계 발전에 자양분 역할을 할 겁니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그 반대의 경우도 성립한다는 것입니다.

 

시간은 많지 않습니다. ‘반트럼프’ 진영인 민주당이 장악한 미국 하원은 내년 2월 개막합니다. 그 전에 북·미관계의 안정성을 다져놓을 필요가 있습니다. 시한이 다가오기로는 북한도 마찬가지입니다. 제재 3년째로 접어들며 주민 고통이 가중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물가와 환율의 안정세가 언제까지 유지될지 알 수 없습니다. 더구나 북한은 당창건 75주년이자 국가경제발전 5개년 계획의 마지막 해인 2020년을 앞두고 있습니다. 경제집중 노선의 성공을 선포하려면 내년에 잘 준비해야 합니다. 남북 및 북·미 관계가 발전해야 가능한 일입니다. 김 위원장의 결단을 기다리겠습니다.

 

<조호연 논설주간>

Posted by KHross

댓글을 달아 주세요

지난봄 광활하게 보였던 북한 비핵화 공간이 겨울로 접어들면서 시야가 탁해지더니 갑자기 눈에 띄게 축소됐다. 판문점과 평양에서의 남북정상회담,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 등으로 훈풍이 돌던 한반도가 어느새 짙은 매연으로 채워지고 있다. 방치할 경우 한반도라는 공간 속에 사는 수천만명의 생명까지 위험해진다. 서둘러 매연을 빼내고 굳게 닫혀있는 공간도 최대한 열어야 한다.

 

북한 비핵화를 ‘북한 내 일체의 핵무기와 플루토늄·고농축 우라늄 등과 같은 핵물질의 완전한 제거 또는 국외 이전, 이와 관련된 재처리 및 농축시설 등의 폐기, 그리고 핵무기 제조 등에 관여한 과학기술자의 소개(疏開)’로 정의한다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임기 내에 비핵화를 달성하기란 불가능하다. 동네 이삿짐 옮기듯 핵무기와 핵물질을 이전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남북한 간 핵무기 비대칭성이 오랫동안 남아 있을 수도 있겠다는 불길한 우려가 결코 과장이 아닐 듯하다.

 

돌이켜보면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는 애당초 과욕이었다. 그래서일까. 조윤제 주미대사는 지난 11월 취임 1년 인터뷰에서 “모든 것을 협상 테이블 위에 올려서 큰 시간표 안에서 일괄적으로 타결했으면 좋겠다는 기대가 있었지만,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 것 같다”며 “70년간 쌓여온 불신과 적대관계가 하루아침에 신뢰 관계로 바뀌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조 대사는 영변 핵시설만이라도 서로 합의하고 뒤로 돌아가지 못하도록 잠금장치를 하자고 제안했다. 정부 내에 조 대사만 이런 시각을 갖고 있지는 않을 것이다.

 

러시아, 중국에 이어 미국의 세 번째 핵무기 위협국인 북한의 영변 핵 단지는 ‘주체 조선’ 핵무기 개발의 상징적 장소이다. 핵 관련 건물만 390개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지난 9월 평양공동선언에서 미국의 상응조치를 조건부로 영변 핵시설의 영구폐기 의사 표명에 한 걸음 더 들어가서 검증까지 받을 용의가 있다고 최근 보도됐다.

 

영변 내 원자로 및 관련 시설의 가동을 중단(shut-down)하고서 핵물질을 완전히 제거(closed-down)한 후에 주요 장비의 부품들을 제거하거나 작동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decommissioned)이 현실적 비핵화의 지름길이다. 다시 말해 영변 내 핵무기 제조와 농축 및 재처리 관련 시설을 없애고서 ‘(공원, 녹지용) 그린 필드’ 또는 ‘(해체 폐기물 저장소 용도) 브라운 필드’로 변경할 수만 있어도 획기적 진전을 이루는 셈이다. 영변 시설의 불능화만 달성할 수 있어도 트럼프가 언급한 ‘비핵화 20%’ 수준에 도달하는 미니 비핵화(mini-denuclearization)를 이루는 효과는 있다.

