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회담 불발이 보여준 ‘한·일 현주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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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 국제칼럼/유신모의 외교 포커스

정상회담 불발이 보여준 ‘한·일 현주소’

by 경향 신문 2021. 7. 23.

문재인 대통령이 도쿄 올림픽에 참석해 한·일 정상회담을 하려던 계획이 무산됐다. 문재인 정부 남은 임기 동안 한·일관계 분위기를 바꾸는 것은 더욱 어려워졌다. 한·일 모두에 불행이다. 하지만 문 대통령이 일본 방문 계획을 철회한 것은 잘한 일이다. 일본의 경직된 태도와 주한 일본대사관의 소마 히로히사 총괄공사 막말을 무릅쓰고 일본을 방문하는 것이 모양 사나워서가 아니다. 강행했더라면 한·일관계가 더욱 악화될 가능성이 높았기 때문이다.

 

한·일은 정상회담의 형식과 성과 등을 놓고 감정적인 공방을 벌였다. 소마 공사 막말 파문으로 국민감정은 더욱 악화됐다. 정상회담 성과는커녕 환대를 받기도 어려웠다. 또한 국내적 여론을 의식해 회담 실패의 책임을 상대에게 돌리는 비난전이 벌어졌을 것이다. 갈등의 골이 더 깊어지는 것을 막으려면 차라리 안 만나는 것이 상책이었다.

 

기회가 될 수 있었던 정상회담을 하지 않는 게 더 나을 정도로 만들어 놓은 책임은 양측 모두에 있다. 일본은 문 대통령이 강제징용·위안부 문제 해법을 갖고 와야 회담할 수 있다는 입장에서 한발짝도 움직이지 않았다. 일본이 정해놓은 정답이 적힌 시험지를 제출하지 않으면 정상회담 관문을 통과할 수 없으니 개막식에 병풍처럼 서 있다가 악수 한번 하고 돌아가라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는 문제 해결은커녕 차분한 소통도 어렵다. 더구나 스가 요시히데 총리는 관방장관 시절 위안부 문제 해결 없이는 정상회담을 안 하겠다는 박근혜 대통령을 향해 “정상 간 만남에 조건이 있어서는 안 된다”고 말했던 사람이다. 스가 내각의 한국에 대한 외교는 전임자보다도 훨씬 비상식적이고 비정상적이다.

 

한국의 대일외교 역시 정상적이지는 않다. 한국은 회담의 3대 의제로 한국에 대한 일본의 수출규제 문제, 강제징용·위안부 문제,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처리를 내세우고 여기에 성과가 있어야 문 대통령이 일본에 갈 수 있다고 했다. 정상 간 첫 대면에서 양국 갈등의 핵심 원인인 난제들을 논의해 진전을 이룰 수는 없다. 또한 코로나19로 엉망진창이 된 올림픽을 어쩔 수 없이 열어야 하는 입장이 된 주최국에 ‘축하 방문의 전제조건’으로 양국 간 최대 갈등 현안에 대한 양보를 요구한 것은 합리적 판단이 아니다. 처음부터 이웃나라에서 열리는 스포츠 축제를 축하하기 위한 방문으로 성격 규정을 하고, 정상회담에서는 관계개선을 위한 서로의 의지를 확인하는 것을 ‘망외의 소득’으로 삼았다면 무난한 결과가 나왔을 것이다.

 

특히 청와대가 수출규제 조치 철회를 최우선적인 정상회담의 성과로 얻어내려 한 것은 지금까지 정부가 보여준 태도와 모순적이다. 일본의 수출규제에 맞선 한국의 대응카드는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을 연장하지 않는 것이었다. 이 조치의 효력이 발생하기 직전인 2019년 11월 한·일은 ‘한국은 GSOMIA의 효력을 유지하고 일본은 수출규제 조치를 풀기 위한 논의를 시작한다’고 합의했다. 당시 청와대는 “수출규제가 풀리지 않으면 언제든지 GSOMIA를 다시 종료시킬 수 있는 견제장치가 있다”고 주장했다. 그 말대로라면 지금도 GSOMIA 카드를 다시 꺼내 수출규제를 풀 수 있는데 왜 그렇게 하지 않는지를 먼저 설명해야 한다. 또한 문 대통령은 지난 2일 일본의 수출규제 2년을 맞아 “우리는 일본의 수출규제를 오히려 소재·부품·장비 산업 자립도를 획기적으로 높이는 계기로 만들었다”고 말했다. 정말로 수출규제가 전화위복이라면 정상회담 성사 여부를 좌우할 핵심적 성과로 수출규제 철폐를 요구할 이유가 없다.

 

정부는 여전히 조속히 관계개선의 실마리를 찾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임기 초반 강제징용 문제 등 한·일 간 현안에 무관심했던 것과 달리 조급함이 느껴진다. 미국을 의식한 것일 수도 있고, 문 정부 때 한·일관계가 최악이었다는 오명을 벗기 위한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은 한·일 모두 진지한 대화를 할 준비가 안 된 상태다. 9월 자민당 총재 선거를 앞두고 있는 스가 총리는 한국 문제에 관심도 의지도 없다. 오히려 한국에 강경한 모습을 보여야 정치적으로 유리하다는 인식을 숨기지 않는다. 지금 서두르는 것은 더 안 좋은 상황을 초래할 수 있다. 모든 노력을 했는데도 진전이 없는 것은 일본의 비협조 때문이라는 인식을 조성하기 위한 의도가 아니라면 지금은 한걸음 물러나 양국의 정치적 상황이 안정되고 생산적인 대화 여건이 조성되기를 기다리는 것이 현실적이다.

유신모 외교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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