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시간20분 불안한 여정 끝 트리폴리 도착… “리비아는 이제 자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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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 가다 /리비아 서바이벌

4시간20분 불안한 여정 끝 트리폴리 도착… “리비아는 이제 자유”

by 경향 신문 2011. 8. 28.

ㆍ곳곳에 반군 검문소 … 약탈 우려해 짐은 차 안으로


“환영합니다. 리비아는 이제 자유입니다(Welcome to Libya, Libya is free now).”


튀니지 국경을 건너 처음 만나는 리비아의 작은 도시 날루트(Nalut)에서 트리폴리까지 향하는 여정은 희망과 불안의 교차점이었다. 


무아마르 카다피의 42년 철권통치를 몰아낸 리비아 국민들의 사기는 어느 때보다 하늘을 찔렀지만 폐허가 된 트리폴리 시내 풍경이 말해주듯 현실의 시계(視界)는 잔뜩 흐림이었다. 


28일 리비아 수도 트리폴리 시내에 도착한 이지선 기자.

시내에 도착하자마자 일단 인터넷이 가능한 호텔 로비를 찾아 기사를 작성하는 동안 바깥 어디에선가 총성이 울렸다. 


트리폴리 시내와 검문소에서 만난 반군들은 환한 표정으로 승리의 표시인 브이(V)자를 그려보이며 “카다피는 이제 없다” “우리가 이겼다” 등의 구호를 외치는 등 현재의 승리를 자축했다. 국경도시 날루트에서 4시간20분을 달려 28일 오전 10시(현지시간) 트리폴리 도심에 진입하기까지 19개의 검문소를 지났다. 엄격한 검문을 당하면서 여전히 마음놓을 수 없는 상황을 실감했다.


트리폴리 시내 역시 온전한 기능을 하기까지는 갈 길이 멀어 보였다. 거리 곳곳에 쓰레기가 쌓여 있고 총을 든 반군과 펜과 카메라를 든 기자들뿐 일반 주민들은 눈에 띄지 않았다. 평소 같으면 심하게 붐벼 노련한 운전사라도 빠져나가기 어려웠을 구트샤알 거리도 반군과 카다피의 대치 상황이 길어지면서 상점은 모두 문을 닫고 사람들은 자취를 감췄다. 


마주친 반군들은 “트리폴리의 상황이 95%는 안전하지만 카다피군이 좋은 위치에 저격수를 배치해놓은 아부슬림 지역은 많이 위험하다”고 입을 모았다. 


트리폴리 옆 도시 자위야에서도 건물들에 총알 자국이 그대로 남아 있었고 폭격으로 완전히 무너져 내린 건물들이 눈에 띄었다.


■ 희망·불안 교차하는 사막도로


리비아 국경도시 날루트를 출발한 것은 28일 새벽 5시40분(현지시간). 전날 날루트에서 하룻밤을 보낸 일행은 일찌감치 트리폴리로 향하기로 했다. 차를 타러 나오자 운전사와 가이드가 전날 운전을 할 때 차 지붕 위에 올려두었던 짐들을 차 안으로 싣고 있었다. 가뜩이나 좁은 차 안에 왜 짐을 싣느냐고 물었더니 “이제 진짜 여정이 시작인데 혹시 짐을 보고 약탈을 하기 위해 총을 쏠 수도 있기 때문에 넣어두어야 한다”고 답했다. 겁이 덜컥 났다.


여전한 불안감에도 불구하고 쭉 뻗은 리비아의 사막도로를 달리며 바라보는 여명의 색조는 눈부시게 아름다웠다. 하지만 그런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것도 잠시, 곳곳마다 반군 깃발이 꽂힌 임시 검문소가 설치돼 우리의 신분을 확인했다. 혹시나 싶어 날루트에서 트리폴리로 출근하는 리비아 반군 병사를 대동하지 않았지만 검문소에서 어떤 일이 생겼을지 모를 일이다.


출발 후 1시간쯤 지난 6시30분 티지(Thig)라는 마을에 도달하자 타고온 4륜구동차의 타이어가 구멍이 났다. 타이어를 갈기 위해 잠시 멈춰 동행한 반군 모하메드 자루크(33)와 이야기를 나눴다. 그가 전하는 리비아 상황은 희망 쪽이었다. 날루트에 거주하는 그는 원래 엔지니어 출신으로 컴퓨터 공학 박사과정을 하다가 반군에 가담했다. 자루크는 “혁명 이전 우리는 ‘아니다’라고 말할 권리가 없었다”며 “혁명은 먹을거리를 위한 것이 아니라 투표와 자유를 위한 것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벵가지에서 일어난 반군 봉기를 카다피군이 폭력으로 진압하는 모습을 보고 분노를 느꼈다고 했다.


