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다궁런과 월급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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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 국제칼럼/박은경의 특파원 칼럼

중국 다궁런과 월급쟁이

by 경향 신문 2020. 11. 18.

“좋은 아침, 다궁런(打工人)!”

최근 중국 회사원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출근 인사다. 다궁런은 그대로 번역하면 노동자라는 의미지만, 업무량은 많지만 월급은 적고, 만성피로에 절어 하루하루 버텨내는 월급쟁이 느낌이 더 강하다. 온라인에는 “삶의 80%는 노동에서 오는 고통이지만, 일을 하지 않으면 돈이 없는 데서 오는 100%의 고통으로 채워진다. 어쩔 수 없이 노동을 선택해야 한다”는 내용의 ‘다궁선언’까지 나왔다. ‘인간은 철이다. 노동으로 단련해야 한다’ ‘사랑은 한순간이지만 직장은 영원할 것’ 같은 식의 자조 섞인 유머가 공감을 얻고 있다. 부정적 의미에도 불구하고 많은 이들이 스스로를 ‘다궁런’이라고 칭한다.

중국의 수많은 회사에는 야근, 휴일 근무 등 장시간 노동이 일반화되어 있다. 대부분은 초과근무 수당을 받지 못한다.

‘996, 811648, 007.’

 

암호 같은 이 숫자들은 이 같은 상황을 상징한다. 996은 매일 오전 9시부터 오후 9시까지, 일주일에 6일씩 일하는 근로 문화를 말한다. 811648은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오전 8시에서 오후 11시까지 일하는 상황을 뜻한다. 007은 0시부터 익일 0시까지 매주 7일 근무하는, 휴식 제로 상태를 의미한다. 업무량이 과도한 것도 문제지만, 유급휴직을 쓰지 못하는 기업 문화가 더 심각하다. 한 구직업체가 발표한 ‘2019년 사무직 996 보고서’에 따르면 매주 10시간 이상 초과근무를 하는 이들이 응답자의 20%에 달했고, 70% 넘는 응답자가 초과근무에 대한 수당을 받지 못하고 있었다.

 

이는 한때 알리바바, 텐센트, 바이두 등 중국 IT 회사를 성장시킨 원동력으로 꼽혔다. 1987년 선전에서 창립돼 31년 만에 1000억달러(약 120조원) 매출을 달성한 화웨이는 고속성장의 비결로 ‘야전침대 문화’를 꼽는다. 이 회사는 퇴근을 반납하고 사무실에서 밤낮으로 연구 개발을 하라는 의미로 직원들에게 야전침대를 나눠줬다. 알리바바그룹을 창립한 마윈도 지난해 “젊었을 때 996을 하지 않으면 언제 하겠느냐”고 공개 발언을 했다가 ‘꼰대’ 취급을 당했다.

 

급기야 중국 정부가 휴가를 내지 못하는 기업 문화에 제동을 걸었다. 선전시는 선전경제특구 건강조례를 채택하고, 내년 1월1일부터 노동자들의 심신건강을 위한 강제휴가제도를 도입한다고 발표했다. 중국에서 이 같은 조항이 만들어진 것은 처음이다.

 

중국은 1995년부터 유급휴가제도를 노동법으로 보장하고 있다. 선전시가 다시 ‘강제’를 강조한 것은 유급휴직제를 정착시키겠다는 강한 의지로 읽힌다. 그러나 강제휴가제도를 지키지 않는 사업주에 대한 처벌방법이 규정돼 있지 않다.

지난 7월에는 허베이, 장시, 간쑤, 구이저우, 푸젠 등 10여개 성이 2.5 휴가제를 발표했다. 월요일 오전 혹은 금요일 오후 반차로 주당 2.5일 휴일을 장려해 소비를 촉진시키겠다는 계획이었다. 그러나 강제도 아닌 데다 사업체 협조가 부족해 유야무야되고 있다.

 

선전의 강제휴가제도 후 유머가 추가됐다. “시행되자마자 법을 어겨야 할 거 같은데, 자수하러 가기 위해 휴가를 내야 하냐”는 자조다. 장시간 노동이 개선될 수 있다는 희망을 찾지 못한 ‘다궁런’들은 자조밖에 할 수 있는 게 없어 보인다.

 

베이징 | 박은경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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