 

그럼에도 비핵화가 6·12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 이후 6개월째 이렇다 할 진전도 없이 피로현상을 지나 심폐소생술(CPR)이 필요한 시점에 이르렀다. 골든타임을 놓칠 경우 북·미관계는 물론 남북관계에도 재앙이다. 공교롭게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지난 11월 이사회 보고에서 영변 원자로에서 작업을 하고 있는 것이 관측됐다고 발표했다. 통일부 장관도 지난 4일 북한의 핵 활동이 완전히 중단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 모두 사찰단이 영변을 방문해야 확인 가능하다.

 

그러나 북한은 2009년 4월 IAEA 사찰단을 추방한 후 이들의 재방북을 일절 허용하지 않고 있다. 비핵화의 출발점인 사찰은 원칙적으로 서로 합의된 시설, 인력 등에만 국한되며, 핵무기 사찰은 IAEA 권한 밖의 일이다. 북한이 사찰관의 방북을 허용하더라도 이들이 마음대로 집 안 곳곳을 다니면서 딱지를 붙이는 집달리는 아니다. 무엇보다 북한이 군사시설까지 조건 없이 사찰을 허용할 리가 만무하다. 핵무기 접근은 김 위원장의 용단이 있어야만 가능한 일이다.

 

그렇다면 트럼프와의 진검승부를 앞두고 있는 김 위원장이 더 이상 좌고우면하지 말고 약속대로 방남하여 비핵화에 대한 확고부동한 의지를 보여주는 것이 정공법이다. 김 위원장이 리오넬 매시처럼 좁은 공간을 절묘하게 비집고 뚫고 나가는 묘기까지 선보이길 기대하진 않지만 서울 방문을 열망하는 사람들만큼은 실망시키지 않았으면 한다.

 

<이병철 | 평화협력원 부원장>

 

Posted by KHross

댓글을 달아 주세요

미국 중간선거가 코앞이다. 패권국가 미국 국력의 절대성이 꾸준히 감소해오긴 했으나 2차대전 이후 세계질서를 관장해온 그들의 선거는 결코 남의 일로 치부할 수 없다. 한반도 문제가 미국 선거, 특히 국내이슈 위주로 치러지는 중간선거에선 큰 변수가 못 되지만, 반대로 결과가 한국에 끼치는 영향은 크다. 게다가 비핵화 및 평화프로세스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차지하는 비중을 생각할 때 우리의 눈길이 쏠릴 수밖에 없다. 9월 평양정상회담으로 긴 교착상황을 끝내고 새로운 돌파구로 가는 듯했지만, 다시 어려움에 직면하고 있는 시점이라 더 촉각을 곤두세우게 된다.

 

미국 정치에서 중간선거는 집권정부에 대한 평가의 의미가 있고, 이는 곧 대통령에 대한 ‘재신임 묻기’라는 인식이 있지만 대부분 집권당의 패배로 결론난다. 부시와 오바마 정부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오바마는 중간선거에서 기록적인 참패를 당하고 상하 양원을 모두 내줬지만 재선에는 성공했다. 현재 거론되고 있는 시나리오는 하원은 민주당에 내어주고, 상원 다수당은 유지한다는 것이다. 2차대전 이후 대통령의 지지율이 50% 이하일 경우 집권당이 하원에서는 평균 36석을 잃었고, 최근 3차례 중간선거에서 상원은 평균 6석을 잃었다. 트럼프의 지지율이 40% 내외를 오간다는 것을 감안하면 양원을 다 잃을 수 있는 통계지만 6년 임기의 상원의원이 35명만 교체되는 가운데 주로 민주당에서 수성을 해야 한다는 점에서 트럼프의 행운이 과거 통계를 빗나가게 만들 것 같다. 또한 지난번 대선에서 많은 전문가들의 예상을 빗나가게 한 것이 트럼프를 지지하지만 투표장 갈 때까지 드러내지 않는 소위 ‘샤이 트럼프(Shy trump)’ 비중이 최소 5%라고 할 때 이번 선거는 트럼프의 패배라고 단정하기 어려운 결과를 낼 가능성이 매우 크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일(현지시간) 테네시 주 존슨시티에서 열린 공화당 중간선거 지원 유세에서 연설을 마친 뒤 지지자들의 환호에 주먹을 쥐어보이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연설에서 지난달 24일 서명한 개정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언급하면서 "지난주 나는 한국과 획기적인 새로운 무역협정에 서명했다"고 자화자찬했다. 연합뉴스

