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바이러스와 기후변화
본문 바로가기
경향 국제칼럼/김재중의 워싱턴 리포트

코로나바이러스와 기후변화

by 경향 신문 2020. 4. 22.

코로나19 사태로 온 가족이 사실상의 가택연금 상태에 묶인 지 한 달이 넘었다. 워싱턴에 자리잡은 연방정부와 싱크탱크, 대학들도 일제히 재택근무 또는 휴교에 들어갔기 때문에 워싱턴 거리엔 조깅과 산책을 하는 사람뿐 한산한 풍경이다. 코로나19 사태 초기 마스크를 쓰고 밖에 나온 동양인에게 “아픈 사람이 왜 밖에 나왔냐”며 힐난했던 미국인들이었지만 이제 식료품점에 가려면 마스크 착용이 필수가 됐다. 미국 의료인력에게 줄 것도 모자란다는 N95마스크를 쓴 이들도 자주 보인다. 겉으로 태연했던 그들이었는데, 다들 어디서 구했는지 신기할 정도다.


미국의 코로나19 확진자는 80만명에 육박하고, 유명을 달리한 이도 4만2000여명에 달한다. 잔인하고 암울한 시절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미국의 사망자가 5만~6만명에서 그칠 수 있다는 전망을 내놓았다. 앞서 나왔던 10만명이라는 전망에 비하면 다행이라는 취지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의 코로나19 사태를 최악으로 키웠다는 비판을 받고 있지만 정작 그는 ‘무오류’의 신화에 빠져 있다. 불과 두 달 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를 계절성 독감에 비유하면서 “날이 따뜻해지면 거짓말처럼 사라질 것”이라고 장담한 사실이 명백한데도 자신의 판단은 옳았으며 미국 정부의 대처는 ‘100점’이라고 강변한다.


트럼프 대통령의 ‘정신승리’ 추구는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하지만 치명적인 신종 바이러스에 대한 그의 태도 그리고 이후 벌어지고 있는 일들을 가볍게 넘길 수는 없다. 기후변화의 위협에 대한 대처법이 그대로 포개지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신종 바이러스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목소리가 쏟아지던 지난 2월28일 야당과 언론이 “새로운 거짓말”을 들고 나왔다고 비난했다. 기후학자들이 만장일치로 경고하는 기후변화의 위협을 ‘중국의 거짓말’이라고 일축하고 있는 것과 겹친다. 코로나19 위기가 닥쳐오고 있는데 마스크 등 의료장비를 수출하고 검사 기준을 느슨하게 설정한 것은 환경 관련 규제들을 줄줄이 풀고 있는 것을 연상시킨다. 방역 최일선에 있는 세계보건기구(WHO)에 대한 지원을 중단시킨 것 역시 전 세계가 기후변화를 억제하기 위해 마련한 ‘파리기후변화협약’에서 탈퇴 절차를 밟고 있는 것과 닮았다. 트럼프 대통령 대처법과 별개로 신종 바이러스와 기후변화가 지구상에 살고 있는 모든 이들을 위협하지만 가난하고 힘없는 이들이 상대적으로 더 피해를 입는다는 점도 같다.


차이점도 있다. 코로나19의 재앙은 눈 깜짝할 새 펼쳐졌지만 기후변화는 서서히 진행된다. 코로나19는 타인과의 접촉을 자제함으로써 피할 수 있지만 기후변화는 ‘집콕’으로는 대처하기엔 역부족이다. 코로나19와 달리 기후변화로 인한 온도 상승과 해수면 상승 등은 한번 진행되면 되돌리는 게 거의 불가능하다.


암울한 시절이어선지 봄은 더욱 찬란해 보인다. 벚꽃이 지면서 며칠째 ‘꽃비’가 내리더니 이제는 대지에 뿌리를 박고 있는 모든 생명체가 맹렬한 생명력을 내뿜는다. 우리는 코로나19의 위험을 무시한 미국이 치르는 혹독한 대가를 목격하고 있지만 기후변화에 대한 경고를 무시한 대가는 전 인류가 치를 수밖에 없다. 4월22일은 ‘지구의날’이다.


<워싱턴 | 김재중 기자>

반응형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