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확장억제 실행 방안 논의가 의미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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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 국제칼럼/유신모의 외교 포커스

한·미 확장억제 실행 방안 논의가 의미하는 것

by 경향 신문 2022. 9. 23.

한·미가 지난 16일 워싱턴에서 4년8개월 만에 고위급 확장억제전략협의체(EDSCG) 회의를 갖고 북한의 핵공격에 대응하기 위한 확장억제 강화 방안을 논의했다. 정부는 미국이 제공하는 전략자산을 더욱 확장된 규모로 적시에 한반도에 전개하기 위해 긴밀한 소통을 하기로 약속하고 EDSCG를 정례화함으로써 억제력 강화를 위한 제도적 협의의 틀을 마련한 것을 성과로 꼽고 있다.  

한·미가 확장억제 실행 방안을 구체적으로 논의하기 시작했다는 것은 북한의 핵무장을 막지 못해 ‘플랜B’를 가동해야 하는 단계에 진입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30년간의 북핵 외교는 철저히 실패했으며 북한은 이제 남한을 전술핵으로, 미국을 전략핵으로 위협할 수 있는 단계에 도달했다는 뜻이다. 미국의 핵우산으로 북한의 핵공격을 막는다는 개념적 수준의 안보 논의는 더 이상 의미가 없고 어느 때라도 즉각 핵 대응을 행동으로 옮길 수 있도록 구체적인 절차와 실행 방안을 마련해두지 않으면 안 되는 위기 상황이 현실로 다가온 것이다. 이번 EDSCG에서 한·미는 ‘압도적 대응’과 같은 엄포를 쏟아냈지만, 그보다 먼저 해야 할 것은 북한이 몰래 핵물질을 생산하고 초보적 수준의 기폭장치를 만지작거리던 단계에서부터 협상을 시작했으면서도 30년을 허송하고 지금에 이르게 된 것에 대한 반성이어야 했다. 

핵전력을 재래식 전력만으로 대응할 수는 없다. 그런데 동반 핵무장이나 전술핵 재배치는 현실적으로 가능하지 않다. 불행하게도 미국의 핵전력에 의존하는 것이 유일한 대안이다. 그러나 더 불행한 것은 확장억제를 실효성 있게 강화하는 것마저도 매우 험난하고 어려운 도전적 과제라는 것이다. 정부의 목표는 미국의 전략자산을 활용하는 문제에 한국의 의견이 반영되도록 하는 것이다. 하지만 미국은 기본적으로 핵전력 운용을 다른 나라와 협의하지 않는다. 그동안 EDSCG가 휴면상태에 있었던 것은 문재인 정부가 확장억제보다 북한과의 대화에 더 많은 비중을 뒀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미국이 이런 논의에 적극적이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EDSCG를 정례적으로 개최해도 미국의 핵전력 운용에 대한 결정에 한국이 관여하는 것을 제도적으로 보장받는 것은 어려워 보인다. 한국에 본토와 같은 수준의 억제력을 제공하겠다는 미국의 ‘담보 없는 약속’을 믿는 것 외에는 별다른 방도가 없다.

확장억제의 신뢰도를 높이기 위해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의 핵기획그룹(NPG)과 유사한 모델을 만들어야 한다는 견해도 있다. NPG는 나토 회원국들이 미국의 전술핵 운용에 관한 의사결정에 참여하고 핵전략을 조율하는 기구다. 하지만 최종 결정권은 미국 대통령이 갖고 있기 때문에 ‘나토식 핵공유’가 이뤄진다 해도 미국의 핵무기를 공유하게 되는 것은 아니다. 한국의 힘만으로는 미국을 움직이기 어렵기 때문에 한국과 마찬가지로 북한의 핵공격에 노출돼 있는 일본과 호주 등 역내 국가들과 함께 힘을 모아 미국의 전략자산 운용에 참여하는 방안을 추진해볼 수도 있다. 하지만 북한은 물론 중국·러시아 등의 강력한 반발을 초래해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을 크게 증폭시키는 부작용을 감당해야 한다.

확장억제 강화는 불가피한 선택이지만 비핵화와 한반도 문제 해결을 더욱 어렵게 만들 것이다. 북한의 핵공격을 막기 위해 미국의 전략자산을 끌어들이는 일에 국가적 역량을 모아 몰두해야 하는 상황으로 떠밀려가는 것은 애초에 한국이 목표했던 길도 아니고 가야 할 길도 아니다. 그럼에도 생존을 위해 역주행을 할 수밖에 없는 것이 지금 한국의 현실이다. 

미국의 전략자산에 안보를 의존하고 매달려야 하는 구조에서는 한국의 외교적·군사적 입지와 자율성이 좁아질 수밖에 없다. 미국이 무엇을 요구하든 거부하기 어렵다. 이번 EDSCG 공동성명에 북한의 핵공격 대응과 무관한 ‘인도·태평양 지역 안정성 강화’라는 문구가 포함된 것은 확장억제 제공의 대가로 미국의 세계전략에 협력하라는 취지로 읽힌다. 미국이 한반도에 중국을 겨냥한 중거리미사일을 배치하는 것을 받아들여야 하는 날이 오지 않는다고 누가 장담할 수 있겠는가. 앞으로 진행될 확장억제 실행 방안에 대한 한·미 간 논의는 북핵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여기까지 온 것이 국가의 미래를 얼마나 암울하게 만드는지, 그리고 핵을 머리에 이고 사는 일이 얼마나 힘든지를 체감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유신모 외교전문기자 simon@kyunghyang.com>

 

 

연재 | 유신모의 외교 포커스 -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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