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분거리 광장까지 7번이나 몸·가방 수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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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 가다 /리비아 서바이벌

10분거리 광장까지 7번이나 몸·가방 수색

by 경향 신문 2011. 8. 31.

ㆍ누군가 내 손을 당겼다… 얼떨결에 신발을 벗었다… 2만여명에 섞여 몸을 숙였다


라마단(이슬람 단식 성월)이 끝나고 닷새간의 축제인 이드 알 피트르가 시작된 31일(현지시간). 전날 오후부터 호텔에 잘 나오던 물이 나오지 않기 시작했다. 배도 곯고 있는데 물까지 안 나오게 된다는 생각에 마음이 착잡했는데, 새벽 3시쯤 수도관을 타고 물이 올라오는 소리가 들렸다. ‘물이 있을 때 씻어둬야 한다’는 생각에 바로 일어나 샤워를 마쳤다. 이날 오전부터 이틀 전 찾았던 트리폴리 중심가 순교자의 광장에서는 이드 알 피트르의 첫날을 맞아 대기도회 살라트가 열릴 예정이었기 때문에 새벽부터 광장으로 나가볼 생각이었다.


이날 기도회는 지난 2월 반정부 시위가 일어난 이후 가장 대규모로 이뤄지는 모임이다. 단지 종교적 의미만 있는 게 아니다. 트리폴리 주민 수만명이 한곳에 모이는 것 자체가 처음이다. 다른 나라의 반정부 시위와 달리 산발적 시위 이후 곧바로 내전 국면으로 넘어간 리비아의 경우 대규모 집회가 열린 적이 없기 때문이다.


오전 6시. 시민들이 광장에 모여들기 시작했다. 호텔에서 순교자의 광장까지는 걸어서 10분 정도. 주민들과 함께 걸어서 광장으로 향했다. 기도할 때 쓰는 개인용 카펫인 사자다를 끼고 경쾌한 발걸음으로 기도 장소를 향해 가는 수많은 시민들과 어깨를 부딪쳤다. 무슬림 특유의 동그란 흰 모자와 전통의상인 새하얀 카미스 차림의 수많은 사람들이 거대한 물결을 이뤘다. 눈인사를 나눈 몇몇의 표정은 매우 밝았다. 노래를 부르며 일렬로 기도 장소로 향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리비아 수도 트리폴리 중심가에 있는 순교자의 광장에서 이드 알 피트르 대기도회에 참석한 시민들이 31일 메카를 향해 일제히 절을 하고 있다. 수만명의 군중이 모인 광장 전체에 일순간 정적이 흘렀다. 트리폴리 _ 이지선 기자


하지만 경비는 삼엄했다. 길목마다 반군이 총을 들고 가방을 확인하고 간이 검색도구로 몸수색을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수천명이 한곳에 모인다는 얘기는 그만큼 친정부군 테러 공격의 대상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의미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반군들은 어깨에 두르고 있던 작은 가방까지 일일이 검색했다.


어떤 반군 병사는 신분증명서도 보여달라고 요구해서 국제기자증을 내밀었다.


여성을 검색하는 줄이 따로 있었지만 검색하는 사람은 모두 남자였다. 부르카를 입은 여성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기자의 가방 수색을 마친 한 반군이 “미안하다”고 말했다. 반군들이 주먹구구식이 아니라 체계적으로 보안체크를 하는 등 치안을 유지하고 있다는 것은 트리폴리가 점차 안정을 찾고 있다는 방증이기도 했다. 이날 반군들은 모두 자신의 신분증을 목에 걸고 있었다. 실제 활동하고 있는 반군의 수나 무기의 개수 등이 정확히 파악되기 시작했다는 의미다.


7번의 검색 포인트를 거쳐 광장에 도착했다. 총을 든 반군은 광장 중간 중간 또 광장을 둘러싸고 곳곳에 배치돼 있었다. 국립박물관을 비롯해 광장에 면한 건물들의 옥상에도 총을 든 반군 병사들이 있었다. 일부는 망원경으로 수상한 시도가 없는지 살펴보기도 했다. 평화의 상징인 기도와 폭력을 의미하는 총이 함께 어우러진 풍경은 이방인의 눈에 어색하고 불편했다.


■ 국제기자증 보여주자 “통과”


하지만 리비아 사람들에게 총은 진정한 자유를 가져다준 수단이었다. 기도와 총이 공존하는 모습은 순교자의 광장에 나온 사람들에게 익숙한 풍경인 셈이다. 종교 기도회였지만 곳곳에서 반군 깃발이 흩날렸다. 기도를 시작하기 전까지 발디딜 틈 없이 가득찬 광장의 모든 사람들이 일어서 양손을 번쩍 들고 승리의 V자를 그리며 환호성을 지르기 시작했다. ‘혁명의 성공’을 축하하는 의미였다. 매년 반복되는 기도회지만 이날의 기도회는 리비아인들에게는 특별한 감회를 느끼게 할 터였다. 한 기도 참가자는 “전통적인 기도회에서는 이런 장면이 없지만 사람들이 기쁨을 감추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친구들과 함께 온 치과의사 타리크 무하마드(32)는 무슨 기도를 할 거냐고 묻자 “리비아가 안전하고 민주주의와 자유를 이룰 수 있길 기도할 것”이라며 “리비아인은 하나가 됐다”고 말했다.


