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부 ②-1 이상한 날씨, 네팔은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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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 가다 /경향신문 지나간 기획

3부 ②-1 이상한 날씨, 네팔은 두렵다

by 경향 신문 2008. 2. 18.

좀솜|글·사진|도재기기자

ㆍ‘냉기’ 잃은 세계의 지붕…산사태로 곳곳 ‘속살’


히말라야 고산자락을 찾아가는 길은 멀고 고달프다. 그럼에도 트레킹이란 이름 아래 해마다 수십만명이 히말라야를 찾고, 그 수는 늘어만 간다. 트레커들은 스스로 땀 흘리고, 숨을 몰아쉬며 하루종일 걷는다. 카메라만 들이대면 어느 곳이나 그림이 된다는 환상적 풍경 때문만은 아니다. 개발이란 이름 아래 화려하게 치장한 문명에 지친 이들이 한 숨 쉴 수 있는, 본래의 자연이 있기 때문이다. ‘쌩얼’ 히말라야는 인간이 그저 자연의 일부이자, 티끌처럼 한 순간 바람 속으로 흩어질 수 있는 존재임을 깨닫게 한다. 그런 힘이 있는 히말라야가 이상기후의 생채기를 곳곳에 드러내 보이고 있다.

 
히말라야 자락에 자리한 네팔은 기후변화의 직접적 영향권에 들어있다. 사진은 일출 모습으로 유명한 푼힐전망대 인근 한 마을의 산사태 모습.



지난해 12월17일, 에베레스트 서쪽 안나푸르나 연봉 아래의 고산마을 티니. 네팔 제2의 도시 포카라에서 경비행기를 타고 만년설을 내려다보며 20여분 날면 좀솜이다. 관광객들에게 인기 높은 안나푸르나 트레킹 코스의 출발점 중 한 곳. 좀솜에서 트레커들과 다른 길을 잡아 산길을 오르내리다보면 행정구역상 무스탕에 속한 20여 가구의 작은 마을 티니가 나타난다.


마니차(티베트 불경을 새긴 원통)를 돌리며 들어선 마을은 생각보다 아늑하다. 멀리 만년설이 날리는 닐기리봉 등 안나푸르나 고봉들이 마을을 품어안고, 지붕과 담장 위에는 장작들이 가득하다. 바람소리, 물소의 기침까지도 크게 들릴 만큼 조용하고 평화롭다. 그러나 마을 동남쪽 한 산줄기를 보면 섬뜩해진다. 만년설을 인 거대한 산 아래 부분이 뚝 잘려 내려앉았다. 무너진 산줄기 위로 흙절벽이 수십는 될 듯하다.


주민 강가디비 타갈리(70·여)는 “작년 산사태로 마을 사람들이 놀랐다”며 “아래에 집이라도 있었더라면 큰일날 뻔했다”고 손사래를 쳤다. 그는 “재작년에는 계곡물이 넘쳐 다리도 쓸려나갔다”고 덧붙였다. 장작을 쌓던 겐부르삿 타갈리(77)는 “가끔 외부인들에게서 여기저기 산사태 났다는 소식을 듣는다”며 “산에 나무가 줄고, 날씨가 따뜻해지면서 산사태가 늘어난 것 같다”고 말했다. 실제 좀솜행 경비행기 안에서 내려다본 산자락만 해도 4~5곳이 산사태로 흉물스러운 속살을 드러내고 있었다. 카트만두에서 포카라로 오는 9시간의 여정 중에도 곳곳에서 산사태를 목격했다.


히말라야 고산마을 주민들에게 산사태보다 더 큰 공포도 있다. 빙하호수의 둑이 터지면서 일어나는 이른바 ‘빙하호 홍수(GLOF)’다. 빙하가 녹으면서 호수가 만들어지고, 호수의 수량이 점점 늘어나면서 빙하호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이 되고 있다.

