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란만 부추기는 ‘북핵 용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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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 국제칼럼/기자메모, 기자칼럼

혼란만 부추기는 ‘북핵 용어’

by 경향 신문 2018. 10. 4.

최근 북한의 핵능력을 과거핵·현재핵·미래핵으로 나누는 분류법이 등장했다. 과거핵은 이미 완성해 놓은 핵무기·핵물질을, 현재핵은 진행 중인 핵프로그램을, 미래핵은 핵·미사일 실험을 의미하는 것으로 통용된다. 언론은 물론 상당수의 전문가와 청와대 고위 관계자까지 이 분류법을 따른다.

 

분류의 근거는 둘째치고 일단 용례와 개념이 지금까지 사용해왔던 것과 다르다는 점에서 혼란을 일으킨다. 특히 이 분류법으로는 무엇이 현재핵이고 무엇이 미래핵인지 알 수가 없다. 북한이 진행 중인 핵프로그램과 그 프로그램의 일부인 핵·미사일 실험을 따로 떼어놓고 하나는 현재핵, 다른 하나는 미래핵이라고 설명하기 때문이다.

 

과거핵은 원래 북한이 비밀 핵활동을 통해 은닉한 플루토늄을 말한다.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1992년 처음으로 영변 핵시설을 사찰했을 때 북한이 제출한 보고서와 IAEA의 사찰 결과가 일치하지 않는 문제가 발견됐다. IAEA가 미신고 시설에 대한 특별사찰을 요구하자 북한이 이에 불응하고 핵확산금지조약(NPT)을 탈퇴해 버림으로써 시작된 것이 지금의 북핵 위기다. 이때 북한이 감추려던 과거 핵활동을 지칭했던 말이 과거핵이다.

 

북핵 협상이 시작되면서 현재핵·미래핵이라는 표현도 나왔다. 협상 순서 때문이었다. 당시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영변 핵시설을 동결시키는 것이었다. 북한이 질적·양적으로 핵능력을 점점 고도화시키는 ‘수직적 확산’을 막으려면 원천이 되는 핵물질 생산을 가장 먼저 차단해야 했기 때문이다. 이미 보유 중인 핵무기와 핵물질을 폐기·반출하는 것은 그다음 단계 목표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재발방지를 위해 과거 핵 의혹을 규명하는 순서로 협상이 진행됐다. 이 과정에서 편의상 영변 핵시설과 핵프로그램을 미래핵으로, 북한이 보유 중인 핵물질과 핵무기를 현재핵으로, 북한의 과거 불법 핵활동을 과거핵으로 지칭한 것이다.

지난 25년간 북핵 문제를 다뤄왔던 사람들 사이에는 이 표현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한 공통인식이 이미 형성돼 있다.

 

그걸 갑자기 바꿔 쓰기 시작하니 혼란과 오해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공식적으로 규정해 놓은 것도 아니고 그저 이해를 돕기 위해 편의상 쓰던 말인데 이렇게 혼란을 일으킬 바엔 차라리 쓰지 않는 게 좋겠다.

 

<정치부 | 유신모 simon@ 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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