남성들과 따로 떨어진 구역에 마련된 여성들의 기도 장소로 향했다. 빠르게 안정을 찾아가고 있긴 하지만 아직은 불안한 상황이다. 이렇게 수많은 사람들이 모일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놀라웠다. 테러가 일어날 수도 있는,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이곳에 나오는 것이 무섭지 않으냐고 한 모녀에게 물었다. 딸 하자르 함무다(18)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전혀 무섭지 않다고 했다. 그는 “매년 기도회에 나오고 있지만 이번에는 혁명을 축하하기 위해 나왔다”며 “리비아의 행복과 국가 재건을 위해 기원할 것”이라고 말했다. 어머니 마나니 함무다(42)도 “우리나라가 경제적으로 발전했으면 좋겠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자유”라고 말했다.


이들의 카다피에 대한 분노는 극에 달해 있었다. 무하마드는 “비록 물도, 전기도 없고 생필품이 급격하게 줄어들고 있지만 혁명이 이뤄져서 정말 기쁘다”며 “왜냐하면 카다피는 매우 나쁜 사람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하자르 함무다도 “카다피는 어떤 방식으로든 법의 심판을 받아야 하고 죽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런 그들의 말에서 카다피에 대한 두려움은 감지되지 않았다. 서슬 퍼런 42년 통치에서 기를 못 펴던 사람들이 낯선 외신기자를 향해 독재자는 죽어야 한다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분위기로 트리폴리는 급격하게 변화하고 있었다. 


전날 반군 과도국가위원회의 알리 타르흐니 석유·재무장관이 코린시아호텔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카다피가 어디 있는지 확신하고 있다”고 밝히고 “도주 중인 카다피를 잡을 수 있다는 걸 의심하지 않는다”며 자신감을 보인 것과 같은 맥락이다. 코린시아호텔에는 현금인출기가 작동하는가 해서 들렀다가 기자회견 개최 사실을 알게 돼 운좋게 참석했다. 타르흐니 장관은 반군이 트리폴리를 장악한 뒤 이곳을 방문한 최고위직이었다.


■ 여성들 기도장소 따로 마련


한 여성이 여성기도구역 앞으로 나와 V자를 그리며 ‘리비아는 자유다’라고 외치기 시작하자 다른 여성들이 환호성으로 화답했다. 옆에서 지켜보며 취재하고 있던 내 손목을 이 여성이 잡아끌더니 기도하는 사람들을 위해 마련된 양탄자 위로 올라오라고 했다. 얼떨결에 신발을 벗고 이들 사이로 들어갔다. 수많은 사람들 틈에서 본 이들 하나하나의 표정은 살아 있었다. 기도회의 엄숙함과 신성함을 무시할 수 없겠지만 저마다 카메라를 들고 서로 사진을 찍거나, 반군의 깃발을 들고 있는 장면에서 이들이 얼마나 자유와 민주주의에 갈증을 느껴왔는지 나에게도 고스란히 전달되는 듯했다.


오전 7시50분쯤 순교자의 광장을 가득 메운 2만여명이 절하는 기도를 시작했다. 전날의 과격한 들뜸과 기쁨 대신 숙연함이 흘렀다. 개별적으로 기도를 하던 사람들이 하나가 되는 순간이었다. ‘알라가 가장 위대하다’는 뜻의 “알라후 아크바르(Allahu Akbar)”를 7번 외친 뒤 무릎을 꿇고 기도를 했다. 수만명이 한꺼번에 일제히 메카를 향해 고개를 숙이는 단 몇 초간, 트리폴리 전역은 숨을 죽였다. 난생 처음 보는 수많은 사람들이 하나가 된 웅장하고 엄숙한 장면에 소름이 돋았다. 이 순간만은 총을 내려놓고 기도를 올리는 반군들도 눈에 들어왔다.


이런 모습을 보면서 지난해 말부터 시작된 아랍혁명 과정에서 ‘분노의 금요일’이라는 말이 자주 언급됐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이슬람권의 휴일인 매주 금요일이 되면 많은 사람들이 기도회에 참석하기 위해 모스크를 찾았고, 모스크 자체가 대규모 시위가 번지는 시발점이 돼왔다. 예멘, 이집트, 시리아 등에서는 금요기도회를 마친 시민들이 시내의 광장 등에 모여들면서 반정부 시위로 격화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기도회와 반정부 시위가 직접적으로 연관된 것은 아니지만 리비아 시민들은 자신들이 이뤄낸 ‘혁명’ 역시 ‘알라’의 뜻이라는 말을 자주 건넸다. 이틀 전 이곳 순교자의 광장에서 만난 여성 옴 오웨스(40)도 “혁명은 알라의 뜻을 높이 세운 일”이라고 말했다. 기도회는 오전 8시30분쯤 끝났다. 


같은 날 호텔 로비의 TV에서는 역시 라마단을 마치고 이드 연휴를 시작한 시리아 다라의 끔찍한 상황이 계속 나오고 있었다. 보안군이 대기도회를 끝내고 모스크를 떠나던 시민들을 공격해 13세 소년을 포함해 최소 7명이 다쳤다는 CNN 보도가 흘러나왔다. 5만명의 목숨이 희생됐지만 그래도 성공이 멀지 않은 혁명을 이룬 리비아인들이 이날 ‘모든 것이 신의 뜻’이라고 자신을 낮추고 기도를 올리지 않았을까 생각해 봤다.


순교자의 광장에서 돌아와 기사를 마감하고 있는데 다른 방 동료에게서 반가운 전화가 걸려왔다. 이날 처음으로 호텔에서 아침식사를 주기 시작했으니 빨리 내려가 보라고 했다. 인샬라! 얼른 내려가 봐야겠다. 

<트리폴리에서>


이지선 기자 jsl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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