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우건, 빈드먼, 그리고 민주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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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 국제칼럼/김재중의 워싱턴 리포트

하우건, 빈드먼, 그리고 민주주의

by 경향 신문 2021. 10. 12.

페이스북의 문제점을 내부고발한 프랜시스 하우건이 지난 5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의 연방상원 상무위원회 산하 소위 청문회에 증인으로 출석해 질의를 들으면서 미소를 짓고 있다. 워싱턴AP연합뉴스

“나는 오늘 페이스북 제품들은 어린이들에게 해를 끼치고, 분열을 조장하며, 민주주의를 약화시킨다고 믿기 때문에 이 자리에 섰습니다.” 프랜시스 하우건이 지난 5일(현지시간) 미국 연방상원 청문회 증인석에서 한 말이다. 하우건은 페이스북에서 제품 매니저로 일하면서 알게 된 페이스북의 이면을 정부 기관과 의회, 언론에 폭로한 인물이다.

 

페이스북 관련 내부고발이 처음은 아니지만 지난 4월 페이스북을 퇴직한 하우건의 폭로는 매우 구체적이고 강력하다. 그는 페이스북이 자사 소셜미디어인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 등의 서비스가 사용자들에게 위험과 해악을 끼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이익을 앞세웠음을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수천쪽의 비공개 자료들을 정부 규제 당국과 의회, 언론에 제공했다.

 

“아버지, 제가 오늘 선출된 공직자들에게 말하기 위해 이곳 미 의사당에 앉아 있다는 사실은 당신이 40년 전 소련을 떠나 우리 가족의 더 나은 삶을 찾아 미국에 오기로 한 것이 옳은 결정이었음을 증명합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진실을 말해도 괜찮을 겁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1차 탄핵을 촉발시킨 ‘우크라이나 스캔들’과 관련해 알렉산더 빈드먼은 2019년 11월 의회 청문회에서 이렇게 말했다. 육군 중령으로 백악관 국가안보위원회(NSC)에 파견됐던 그는 트럼프 전 대통령이 그해 7월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전화통화를 하면서 대선에서 맞붙을 가능성이 높은 조 바이든 대통령과 그의 아들 헌터의 비리 의혹을 수사할 것을 압박했다고 폭로했다.

 

하우건과 빈드먼은 미국에서 가장 강력한 이들의 치부를 폭로한 내부고발자다.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창업자 겸 최고경영자(CEO)는 미국에서 세번째로 꼽히는 갑부이며, 트럼프 전 대통령은 초강대국 미국의 최고 권력자였다.

 

어느 사회건 내부고발자는 한쪽에선 ‘영웅’ 대접을 받지만 한쪽에선 ‘배신자’라는 비난을 받는다. 내부고발자을 고민하는 사람들은 ‘공정함’과 ‘충성심’이라는 도덕적 가치 사이에서 갈등을 겪는다. 미국은 1989년 연방 차원에서 ‘내부고발자 보호법’을 제정해 내부고발을 장려하고 내부고발자를 보호하고 있지만 미국에서도 내부고발자는 심각한 정신적·경제적 고통을 겪게 마련이다. 실제로 하우건은 회사 내부 자료를 언론에 제공한 혐의로 페이스북으로부터 소송을 당할 가능성이 있으며, 빈드먼은 인사 보복을 견디다 못해 지난해 7월 군복을 벗었다.

 

하우건과 빈드먼 같이 초대형 파장을 일으키는 내부고발자가 자주 나온다는 것은 미국 민주주의 시스템이 어딘가 고장났음을 보여주는 징표일지 모른다. 반대로 이들이 보복의 두려움에도 불구하고 증언대에 서는 용기를 낼 수 있었다는 것은 미국 민주주의가 아직 희망이 있다는 증거로도 해석된다. 하우건의 증언으로 거대 기술기업 페이스북에 대한 규제 논의는 새로운 힘을 받았고, 빈드먼의 증언은 최고 권력자의 사익을 위한 권력 남용에 경종을 울렸다.

 

한국 사회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사태를 겪으면서 내부고발의 파괴력과 중요성을 새삼 절감했다. 내부고발자를 보호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를 보완하고 정비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리고 집단에 대한 충성심 못지 않게 공정함을 요구하는 건설적인 비판에 가치를 두는 문화를 조성하는 것이 한국에서도 하우건과 빈드먼 같은 인물이 나오게 하기 위한 지름길이다. 어느 사회나 집단이건 공정함에 높은 가치가 주어질수록 내부고발을 위한 용기가 높아지는 반면 충성심과 단결에 대한 가치가 높을수록 내부고발 의욕은 꺾일 것이기 때문이다.


워싱턴|김재중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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