실제 1984년 카다피를 향한 쿠데타 당시 트리폴리와 날루트에 살던 그의 삼촌 2명도 희생됐다. 그러나 그는 단연코 전쟁 참여가 복수 때문은 아니라고 말했다. 지금은 매일 날루트부터 트리폴리로 출근하며 혹시 모를 교전에 대비하고 있지만 상황이 안정되면 박사과정을 끝마치고 싶다고도 했다.


리비아의 상황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것은 똑같이 혁명을 겪은 접경국 튀니지 젊은이도 마찬가지였다. 리비아까지 따라온 튀니지인 가이드 이삼 오피(23)는 “리비아는 풍부한 천연자원이 있기 때문에 상황이 안정되고 정치가 바로 잡히면 두바이와 같은 부를 누릴 수 있을 것 같다”며 “하지만 튀니지는 그렇지 못하다”고 말했다. 실제 날루트에서 트리폴리까지 이어지는 길목마다 대규모 발전소와 송전탑 등이 많이 눈에 띄는 등 오일머니를 바탕으로 한 리비아의 인프라는 아프리카 국가들을 앞서가는 상황이다.


자루크는 카다피의 수중에 있던 타지와 반군 거점인 날루트 사이에 교전이 벌어져 반군 4명이 사망하는 등 갈등이 극에 달했었다고 전했다. 그는 “하지만 이제는 카다피 정권 당시의 교통경찰과 반군이 울력으로 도시를 안정시키기 위해 애를 쓰고 있다”면서 “트리폴리에서도 곧 이러한 모습을 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 인샬라 … 국경을 넘다


튀니지 제르바에 머문 지 이틀째인 지난 27일 국경을 넘어 리비아의 수도 트리폴리로 향하는 길에 올랐다. 여정은 기름통 2개와 함께 사륜구동 차 맨 뒤칸에 쪼그리고 앉아 2시간 넘게 사막길을 달리는 것으로 막을 열었다. 기름통은 리비아 내 주유소가 제 역할을 못하고 있어 튀니지에서부터 싣고 가야 하는 필수품이기 때문이다.


제르바 호텔에서 이날 오전 11시30분 출발한 기자는 2시간여를 달려 튀니지 중남부의 조그만 마을 타타윈(Tataouine)에 도착했다. 이곳에서 갈아탄 차는 스포츠유틸리티 차량이다. 기자 4명에, 아랍어를 하는 튀니지인 가이드가 타고 있어 짐을 모두 실을 만큼 자리가 넉넉하지 않았다. 뒷좌석 기름통에서 새어나오는 지독한 냄새를 견뎌가며 사막길을 달려야 했다. 돌아가며 맨 뒤칸에 쪼그리고 앉아 맞는 사막의 햇볕은 어찌나 따가운지 에어컨을 켜도 땀이 줄줄 흘렀다.


타타윈을 떠난 지 약 2시간. 리비아 도시 와진과 튀니지의 데히브 사이의 국경이 나타났다. 반군이 장악한 국경검문소에는 여기저기 반군 깃발이 흩날리고 있었다. 국경을 넘어 처음 만난 리비아의 도시는 날루트. 서쪽 국경이 막혀 있는 상태에서 남부 국경을 통과할 수밖에 없는 외국인 기자들이 대부분 거쳐가는 코스다. 일찌감치 반군이 장악한 도시의 가장 좋은 건물인 동사무소는 ‘날루트 미디어 센터’로 역할을 바꾸었다. 이곳에서 트리폴리까지 향하는 취재를 위한 이동 허가증을 발급하고 있었다. 


리비아인 가이드는 오후 8시쯤 이프타르를 같이해야 한다면서 함께 식사할 것을 권했다. 이프타르는 해가 떠 있는 시간 동안 금식을 해야 하는 라마단(이슬람 금식 성월) 기간의 저녁식사를 말한다. 이슬람권의 적십자사인 적신월사가 이프타르를 주고 있었다. 무슬림들은 대추야자와 신선한 우유 등으로 먼저 온종일 허기진 속을 달랜 뒤 정식식사를 했다. 6개월간의 기나긴 교착상태에서 벗어나 평온을 되찾는 모습이 스쳐갔다.


