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인민해방군은 건군 92년 동안 네 차례 전군운동회를 열었다. 첫 회는 건군 25주년을 맞은 1952년 8월 베이징에서 개최됐다. 출전한 선수만 1800명, 관중은 7만명에 달했다.


마오쩌둥, 저우언라이 같은 국가 지도자까지 참석한 이 운동회에는 기괴한 규칙 하나가 적용됐다. 달리기 선수들이 신호총 소리가 아니라 ‘글씨’로 출발한 것이다. 출발선에 쪼그려 앉은 선수들은 규정된 글씨를 올바로 쓴 것을 확인받은 후에야 달릴 수 있었다. 달리기 실력이 아니라 한자 수준으로 순위가 갈린 셈이다.


이런 규정이 만들어진 이유는 대부분의 선수들이 ‘문맹’이었기 때문이다. 중화인민공화국이 건국된 직후 5억5000만명 인구 중 80%에 해당하는 4억명이 문맹이었다. 1953년 중국 국무원이 발표한 ‘문맹탈출’ 기준을 보면 간부와 기술자는 2000자, 도시 노동자는 1500자, 농민은 1000자 상용자를 익혀야 ‘문맹’ 오명을 벗을 수 있었다. 당시만 해도 쉽지 않은 목표였다. 


문맹 퇴치를 위해 ‘받아쓰기’ 출발이라는 고육책까지 짜낸 노력 덕분일까. 현재 중국의 문맹률은 유네스코 기준 3.6%로 떨어졌다. 중국은 이를 교육 역사의 가장 상징적 성과로 큰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dbq, xswl, bhys ….’


현재 중국은 문맹률이 아니라 ‘화성어’가 문제다. 자판을 치다 오타가 난 것 같은 이 단어들은 중국 ‘○○허우’(2000년대 출생자)들의 인터넷 신조어다. 10대인 이들은 중국 간체자의 발음기호인 병음 초성만 따서 줄임말을 생산해내고 있다. ‘dbq’는 미안하다는 뜻의 ‘뚜이부치’ 발음의 초성을 딴 것이다. ‘xswl’은 ‘웃겨 죽겠다’, ‘bhys’는 부끄럽다는 뜻이다. 기성세대는 암호 같은 10대들의 신조어를 화성어라고 부른다. 화성어 때문에 모바일 메신저에서 대화 장애를 겪고 있는 부녀가 광고 소재로 등장할 정도다.


신조어는 이전 세대에서도 나타난 ‘오래된’ 현상이다. 신조어의 주된 특징은 줄임과 간편함이다. 이제는 성년이 된 90허우(1990년대 출생자)들도 10대 때는 형이나 오빠라는 뜻의 거거를 gg로, 여동생은 mm으로, 헤어질 때 인사인 바이바이는 88로 줄여썼다.


최근 신조어의 두드러진 특징은 외래어와의 결합이다. lllllllllb(지연되다) 같은 유행어는 중국어 발음기호와는 무관한 영어에서 온 말이다. 온라인 게임을 즐기는 10대들의 일상에 게임 용어가 자연스레 스며들었다. 광둥어, 번체자, 일본어의 영향을 받기도 한다. 한국 예능프로그램을 통해 한국에서 건너온 ‘꽃길 걸어라(走花路)’는 표현도 중국 10대들의 단골 멘트가 됐다.


코카콜라의 중국 비즈니스 성공 뒤에는 ‘가구가락(可口可樂)’이라는 이름이 있었다는 사례처럼 중국은 각종 외래어를 표의어 한자에 맞게 의미와 발음을 살려 현지화 해왔다.


최근 암호 같은 알파벳 자음들, 전 세계에서 건너온 외래식 표현 홍수에 대해 언어의 순수성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높다. ○○허우들은 이전 어떤 세대보다 인터넷 언어 오염이 심각해, 품위 있는 중국어를 구사하는 능력이 퇴화할 수 있다는 의견이다. 중국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 온라인판은 “인터넷 언어가 언어 오염에 미치는 영향력을 과대평가하지는 말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일각에선 10대 또래 문화로 신조어가 나타나는 건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는 긍정론도 존재한다. 학교 졸업 후 사회로 진출하면 ‘공용어’에 적응하게 될 것이라는 의견이다. 이들은 몇 년 전만 해도 나를 지칭하는 워(我) 대신 쓰촨, 후난 사투리 발음에서 따온 오우(偶)를 쓰는 게 유행했지만 이제는 구닥다리로 사라졌다며 자연 도태된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문맹 퇴치운동에선 괄목할 만한 성과를 거둔 중국이지만 화성어에 대한 고민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베이징 | 박은경 특파원>

Posted by KHro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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