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일 중국 베이징 톈안먼(天安門) 광장 국기게양대에는 오성홍기가 깃봉에서 한참 내려와 달려 있었다. 지난 22일 사망한 리펑(李鵬) 전 총리의 영결식이 이날 치러졌다. 톈안먼 광장의 조기는 오롯이 리 전 총리에게 조의를 표하기 위해 게양됐다.


리펑 전 총리. 그는 ‘톈안먼 학살자’라는 오명을 달고 있다. 1989년 민주화를 요구하는 대학생들의 시위인 톈안먼 사태 때 그는 총리였다. 계엄령을 선포했고 탱크를 앞세운 군부대를 투입했다. 중국 당국이 밝힌 희생자는 수백명이지만, 1만명이 넘는다는 주장도 있다.


이들이 톈안먼에서 사라져 간 지 30주기 되던 6월4일, 중국 당국은 톈안먼 광장의 경계수위를 최고조로 높였다. 어떤 추모 행사도 열리지 못했다. 중국 영토 중에서는 겨우 홍콩에서만 톈안먼 희생자를 기리는 집회가 진행됐다. 그러나 ‘학살 주범’으로 지목받는 리펑은 톈안먼 광장에서 대대적이고 공개적으로 추모됐다.


톈안먼 광장에서 국무원 기자회견장까지는 2㎞ 남짓이다. 이날 국무원 산하 홍콩·마카오사무판공실은 이곳에서 1997년 홍콩 반환 이후 처음으로 기자회견을 열었다. 40분의 기자회견 동안 법치라든가, 법률 및 기본법 준수 같은 말이 20여차례 나왔다. 대변인은 “현재 가장 중요한 것은 법치를 지키는 일”이라고 했다. 그리고 “어떤 주장의 목표가 아무리 숭고하다고 해도 폭력은 폭력이고 위법은 위법”이라고 했다. 범죄인 인도 조례(송환법) 반대 시위를 폭력 시위로 규정했고, 법의 잣대에 의해 처벌하겠다고 했다. 


리 전 총리는 톈안먼 시위 유혈 진압 외에도 논란이 많다. 1992년 생태계 파괴 우려에도 홍수 예방과 물 부족 문제를 해결하겠다며 싼샤댐 프로젝트를 승인했다. 광둥성 다야만 핵발전소 건설도 그의 재임 기간 중 이뤄졌다. 1998년 창강에 큰 홍수가 나자 모래주머니로 방지둑을 쌓았지만 소용이 없었다. 중국인들은 ‘중국에서 가장 큰 풀주머니(草包·차오바오)’로 홍수를 막자고 했다. 리 전 총리를 지칭하는 말이었다. 중국어에서 차오바오는 바보라는 뜻이 있다.


리 전 총리에 대한 지지율은 바닥이었다. 그러나 10년간 총리를 지낸 후에도 국회의장에 해당하는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장을 하며 권좌를 누렸다. 장남인 리샤오펑은 2016년부터 교통운수부 장관을 맡아 권력의 대를 이었다. 


법치를 강조하는 중국은 리 전 총리의 수많은 논란과 과오는 한번도 객관적 잣대로 평가한 적이 없다. 법으로 판단받은 적은 더더욱 없다. 법치는 때때로 특정한 곳에서 강력하게 작용한다. 


장커우커우는 13세 때 어머니가 이웃에게 맞아 죽는 것을 직접 보았다. 그러나 살해범이 미성년이라는 이유로 가벼운 판결을 받자, 군에 입대해 특공무술을 익혔다. 지난해 춘제 때 고향으로 돌아가 살해범과 그 가족을 죽이고 자수했다. 어머니의 억울한 죽음을 목도한 그는 성장과정 내내 괴로움에 시달렸다고 한다. 미성년 범죄 처벌에 대한 비판과 구제 여론이 높아졌다. 변호인은 최후 변론문에서 “법원이 인간의 연약함을 헤아려 자비심을 가지고 역사에 남을 위대한 판결을 내려달라”고 호소했다. 그러나 법에 따라 17일 사형이 집행됐다.


보통의 중국인들에게 법은 자비를 베풀지 않는다. 중국의 법치가 지도자들에게도 엄격하게 작용할까? 


리 전 총리는 생전 기고문에서 논란 속에 강행한 톈안먼 시위 진압, 싼샤댐과 핵발전소 건설 등 3대 결정은 모두 덩샤오핑의 생각이었다고 주장했다. 리펑이 죽은 후 인민일보와 신화통신은 그가 “1989년 정치적 풍파 당시 결단력 있는 조치로 소란을 억제하고, 반혁명 폭동을 진압해 국내 정세를 안정시켰다”고 했다. 또 “전심전력으로 인민을 위해 봉사한 일생이었다”고도 했다. 객관적 검증 과정을 거치지 않은 이들의 주장이 공허하기만 하다.


<베이징 | 박은경 특파원>

Posted by KHro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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