이프타르를 마치고 난 뒤 리비아인 가이드는 “트리폴리까지 가는 길에 일부 초소에는 밤에 반군을 가장한 괴한들이 나타나 돈을 요구하는 등 안전상의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며 날루트에서 하루 묵을 것을 권했다. 물론 안전이 중요해 날루트에 묵고 가기로 결정했지만 당초 가이드와 이날 안에 트리폴리까지 가기로 약속한데다 사전설명이 없었기 때문에 이런 제안 자체가 황당했다. ‘이것이 바로 말로만 듣던 아랍의 인샬라 문화였구나’라고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신이 뜻하는 대로’라는 의미의 ‘인샬라’라는 말은 ‘최선을 다하겠지만 그건 신의 뜻에 달렸다’면서 약속을 어긴 것을 회피하는 의미로도 해석된다. 


가장 큰 돌발변수는 제르바를 떠나기 전날인 26일에서 27일 오전 사이에 일어났다. 26일 오전 11시. 제르바 호텔에서 동료와 기사 작성을 하고 있는데 한 남성이 다가오더니 유창한 영어로 물었다. “기자세요?” “네. 왜 저희를 기자로 보셨나요?” “심각하게 노트북 앞에 앉아 모니터를 들여다보고 있는 사람은 당신 둘뿐이었으니까요.” 그는 자신이 리비아인 모하메드 엘키시(31)이며 반군 과도국가위원회의 국제미디어 담당 업무를 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리비아 반군 지지자들이 27일 트리폴리에서 무아마르 카다피 국가원수의 통치지침을 담은 그린북을 불태우고 있다. 트리폴리 _ AP연합뉴스



■ 어긋난 계획, 사라진 ‘안전판’


엘키시는 “반군 거점인 벵가지에서 비행기를 타고 제르바로 왔고 국경을 넘어 트리폴리로 들어갈 예정”이라며 “트리폴리에 외신기자들을 위한 미디어 센터를 세우는 일을 급선무로 시작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엘키시는 기자들이 묵고 있는 호텔에 가서 상황을 설명하고 원하는 기자와 함께 트리폴리로 들어가겠다고 했다. 이미 25일 밤 여러 명의 기자가 트리폴리로 입성했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솔깃한 제안이었다.


회사에 바로 보고했다. 제르바에 있는 기자나, 서울에 있는 데스크나 누구도 트리폴리의 치안상황을 알 수 없는 상태에서 믿음과 바람을 바탕에 깔고 내려야 하는 결정이었다. 모두가 고심을 거듭했다. 한편에서는 트리폴리의 치안상태가 과연 들어가기에 안전한가도 걱정됐다. 엘키시는 “100% 안전하다고 볼 수 없고 어떤 곳은 매우 안전하고 어떤 곳은 매우 불안하지만 카다피군을 대부분 몰아냈다”고 말했다. 특히 “기자들이 머물고 있는 호텔은 안전하다”고 말했다.


비슷한 시각 한국 대사관 측은 트리폴리의 상황이 어제와 변함이 없이 불안하다고 밝혔다. 트리폴리 현지 기업에 근무하다 알제리에서 전쟁을 피하고 있는 한 교민이 현지 직원과 통화를 한 뒤 알려준 트리폴리 상황은 양측의 입장을 섞어놓은 것 같았다. 트리폴리 시내는 비교적 평온을 되찾아 95%까지 정상을 회복했지만 고층 빌딩에서 카다피군이 반군을 저격하고 있기 때문에 빌딩이 늘어선 광장이나 거리는 가지 않는다고 했다. 직접적인 위협은 적을지언정 잠재적 위협이 도사리고 있다는 말이다.


■ 낙타와 탱크가 공존하는 풍경


고민에 고민을 거듭한 끝에 최종 결정은 출발 몇 시간 전인 27일 새벽에야 이뤄졌다. 어렵게 내린 결정은 반군 측 인솔자와 함께 트리폴리로 간다는 것이었다. 엘키시의 신분과 그가 실제 차량 등을 섭외할 수 있는지 의문이 들었지만 일단 믿어보기로 했다.


하지만 결국 그와 함께 트리폴리로 가는 길은 무산됐다. 당초 국경을 넘어 리비아로 들어섰을 때 엘키시가 섭외해주기로 했던 반군 측과 제대로 연락이 닿지 않아 그가 제안했던 방법 자체가 무산된 것이다. 다양한 자발적 참여조직이 층위를 이룬 반군 측이 아직 일사불란한 조직을 갖추고 있지 않다는 점을 확인한 순간이었다. ‘오직 신만이 아는’ 변수들이 꽤나 자주 발생하고 있다는 것도. 


사막 한가운데 풀을 뜯는 낙타와 얼마 전까지도 교전에 동원됐을 버려진 탱크가 공존하는 비현실적인 풍경이 펼쳐지고 있는 리비아. 그 비현실이 담고 있는 가능성이 현실로 나타날 수 있을지 궁금해졌다.


< 날루트·트리폴리에서 >


이지선 기자 jsl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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