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아이들 ‘머릿니와의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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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칼럼=====/목수정의 파리 통신

프랑스 아이들 ‘머릿니와의 전쟁’

by 경향 신문 2013. 9. 27.

예술의 나라 프랑스? 아마 그럴지도. 그러나 이 그럴듯한 나라의 아이들에겐 남모를 고민이 있다. 프랑스 유치원과 초등학교에서 급속하게 퍼져가는 머릿니가 그것이다. 매년 9월, 새 학기가 시작되면 학교에서는 부모들에게 가정통신문을 보내 이번 주말 일제히 아이들을 괴롭히고 있는 이(蝨)를 소탕해줄 것을 부탁한다.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주먹만 한 크기의 이 그림을 첨부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 3~4년 전만 해도 학기 초에만 치르던 이 난리법석은 이제 일년 내내 상시적으로 학부모들이 감당해야 할 또 하나의 골칫거리가 됐다.

오랫동안 자취를 감추었던 머릿니들은 최근 완전히 회귀했고, 이제 이들은 그 어떤 독한 약에도 꿋꿋하게 건재하는 강한 저항력을 가지고 있다. 시중에 판매되는 머릿니 약을 써도 이의 30%는 여전히 생존한다는 것이 학계의 보고다. 굳이 전문가들의 의견에 귀 기울이지 않아도 엄마들은 익히 알고 있는 사실이다. 아이들의 머리에 끈적거리는 약품을 바르고 하룻밤이 지난 뒤 감겨도 머리를 빗으면서 다시 꿈틀거리는 머릿니를 발견하는 그 절망적인 순간을 누구나 경험하기 때문이다.

이 작은 벌레 하나를 해결하지 못할 만큼 현대의학은 정녕 그토록 무력한 것일까? 물론 그렇지 않다. 자본이 이 세계를 끌고 가는 선장이 된 이후 언제나 과학은 자신들을 조정하는 ‘비즈니스’라는 실질적인 선장에 의해 어리석은 꼭두각시 노릇을 하고 있는 중이었다.

100%에 가까운 퇴치율을 자랑하며 부작용도 거의 없고 가격도 저렴한 이 퇴치약이 이미 1981년부터 나와 있으나 이 약이 이나 서캐 퇴치용으로는 허가되지 않았을 뿐이란 사실을 언론에 폭로한 사람은 마르세유 의과대학의 디디에 하울 교수다. 이 약은 심지어 약국에서 판매 중이다. 그러나 몇몇 열대병에 대한 치료용으로만 처방이 가능하다. 도대체 왜? 이 약이 머릿니 퇴치용으로는 허가되지 않는 것일까? 하울 교수의 가정을 들어보지 않아도 파리의 약국들에서 벌어지는 풍경을 잠시만 눈여겨본다면 그 해답을 누구나 짐작할 수 있다. 이 퇴치약 선전 포스터로 뒤덮인 약국의 쇼윈도, 다양하게 전면에 배치되어 있는 각종 이 퇴치약들, 다양한 형태의 이 퇴치용 빗, 전용 샴푸, 라벤더 오일…. 이 조그만 벌레를 둘러싸고 펼쳐지는 시장이 제약업계를 얼마나 통통하게 살찌우는지는 삼척동자도 알 수 있다. 그러니 제약업계의 어느 누구도 머릿니가 완전히 척결되는 쉬운 처방이 세상에 나오기를 바라지 않는 것이다.


(출처 :경향DB)


프랑스는 유럽에서 가장 많은 약을 소비하는 나라로 꼽힌다. 이 때문에 미국의 무기 마피아 못지않게 프랑스의 제약 마피아는 막대한 규모의 자본을 주물러왔고 이에 결부된 권력을 누려왔다. 유럽에서 가장 완벽한 의료보험 시스템을 갖췄다는 프랑스. 그러나 적절히 시대의 변화와 사용자의 요구에 맞추어 개혁되지 못하고 시장의 논리에 장악되면서 프랑스 제약시장은 자본가들의 즐거운 놀이터로 전락해왔다. 성형외과 의사였던 제롬 카위작이 제약 컨설팅 회사를 차려 스위스 은행계좌가 필요할 만큼의 큰돈을 벌고 예산부 장관이 되기까지 승승장구하다가 은닉계좌들이 정적들에게 포착돼 사임한 이야기는 제약업계와 정계를 둘러싼 석연찮은 커넥션을 압축해서 보여준 한 장면이었다.

의사 두 사람이 작심하고 프랑스 제약시장에서 당장 퇴출되어야 할 약들과 의료보험 혜택을 받아야 하는 약들의 명단을 열거한 책(<유용하거나, 무용하거나, 위험한 4000개의 약 가이드> 베르나르 드브레, 필립 에방, 2012)을 써서 베스트셀러가 되는 현상도 프랑스 제약업계가 얼마나 부패했으며 제약업계에 대한 프랑스인들의 불신이 얼마나 팽배한지를 보여주는 일화이다.

제 주머니를 채우기 위해 아이들 머리에 이가 들끓도록 내버려 두는 제약업계, 이들의 이 가당찮은 공모를 구경만 하고 있는 정부. 모든 것을 다 파괴하고 종국에는 스스로를 파괴한다는 자본의 속성을 실감나게 보여주고 있는 씁쓸한 프렌치 패러독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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