 


히말라야 안나푸르나 연봉에 둘러싸인 고산마을 티니의 한가로운 풍경



파탄에서 만난 히말라야 환경연구기관 국제종합산지개발센터(ICIMOD)의 빙하학자 삼즈왈 라트나 바즈라차랴는 GLOF를 히말라야 기후변화의 대표적 사례로 꼽았다. “정말 무서운 현상이다. 해발 4000 이상에 자리한 빙하호는 범람하면 급경사를 타고 위력이 점점 강해져 아래의 모든 것을 쓸어버린다.”


현재 히말라야 전역에는 빙하 1만5000개, 빙하호 9000개가 있는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문제는 빙하호의 수가 늘어나는 데다 이미 200개가 GLOF의 위험이 있다는 사실이다. 바즈라차랴는 “네팔에만도 3200여개의 빙하, 2300여개 빙하호가 있는데 이중 30여개가 위험하다”며 “이미 딕초, 루게초 호수 등 20여회의 범람 사례가 보고됐다”고 말했다.


고산지대와 달리 저지대인 아열대우림 지역과 중간지대인 구릉지역에선 홍수가 문제다. 카트만두에서 자동차를 타고 포카라를 향해 4시간쯤 달리면 티릿술리강 강변마을 말리쿠다. 강과 고산이 어울려 멋진 풍경을 연출해 여행자들에게 좋은 휴게소다. 강에서 갓 잡아올린 물고기를 튀기던 식당 주인 버디리 네팔(40)은 “경치가 아름답지만 우기 때는 무서운 게 강”이란다. “홍수 위험에 마을의 걱정이 크다”는 그는 “우기에 비가 오는 것은 당연하지만, 한꺼번에 몰려 폭우가 되는 게 문제다. 지난번 우기에도 일주일 사이에 비가 한꺼번에 쏟아져 걱정들을 많이 했다”고 말했다.


홍수로 집과 땅을 잃은 가난한 사람들은 도시빈민으로 전락한다. 카트만두 차빌구역 대로변 천막집에서 다섯식구와 돌조각품을 팔아 살아가는 퍼부 처우더리(41) 가족이 그 예다. 부투월 데비나가르 마을에서 살았다는 그는 “2년 전 홍수로 마을 사람이 많이 죽었다. 살아난 사람들은 카트만두로 와야 했다”고 술회한다.


기후 변화의 특징은 날씨가 비정상적, 극단적이 된다는 것이다. 눈이나 비가 와야 하는 철에 오지 않거나, 오게 되면 극단적인 폭우·폭설이 쏟아지는 식이다. 추울 때 춥지 않고, 더울 때 덥지 않은 것도 마찬가지. ICIMOD의 생물학자 나쿨 체르티 박사는 “네팔, 특히 온난화에 민감한 고산지대는 기후 변화의 생생한 현장”이라고 했다. 그는 “소수민족의 다채로운 문화와 함께 아열대우림에서 고산지대에 이르는 생물 다양성이 점차 소멸되고 있다”고 안타까워했다. 생물 다양성의 쇠퇴는 결국 인간의 소멸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네팔 기후변화의 가장 단적인 예는 카트만두에 내린 눈이다. 구릉지대에 속한 카트만두는 눈이 오지 않는 곳이다. 그러나 지난해 2월 무려 62년 만에 폭설이 내렸다. 밍마 노르부 세계자연보전연맹(IUCN) 카트만두 사무소 연구원의 말이다. “고산지대 주민들 외에는 눈을 직접 접할 기회가 거의 없죠. 당시 카트만두와 포카라에 폭설이 내려 야단이 났습니다. 일부 주민은 즐거워했지만, 저는 아찔하고, 두려웠어요.”


지금 ‘세계의 지붕’이라는 히말라야의 만년설은 녹고 있고, 히말라야와 더불어 살아가는 주민들은 “이상한 날씨”를 불안해 한다. 넉넉한 품으로 아시아인의 삶을 가꿔온 히말라야는 숱한 생채기를 내보이며 인류에게 무언의 경고를 던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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