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칼럼] 단둥에서의 단상(斷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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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칼럼] 단둥에서의 단상(斷想)

by 경향 신문 2015. 10. 20.

지난 16일 북·중 호시무역구 설립 행사 취재차 중국 단둥(丹東)시를 찾았다가 압록강에서 모터보트를 탈 기회가 있었다. 대형 유람선도 있었지만 북한 땅과 주민들을 좀 더 가까이서 보고 싶은 마음에 쾌속 보트를 택했다. 북한 주민들의 모습이 관광 대상이 된다는 사실에 마음이 무거웠다. 보트에 탄 10여명의 한국인과 중국인 관광객들 시선은 북한 땅에 고정됐다. 강가에서 빨래하는 아낙네들의 모습, 자전거를 들고 목선에 오르는 주민들이 보였다. 아마도 압록강변의 다른 북한 지역으로 가는 듯했다. 총을 멘 채 주민을 감시하는 북한군 병사는 야위어 보였다. 그러나 관광객들에게 손을 흔드는 주민은 거의 눈에 띄지 않았다. 몇 해 전 강가의 북한 주민에게 먹을 것을 던져주는 관광객들 행태를 두고 ‘인간 사파리’ 관광이란 비난 여론이 일었던 게 생각났다.

북한 땅을 바라보며 상념에 빠져 있는 사이 보트가 강 중간에서 갑자기 시동을 껐다. 이어 허름한 배로 다가갔고 상대편 배에 탄 낯선 사람이 관광객이 탄 보트에 줄을 거는 것이었다. 가까이서 보니 배 안에는 산삼술, 오리알 30개들이 상자, 각종 담배 등 북한산 상품들이 진열돼 있었다.

침묵이 흐른 끝에 “산삼술은 얼마입니까”라고 한국말로 묻자 간단하게 “100위안”이란 답이 돌아왔다. 한편에서 “싸게 해 주세요”라는 말도 들렸다. 북한 당국이 주민을 보내 외화벌이를 시키는 것인 줄 알았다. 그래도 물건을 하나 사는 게 어떨까 고민하는 것도 잠시. 동승했던 단둥 거주 한국인 사업가는 “저분은 북한 주민이 아닙니다. 물건을 사지 마세요”라고 낮은 소리로 말했다. 자신도 예전에 동정심을 느껴 물건을 산 적이 있는데 알고 보니 중국인이었다고 설명했다. 중국 상인이 간단한 한국말 몇 마디만 익힌 뒤 배에 올라 장사를 하고 있는 것이었다. 북한 주민에 대한 동정심을 유발해 잇속을 챙기려는 상술이 씁쓸했다. 남북 간의 교류가 활발하고 한국인들이 단둥을 통해 북한에 들어갈 수 있다면 이런 식의 상술이 발붙이긴 어려울 것이다. 인간 사파리 관광 논란도 애당초 없었을 게다.



단둥에서 보면 중국이 핵 개발을 이유로 북한을 버릴 가능성은 높지 않아 보였다. 양국 외교가 냉·온탕을 오가도 경제는 별개였다. 북·중은 1400㎞의 국경을 맞대고 있으며 단둥, 지안(集安), 투먼(圖們) 등 접경지역에서는 강폭이 10여m가 안되는 곳도 많다. 이런 북한과 중국이 과연 관계를 쉽게 끊을 수 있을까. 한달에 300달러의 월급을 받고 일하는 북한 근로자가 단둥에 1만명가량 있다고 한다. 중국인 택시기사는 앞으로 수년 내에 북한 근로자가 10만명까지 늘어날 것이라고 주장했다.

현지에선 이명박 정부가 천안함 사건 후 북한을 압박하기 위해 5·24 조치를 내렸지만 오히려 중국에만 득이 되고 북한의 중국 예속화만 가중시켰다는 목소리가 높았다. 최소한의 인도적 지원과 개성공단을 제외한 남북교역 중단, 한국인의 방북 불허 등을 골자로 하는 5·24 조치는 단둥의 한국인 대북 사업가들에게도 직격탄을 안겼기 때문이다.

단둥 거주 한국인은 한때 5000명에 달했지만 지금은 700~800명으로 줄었다. 2002년 북한이 경제특별구로 지정했던 신의주와 철교로 연결된 단둥은 한반도에서 대륙으로 가는 길목에 자리 잡고 있다. 선양(瀋陽)과 연결되는 고속철이 최근 개통하는 등 중국 주도로 다양한 지역 발전 전략이 추진되고 있다. 멀리 보면 북한의 개혁·개방을 이끄는 도시일 수 있고 한반도 안정을 위한 전략적 가치도 높다. 그러나 한국 정부 관련 기관은 물론 민간 기업도 거의 진출해 있지 않다. 단둥에서는 합법적으로 거주하는 북한 사람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지만 낯선 한국인에게는 아직 냉담했다. 이산가족 상봉을 계기로 남북 화해 분위기가 조성돼 단둥이 남북 간 교류의 장이 되길 기대해 본다.


오관철 베이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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