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지에서는 평소 안 하던 것을 쉽게 실행한다. 하루 중 가장 분주한 아침에 한가로운 산책은 평소엔 불가능한 것이지만 여행지에서라면 가능하다. 휴가 기간 중 들른 북·중·러 3국 접경도시 훈춘에서는 아침 공원 산책에 필요한 시간과 여유가 허용됐다.

 

훈춘 시내의 룽위안(龍源)공원이 풍기는 늦여름의 상쾌함에 한창 빠져 있을 때였다. 나무 뒤에서 ‘그놈’이 쓱 나타났다. ‘그놈’은 바지를 반쯤 내린 상태였다. 그리고 구릿빛 금속으로 만든 방울을 ‘그곳’에 갖다대고 흔들었다. 특유의 동작과 소리로 남의 시선을 자신이 원하는 곳으로 끌어당기려는 수법인 듯했다. 여중·여고 시절 수차례 ‘바바리맨’을 보며 단련된 멘털이지만, 중국 특색의 ‘바바리맨’ 앞에선 크게 당황했다. 다급하게 주변을 살폈다. 교복 입은 여학생과 학생 어머니로 보이는 중년 여성이 ‘그놈’ 앞을 무심하게 지나치고 있었다. 공원 근처에는 학교가 있다. 공원길은 수많은 학생들의 등굣길이다. 내게는 난감한 첫 경험인 중국 ‘바바리맨’이 그 두 사람에게는 일상일 것이다.

 

출처:경향신문DB

 

중국 ‘바바리맨’들은 자신의 나신을 트렌치코트 속에만 숨기지 않는다. ‘바바리맨’이라는 표현도 없다. ‘흉악한 노출광’이라는 뜻을 품은 바오루쾅(暴露狂)라는 단어가 이를 대신한다. 노출광 중에는 여성도 있지만, 대부분이 남성이다. 이름으로 규정된 지침이 없어서인지 노출 수법이 다양하다. 안후이(安徽)성 허페이(合肥)의 노출광은 바지를 입지 않은 채 팔에 걸친 외투로 하체를 가리고 의자에 앉아 있다 여성이 근처에 오면 갑자기 일어나 놀라게 했다. 광둥(廣東)성 둥관(東莞)에서는 빨간 오토바이를 타고 다니다 여성 행인이 나타나면 옆에 세우고 바지를 벗었다.

 

이들은 피해자가 놀란 틈을 타 순식간에 사라지는, 치고 빠지기식 수법을 구사해 체포를 어렵게 한다. 체포는 어려운데 처벌은 약하다. 중국은 고의로 공공장소에서 나체를 노출하는 등 공연음란죄에 대해 ‘치안관리처벌법’ 제44조 규정에 따라 최대 10일의 구류에 처한다. 한국이 1년 이하의 징역, 500만원 이하의 벌금 등에 처하는 것과 비교해도 수위가 낮다. 낮은 처벌 수위 때문에 재범 가능성이 높다. ‘바바리맨’의 공연음란 행위가 타인에게 물리적 피해를 입히지 않는다는 점 때문에 상대적으로 관대하게 처리하는 점도 문제다.

 

중국 특색의 ‘바바리맨’을 마주했을 때 미처 신고할 생각까지 미치지 못했다. 일상처럼 받아들이는 모녀보다 처음 본 사람이 용기를 내기 더 쉬웠을 것이다. 여행지에서의 작은 용기가 그 모녀의 평소 등굣길 풍경을 달라지게 만들었을 수도 있다.

 

장쑤(江蘇)성 난퉁(南通)시의 28세 남성 팡모씨는 아내와의 성생활이 원만하지 않은 데 불만을 품고 지난해 5월부터 올해 3월까지 ‘바바리맨’ 짓을 저질렀다. 골목에 숨어 있다가 혼자 걷는 여성이 나타나면 ‘그 짓’을 실행했다. 여성 왕모씨는 귀갓길에 그와 마주쳤다. 당시에는 신고할 생각을 못했고 소셜미디어에 불쾌한 경험을 겪은 장소와 시간을 적었다. 이를 파악한 경찰이 해당 장소에 매복해 있다가 팡씨를 체포했다. 왕씨의 괴로움은 끝났지만 이미 세 차례나 바지를 입지 않은 팡씨와 마주친 후였다. 경찰은 노출광을 마주치면 주변에 도움을 요청하고 바로 신고하라고 당부한다. 주변의 적극적인 도움은 ‘바바리맨’ 근절에 효과를 발휘한다. 

 

베이징 스징산(石景山)구에서는 ‘유리창 바바리맨’이 활동했다. 그는 각 상점의 쇼윈도를 이용해 하체를 과시했다. 액세서리나 의류점 등 주로 여성 종업원이 많은 곳을 노렸다. 점원들이 출입구로 다가가는 사이 순식간에 건너편 도로로 도망가는 통에 잡기 어려웠다. 그러다 주변을 지나던 음식 배달원의 도움으로 덜미가 잡혔다. 점원들이 유리창을 통해 비친 그의 행각을 증거 사진으로 남겨둔 덕에 그의 발뺌에도 불구하고 죗값을 치르게 할 수 있었다.

 

<베이징 | 박은경 특파원>

Posted by 경향 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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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20.02.02 04:5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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