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의 6월, 절망과 희망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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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 국제칼럼/특파원 칼럼

홍콩의 6월, 절망과 희망 사이

by 경향 신문 2022. 6. 15.
2019년 6월16일 홍콩 도심에서 ‘범죄인 인도 조례(송환법)’ 제정에 반대하는 대규모 집회가 열리고 있다. AP연합뉴스

 

2019년 6월9일 100만명이 넘는 홍콩 시민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범죄인 인도 조례’(송환법) 반대 시위의 서막이었다. 시민들은 당시 정부가 제정을 추진하던 송환법이 홍콩의 인권운동가나 민주 인사들을 중국 본토로 송환하는 데 악용될 수 있다며 법안 철회를 요구했다. 6월12일 시위대는 송환법 심의 저지에 나서면서 경찰과 충돌했다. 경찰은 시위대를 해산시키기 위해 물대포와 최루탄, 고무탄 등을 동원했다.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고 느낀 홍콩 정부는 사흘 뒤 송환법 제정을 무기한 연기한다고 발표했다.

 

성난 민심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6월16일 시위대는 200만명으로 불어났다. 시민들은 송환법 완전 철회와 행정장관 사퇴를 요구했다. 시위는 격화됐다. 경찰이 실탄을 쏘고 화염병이 날아다니는, 전시를 방불케 하는 혼란이 6개월 넘게 이어졌다. 시위대는 행정장관 직선제를 포함한 5대 요구사항을 내걸고 민주화의 열기를 끌어올렸다. 송환법은 철회됐고 범민주진영이 그해 11월 구의원 선거에 압승하면서 일정한 성과도 남겼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정부는 더 이상 뒤로 물러서지 않았다. 경찰의 강경진압과 이듬해 코로나19 확산으로 시위는 잠잠해졌다.


2020년 이후 홍콩의 상황은 완전히 달라졌다. 중국은 5월 열린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에서 홍콩 국가보안법을 통과시켰다. 국가 안보를 이유로 민주진영의 와해를 시도한 것이다. 6월30일 보안법 시행을 전후해 민주진영 인사들이 하나둘 망명길에 올랐다. 떠나지 못한 이들은 보안법의 족쇄에 묶여 경찰에 체포됐다. 민주진영을 대표해온 시민단체와 노조가 줄줄이 해산했다. 반중 성향 매체로 낙인찍힌 언론사들은 잇따라 문을 닫았다.

중국은 여세를 몰아 지난해 3월 전인대에서 홍콩 선거제 개편안을 통과시켰다. 일국양제(한 국가 두 체제)하에서 홍콩의 자치를 상징하는 ‘항인치항(港人治港·홍콩은 홍콩인들이 다스린다)’의 원칙은 ‘애국자치항(愛國者治港·애국자가 홍콩을 다스린다)’의 원칙으로 바뀌었다. 개편된 선거제에 따라 지난해 12월 치러진 입법회 선거에서는 민주진영 인사들의 출마가 사실상 제한되고 친중 진영이 의석을 싹쓸이했다. 그리고 지난달 실시된 행정장관 선거에서는 2019년 시위 강경진압에 앞장섰던 존 리(李家超) 당시 보안국장이 단독 출마해 당선됐다.

지난 3년 홍콩은 너무도 변해버렸다. 6월의 거리를 뜨겁게 달궜던 시민들의 함성은 더 이상 찾아볼 수 없다. 지난 12일 영국, 미국, 일본 등 세계 각지에서 홍콩 반정부 시위 3주년을 기념하는 집회가 열렸다. 2019년 홍콩을 들끓게 했던 ‘광복홍콩 시대혁명’이라는 구호가 울려퍼졌다. 정작 홍콩의 거리는 잠잠했다. 다음달 1일 홍콩은 주권 반환 25주년을 맞는다. 새로운 행정장관도 취임한다. 많은 이들이 일국양제가 무너졌다며 홍콩의 미래를 걱정한다. 중국은 일국양제가 성공을 거뒀고 앞으로도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25년 전 홍콩인들이 그렸던 일국양제와 지금 중국이 그리는 일국양제는 너무도 거리가 멀어 보인다. 이제 그곳은 우리가 알던 홍콩이 아니다. 그래도 어쩌면 영영 되찾을 수 없을지도 모를 그날의 함성을 모두가 똑똑히 기억하길 기대해본다.

이종섭 베이징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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