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워킹그룹은 남북관계 파탄의 원인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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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 국제칼럼/유신모의 외교 포커스

한·미 워킹그룹은 남북관계 파탄의 원인이 아니다

by 경향 신문 2020. 7. 22.

순항하던 남북관계가 군사적 충돌을 우려해야 할 정도로 급변했다. 정부와 여당 일각에서 ‘한·미 워킹그룹’이 남북관계를 파탄에 이르게 한 원인이라는 목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다. 미국이 워킹그룹을 통해 남북 협력사업에 사사건건 개입해 제동을 걸고 남북사업을 방해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워킹그룹은 남북관계의 족쇄’라는 인식은 현재 한반도 정세에 대한 정확한 판단이 아니다.

 

워킹그룹은 대북제재를 포함한 북한 문제 전반을 다루기 위해 2018년 11월에 만들어진 한·미 간 논의의 틀이다. 미국이 지금까지 가만히 있다가 워킹그룹이 생기고 나서 갑자기 한반도 문제에 개입하기 시작한 것은 아니다. 미국은 북핵 문제가 발생한 이래 지속적으로 한국과 이 문제를 논의하면서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왔다. 이 같은 논의 방식이 지난해 11월부터 워킹그룹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기 시작했을 뿐이다. 만약 워킹그룹이 없었다면 미국은 다른 방식으로 남북관계와 한반도 문제에 개입했을 것이다. 따라서 워킹그룹을 해체한다고 해도 미국의 개입이 없어지지는 않는다.

 

미국이 남북관계에 개입할 수 있는 근거는 북핵이다. 북핵은 남북만의 문제가 아니다. 동북아시아 안보와 비확산체제를 흔드는 국제적 사안이다. 특히 북한이 미국을 타격할 수 있는 미사일 능력을 입증한 이후 북핵은 미국의 직접적인 안보 위협이 됐다. 북핵은 이제 미국의 안보 문제이기도 하다.

 

남북관계는 남북이 주도해야 한다는 한국의 인식과 남북관계 진전 과정에서 대북제재의 효과를 반감시키고 북·미 핵협상에 장애가 될 정도의 인센티브가 북한에 주어져서는 안 된다는 미국의 입장이 충돌한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2007년 8월 노무현 정부가 남북정상회담을 갖는다고 발표했을 때도 미국의 첫 반응은 지금의 입장과 다르지 않았다. 미국이 “남북관계 진전 노력을 지지하며, 이 같은 노력이 비핵화에 긍정적으로 기여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하는 것은 “남북대화는 반대하지 않지만 북한의 비핵화 의지를 약화시킬 정도의 인센티브는 곤란하다”는 의미다. 남북관계와 북·미 대화의 충돌적 요소를 조화시켜서 한 방향으로 진전을 이루는 것은 한국 외교의 숙명적 과제가 된 지 오래다.

 

남북 국정 우선순위 차이가 원인
북한에 지금 가장 시급한 것은
‘남북’보다 ‘미국과의 핵담판’
정교한 한·미 공동 전략으로
북·미 대화 재개를 유인해야

 

남북관계가 풀리지 않는 이유는 문재인 정부의 성의가 부족했기 때문도 아니고 북한이 남측의 태도에 실망했기 때문도 아니다. 남과 북이 상정하고 있는 최우선 국정과제가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의 최우선 순위는 남북이 서로 평화를 유지하면서 교류하고 협력하는 단계까지 관계를 진전시키는 것이다. 하지만 북한에 가장 시급한 것은 남북관계 진전이 아니라 ‘미국과의 핵담판을 통해 위협을 제거하고 제재를 풀어 정상국가가 되는 것’이다. 따라서 미국과의 북핵 협상이 잘 진행되지 않는 상태에서 남북문제가 북한의 눈에 들어올 리 없다. 북·미 대화가 끊긴 이후 남북관계가 경색된 것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남북관계, 비핵화, 북·미 관계는 서로 꼬리를 물고 얽혀있는 톱니바퀴와도 같다. 그리고 북한이 지금과 같은 태도를 바꾸지 않는 한 남북관계를 움직여 비핵화와 북·미 관계의 톱니바퀴를 돌리는 것은 불가능하다.

 

한반도 평화프로세스가 어려운 이유는 이처럼 다른 생각을 가진 당사국의 이해관계를 조율해가면서 동시 병행적으로 일을 진행해야 하기 때문이다. 북한에 핵이 없고 미국과 국제사회의 입장을 감안하지 않아도 된다면 남북경협과 교류가 어려울 이유가 없다. 북한이 핵을 보유하고 있는 한 정상적인 남북관계는 불가능하고 미국과 국제사회도 한반도 문제에 깊이 개입하지 않을 수 없다는 사실을 직시하지 않으면 안 된다. 따라서 지금 가장 시급한 일은 남북관계 복원이 아니라 정교한 한·미 공동의 전략을 만들어 북·미 대화가 재개되도록 유인하는 것이다.

 

워킹그룹은 미국의 개입만을 위한 통로가 아니다. 만에 하나 북핵 논의가 한국의 입장을 배제한 채 북·미의 이해관계만을 충족시키는 방향으로 진행될 경우 한국은 워킹그룹을 통해 미국을 견제하고 한국의 입장을 반영시켜야 한다. 워킹그룹은 해체 대상이 아니라 용도에 맞게 활용해야 하는 도구다. 한반도 문제의 구조적 요인을 도외시하고 워킹그룹 탓을 하는 것은 비겁할 뿐 아니라 현명하지도 않다. 이런 식으로는 성공은 고사하고 실패를 통해 교훈을 얻는 것도 기대하기 어렵다.

 

<유신모 외교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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