 

지난 2년간 겪어본 트럼프는 모든 미국인의 대통령이 되고자 하는 지도자가 아니다. 반대로 분열구도를 만들어 싸움을 붙이고, 거기서 자신의 하드코어 지지자들만 만족시키는 방법으로 권력을 거머쥐었고, 또 유지하고 있다. 더불어 현 지지율이 의외의 승리를 가져다준 대선 당시와 큰 변화가 없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그렇기에 하원을 잃을 경우 예산통과에 어려움을 겪거나 탄핵정국으로 넘어가 발목을 잡더라도 트럼프는 개의치 않고 자신만의 어젠다를 추진할 것으로 보인다. 그런 맥락에서 일부에서 제기하는 북·미관계에 대해 정치적 입지를 만회하기 위해 강경노선으로 돌아갈 것이라기보다는 자기가 이룬 유일한 외교적 성과라는 점에서 문제를 해결하고자 할 가능성이 더 크다. 여기에 기대를 건다. 다만 트럼프가 중장기적 관점보다 현재적 시점에서 얼마나 유리하고, 이길 수 있는가에만 관심이 있다는 점에서 불안하다. 그러나 바로 그런 특성 때문에 트럼프가 미국 내 기성질서를 극복하고 여기까지 왔다는 점도 사실이다.

 

이것이 평양정상회담에서 김정은 위원장과 문재인 대통령이 판을 키운 이유 중 하나이다. 먼저 종전선언과 핵신고서 제출이라는 교환방정식에 핵프로그램의 일부 조기폐기와 제재완화를 추가함으로써 교환조건을 확대시켰다. 선(先)비핵화만 고집하는 미국 내 강경파들이 득세하는 상태에서 북한이 전면신고를 하더라도 불성실신고로 규정할 것이 뻔하기에 트럼프의 구미가 당길 만한 과감한 선제조치를 약속한 측면도 있다. 두 번째 판은 문재인 대통령이 키웠다. 한반도평화프로세스의 실현에 있어 가장 큰 장애물인 비핵화는 현재 미국이 열쇠를 쥐고 있으나 변덕 많은 트럼프만 믿고 있을 수 없다는 점에서, 한반도평화프로세스의 절박성과 당위성을 유엔에 직접 호소하고, 유럽순방에서도 역설하였다. 그리고 교황 방문을 통해 재차 국제여론에 호소하겠다는 계획이 진행 중이다.

 

미국의 중간선거 이후 한반도평화프로세스는 어떻게 될 것인가? 국내정치 일정으로 말미암아 미뤄진 탓도 있지만, 강경파들을 중심으로 북한의 양보에 오히려 피냄새를 맡은 맹수처럼 더 밀어붙여 항복을 얻어내려는 미국은 협상의 원칙과 신의를 망각한 강자의 횡포를 부리고 있다. 어렵게 되살린 기회를 다시 잃어버릴 수는 없다. 현재 백악관 내부에서조차 조율된 입장을 만들어내지 못하고, 실현 가능한 로드맵조차 제시하지 못하고 있는 미국이 오히려 한국에는 자기 방식만 강요하려는 최근 행보에 우린 당당하게 나갈 필요가 있다. 결국 한반도는 우리 것이고, 우리가 평화하자는 데 외부자들의 도움은 고맙지만 방해는 사양한다는 결심으로 묵묵히 길을 가기를 바란다. “쫄지 마! 대한민국!”이라고 외치며 힘을 주고 싶다.

 

<김준형 한동대 교수·국제정치>

Posted by KHross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