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미사일 발사를 통해 문재인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타격했다. 외견상 군사도발이지만 실질적으로는 정치적 공격이었다. 미사일 발사는 국제사회의 비난을 자초하는 일이었다. 그럼에도 ‘자해적 행동’을 한 것은 한국과 미국을 압박하기 위해서였을 터이다. 이 시도는 일단 성공적인 모양새다. 한·미 양국에서 대북정책 실패론이 들끓고 있다. 두 대통령은 정치적 손상을 입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 이후 수세에 몰렸다. 제재해제를 중간 목표로 세운 순간 약점을 잡혔다. 하노이에서는 영변 핵시설까지 걸었지만 미국에 거부당하는 수모를 겪었다. 미국 주도의 제재 체제에 목을 매는 구도 속에서는 동등한 협상이 되기 어려웠다. 북한은 ‘레드라인’을 넘지 않는 군사행동조차 조심할 수밖에 없었다. 미국은 북한의 난감한 처지를 십분 활용했다. 일방 항복이나 다름없는 빅딜만 고집하며 협상에서는 미적댔다. 인내심이 바닥난 김 위원장은 북·미 협상 프레임을 ‘비핵화-제재해제 교환’에서 ‘비핵화-체제안전 교환’ 방식으로 전환했다. 제재해제 목표를 포기한 셈이다. 중간 단계를 빼고 최종 목표만을 설정하는 바람에 협상 성공 가능성은 낮아졌다. 북한은 ‘발톱과 이빨’을 다시 세웠다. 


화력시범 지도하는 김정은 북한이 지난 9일 평안북도 구성 일대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지도로 단거리 미사일로 추정되는 발사체를 발사했다고 10일 조선중앙통신이 보도했다. 김 위원장이 조선인민군 전연(전방) 및 서부전선방어부대들의 화력타격훈련을 망원경으로 참관하고 있다. 연합뉴스


대북정책은 문재인·트럼프 대통령의 치적이다. 문 대통령은 비핵화 협상 성사의 중재자로, 남북관계 복원의 주역으로 각광받았다. 군사적 긴장 완화 등 평화 조성과 ‘한반도 리스크’ 완화의 공적도 당연히 문 대통령의 것이었다. 트럼프 역시 국내정치에서 북한 핵·미사일 실험 중단의 덕을 봤다. 차기 대선에서도 주요 업적으로 내세울 게 분명하다. 그러나 미사일 발사가 판을 흔들었다. 두 대통령의 장점이 약점으로 바뀌었고, 급기야는 두 사람을 겨누는 창이 되었다.  


그럼에도 한국과 미국 정부는 저강도 대응을 선택했다. 문 대통령은 “대화와 협상 국면을 어렵게 만들 수 있다는 점을 경고하고 싶다”면서도 한반도 평화 추진 노력을 계속하겠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도 “(미사일은) 단거리이며, 신뢰 위반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로써 혼란스러웠던 상황은 다소 진정됐다. 한·미 보수세력의 ‘외교 실패’ 주장은 현실과 다르다. 문제는 앞으로다. 북한은 무력시위의 강도를 높여갈 가능성이 크다. “나라의 평화와 안전은 강력한 물리적 힘에 의해서만 담보된다.” 김 위원장의 입에서 군사력이란 용어가 다시 등장한 것은 심상찮다. 북한 내부는 고무된 분위기다. 매체들은 연일 공격적 언어들을 쏟아내고 있다. 마치 대결시대의 북한을 연상케 한다.  


김 위원장은 기선제압에 성공했다고 평가할지 모른다. 그러나 미사일이 외부 세계뿐 아니라 북한 내부도 타격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대북 식량지원 문제가 그 증거다. 세계식량계획(WFP)은 최근 북한에서 주민 1010만명이 기아에 시달릴 것이라며 향후 3주 안에 130만t의 긴급식량지원이 필요하다고 발표했다. 이에 한국과 미국은 인도적 식량지원 추진에 합의했지만 미사일 발사 후 “북은 미사일 쏘는데 남은 식량 지원하느냐”는 강력한 비판에 직면했다. 한국 정부는 여론이 악화되자 속도조절에 들어간 상태다. 정세 변화에 따라 식량지원 계획 자체가 장기간 유보되거나 아예 취소될 가능성도 없지 않다. 


식량지원에 차질이 빚어지면 누구보다 북한 주민이 큰 피해를 입게 된다. WFP의 대북 식량지원 규모 130만t은 생산활동은커녕 가만히 누워 있기만 할 수 있는 ‘생명유지 최소열량’을 기준으로 산정한 것이다. 1000만명이 당장 먹지 못하면 ‘생명유지’조차 쉽지 않은 중대 사태에 직면할 것이라는 얘기다. 


김 위원장은 그 책임을 면할 수 없다. 인구의 40%를 기아선상에 내몰고도 정치적 이유로 외부 지원까지 막는다면 무자비한 독재자라는 비난에서 벗어나기 어려울 것이다. 난관에 봉착하자 무력시위로 돌파하려는 구태 역시 그동안 쌓아온 국제사회의 지도자 이미지를 갉아먹을 것이다. 내부적으로도 ‘인민친화적 지도자’로서의 위상에 손상을 입을 수밖에 없다. “인민이 다시는 허리띠를 조이지 않고 부귀영화를 누리자는 것”(2012년 4월 연설), “인민을 위해 더 많은 일을 할 결심”(2017년 신년사) 등의 공언은 언제든 김 위원장을 공격하는 논리로 활용될 수 있다.  


김 위원장의 최종 목표는 체제안전과 경제강국이다. 그것을 이루기 위해서는 문재인·트럼프 대통령의 협력이 필수다. 그렇다면 두 대통령의 리더십 약화는 독이다. 결국 김 위원장은 미사일로 자신까지 타격한 꼴이다. 전투에서 이기고 전쟁에서 지면 아무 소용이 없다. 김 위원장의 성찰과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조호연 논설주간>

Posted by 경향 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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