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부 ③-1 늘어가는 ‘기후난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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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 가다 /경향신문 지나간 기획

3부 ③-1 늘어가는 ‘기후난민’

by 경향 신문 2008. 3. 3.

다카|글·사진|도재기기자

ㆍ논마다 바닷물 … 농부는 새우양식


드넓게 펼쳐진 땅, 갖가지 나무와 농작물로 수놓인 평야는 솜씨 좋은 퀼트 작품 같다. 햇빛으로 반짝이는 수많은 강줄기도 눈길을 붙잡는다. 카트만두에서 다카로 가는 비행기 속에서 내려다 본 방글라데시는 아늑하다. 그러나 사람과 릭샤(삼륜 자전거), 자동차가 뒤얽혀 북적이는 다카 도심을 헤집으면 또다른 얼굴을 만난다.


릭샤꾼, 이티방가(벽돌 깨는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눠보면 방글라데시의 속살이 보인다. 계속되는 물난리와 해수면 상승 등 ‘최악의 기후변화 현장’임이 감지된다.



방글라데시는 도시빈민으로 전락하는 기후난민이 급증하고 있다. 사진은 다카근교 빈민들의 열악한 거주지 모습.


지난해 12월21일 오후 다카 시내 람나구역. 흰색 뚜비(모슬렘 모자)를 쓴 릭샤꾼 압둘 삿다(60)는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땟국물이 흐르는 룽기(치마 같은 전통 복장), 알록달록하지만 빛이 바랜 릭샤에서도 삶의 고단함이 묻어났다.


삿다는 원래 남부지방인 보리살 인근 마울파 마을에서 농사를 지으며 살았다. 그러나 홍수가 그와 가족의 삶을 통째로 뒤엎었다. “4년 전 홍수로 집도, 땅도 모두 잃었다. 마을 사람 절반이 물에 쓸려갔다.” 그는 소작살이로 2년을 견뎠다. 돌이 귀한 땅이라 나무판자로 벽을 세우고, 함석과 대나무·널찍한 코코넛 잎사귀로 집도 새로 지었다. “2년 전 또 강물이 집을 삼키고, 주인 땅까지도 삼켰다. 강 가까이에 사는 가난한 사람들은 홍수, 사이클론(열대성저기압·태풍)으로 집을 날려 2~3번씩 이사하는 경우가 흔하다.” 결국 그는 2년 전 식구들을 고향에 남겨두고 다카로 올라왔다. 농사 짓던 그가 도시에서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다. 그나마 돈이 조금 있어 거지가 아니라 릭샤꾼이 됐다. 공동숙소에서 비슷한 사연의 동료 30여명과 함께 사는 그는 하루 350타카(약 4500원)를 번다.


씩씩한 릭샤꾼 안사르 바이키(16)와 건물 경비원 무함마드 술탄(45), 자갈 대신 건축자재로 쓰일 벽돌을 하루종일 깨는 로우샤나 비비(54·여), 온갖 잡일을 하며 살아가는 할리 마가뚠(52·여)…. 강물에 땅과 집을 잃거나, 해수면이 상승하면서 바닷물이 땅에 스며들어 농사를 못 짓게 되자 고향을 등진 사람들이다. 기후변화가 낳은 환경재앙으로 난민이 되어버린, ‘기후 난민(climate refugee)’들이다. 대도시 어디서나 이런 사람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농부들에게 논밭의 상실은 삶의 뿌리가 뽑히는 일이다. 먹고 살기 위해선 ‘도시 빈민’이 될 수밖에 없다. 세계은행에 따르면 방글라데시 도시의 슬럼가는 지난 10년 동안 5.7% 커졌다. 다카, 치타공 등 주요 도시의 슬럼가 인구는 전체 인구의 13.4%에 이른다.


다카에서 서쪽으로 1시간여 떨어진 파드마(갠지스) 강변의 꼬녹샬 마을. 1902년 설립됐다는 학교에선 운동장의 절반이 사라졌고, 건물 한쪽은 무너졌다. 교사인 쇼히둘 이슬람(42)은 “4년 전 피해를 입어 겨우 복구했더니 지난해 8월 우기 때 또 당했다”고 한숨을 쉰다. 그는 기후변화를 취재한다는 기자의 말에 대뜸 입을 연다. “방글라데시에는 4계절 외에 우기(몬순기)와 헤몬또 깔(이슬의 계절) 등 6계절이 있었다. 이제는 여름과 겨울, 우기 3계절만 있는 것 같다.”


방글라데시 농촌의 참상은 다카에서 남부 쿨나지역 바게르하트까지 가는 10시간의 여정 속에서 숱하게 만났다. 메그나강변에 위치한 바로이 칼리 마을도 그중 하나다. 선착장의 가게는 무너져 내린 강변에 아슬아슬하게 서 있다. 아불 카길(45)은 “(강변에서 1㎞는 족히 떨어진 강 위의 숲을 가리키며) 10여년 전만 해도 여기와 저 숲이 연결돼 있었다. 홍수로 물길이 나더니 해마다 조금씩 넓어져 이렇게 됐다. 집을 4번이나 옮겨야 했다”고 말한다. 방글라데시는 해마다 경작이 가능한 땅 1%씩이 강물에 잠겨 사라진다. 남부 해수면은 연 7㎜씩 높아진다.

 

파드마강변에 부서진채 위태롭게 서 있는 건물.

바게르하트에서 남쪽으로 3시간여 떨어진 사란콜라 인근의 암브라 가시아 마을은 바닷물의 피해지다. 마을을 둘러싼 네모난 논마다 물이 가득하다. 농사 대신 ‘박다 칭그리’(바닷물 새우)를 양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틴 모아이 비샤스(50)는 “벵골만의 바닷물이 땅으로 스며들어 농사가 안된다. 농부가 새우를 길러야 하다니…. 황당하지만 어떡하겠느냐”고 했다. 남부지방의 해수 피해지가 늘어나면서 역설적으로 방글라데시는 세계 10위권에 드는 새우 수출국이 됐다. 문제는 새우 양식은 농사만큼 일손이 필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소작농들은 결국 일자리를 잃고 기후난민이 된다.


1시간 정도 더 남쪽으로 내려가면 린다 마을이다. 기후변화로 사라질 위기에 처한 세계문화유산이자 맹글로 숲으로 유명한 순다르반스가 바다 건너로 보인다. 지난해 11월 1만명에 가까운 희생자와 수백만명의 이재민을 낳은 사이클론 ‘시드르’의 피해지 중 하나다. 논밭은 황무지로 변했다. 다섯 식구와 함께 구호 천막에서 생활하는 쿨미야 가(53)는 “농사는커녕 우물도 소금물이 돼 먹을 물이 없다”고 하소연한다.


제국주의 영국의 공업화 금지로 발전 기회를 잃고, 파키스탄 속국으로 또한번 좌절한 방글라데시. 독립 37년을 맞은 지금은 선진 부국들의 성장 대가인 기후변화의 희생자가 되고 있다. 기자가 건넨 망고맛 사탕 하나를 맛본 린다마을 잠나(5)의 해맑은 미소가 잊혀지지 않는다. 방글리(방글라데시인)들이 자랑하는 시인 타고르가 살아있다면 “바로 이 모습이 인류의 미래가 될 수도 있다”고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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