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겠다’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집권하면서 미국 정치의 화두만이 아니라 주인공들도 과거로 돌아간 모습이다. 트럼프가 백인 전성시대의 향수를 앞세워 70대 대통령 시대를 열더니 이제는 민주당에서도 70대 후보들이 선두로 나섰다.


조 바이든 전 부통령이 민주당 대권 도전을 선언하면서 워싱턴에서 노인정치(gerontocracy) 논란이 일고 있다. 올해 72세인 트럼프는 76세인 바이든이 출마를 선언한 지난 25일 트위터에 “졸린(sleepy) 조, 레이스에 온 것을 환영한다”고 적었다. 바이든이 기운 없고 졸린 노인처럼 보인다며 놀린 것이다. 그는 다음날에도 백악관 기자들을 만나 바이든에 비해 자신은 “젊고 활기찬 사람”이라고 주장했다. 바이든도 응수했다. 그는 ABC에서 ‘졸린 조’라는 호칭은 처음 들었다며 자신은 ‘하이퍼(hyper) 조’로 불린다고 말했다. 자신은 활력이 넘치는 사람이란 것이다. 


차기 대권을 노리는 여야의 선두 주자들이 모두 70대다. 트럼프는 취임 기준 70세로 역대 최고령 대통령 기록을 세웠다.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의 69세 기록을 갈아치웠다. 재선에 성공한다면 2021년 재임식 때는 74세로 본인 기록을 다시 깨게 된다. 민주당 대선후보 선호도 1위인 바이든은 당선되면 78세다. 취임 기준으로 이미 레이건이 재임 후 퇴임할 때보다 한 살 더 많다. 젊은층의 지지 열기 덕에 나이가 부각되지는 않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미친(crazy) 버니’라는 별명을 지어준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은 현재 77세로 여야 후보들을 통틀어 최고령이다. 민주당 대선후보 선호도 1, 2위가 모두 70대 후반으로 80대 대통령 시대를 열 수 있는 사람인 셈이다. 


이 정도면 고령 문제를 지적할 만하다. 워싱턴포스트 칼럼니스트 리처드 코언은 대놓고 “샌더스와 바이든은 대통령이 되기에는 나이가 너무 많다”고 반대한다. 그는 “시대정신은 항상 움직인다. 당신이 70세가 넘었다면 그것은 이미 당신을 지나갔다고 봐야 한다”고 말한다. 바이든이 모바일 메신저 스냅챗을 아침 시리얼 정도로 알고, 샌더스가 인기 래퍼 드레이크를 영국 해적으로 알아도 이상할 게 없다는 것이다. 실제로 지난해 중간선거로 하원의원의 평균 나이가 10세 낮아진 것을 보면 대선후보 고령화는 시대적 요구에도 맞지 않다. 


물론 건강하고 지적 능력이 유지된다면 생물학적 나이는 문제될 게 없다는 반론도 가능하다. 73세로 재선에 도전하던 레이건이 56세의 월터 먼데일 후보가 “나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묻자 “이번 선거에서 나이를 문제 삼을 생각은 없다”며 먼데일이 너무 젊고 경험이 없어도 문제 삼지 않겠다고 멋있게 되돌려준 사례도 있다. 뉴욕타임스의 칼럼니스트 프랭크 브루니는 ‘노인정치를 변호하며’라는 칼럼에서 올해 78세인 민주당 1인자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을 모범 사례로 들며 “나이 많은 게 더 좋을 수도 있다”고 주장한다.


70대 대통령 시대의 진짜 문제는 물리적 나이만이 아니라 미국 정치의 방향성에 있다. 버락 오바마라는 40대 흑인 대통령의 집권으로 미래를 말하던 미국 정치가 불과 몇 년 만에 백인들의 추억 되살리기 경쟁으로 후퇴하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미국 사회가 미래에 대한 개척과 모험을 원하는 역동의 시대를 지나 과거의 영광을 그리워하는 황혼기에 접어들었음을 보여주는 것일 수 있다. 사실 백인들의 풍요로운 과거를 되돌려주겠다는 트럼프의 등장으로 미국의 역주행은 이미 예고됐다. 그 역주행을 멈추겠다고 나선 바이든 역시 미래를 말하기보다는 트럼프식이 아닌 민주당 버전의 옛날 미국을 되살리겠다고 강조할 뿐이다. 미국의 대선전이 비전 경쟁이 아니라 과거 해석 경쟁이 된 듯하다. 어쩌면 황혼은 미국만이 아니라 전 세계적 현실일지도 모르겠다.


<워싱턴 | 박영환 특파원>

Posted by KHro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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