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길에서]거북이는 다시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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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 국제칼럼

[정동길에서]거북이는 다시 떠난다

by 경향 신문 2020. 7. 15.

코로나19 사태로 세계의 관광지들이 문을 닫았다. 갈라파고스도 폐쇄됐다. 외부 관광객들을 실어나르던 항공편이 3월 중순부터 끊긴 것이다. 바다사자와 이구아나와 새들이 다시 섬들의 주인이 됐다. 찰스 다윈이 진화론을 연구했다는 에콰도르의 이 섬들이 200년 만에 평화를 찾은 것 같다고 현지 언론들은 보도했다. 군도의 여러 섬 가운데 중심인 산타크루즈에는 ‘외로운 조지’의 동상이 있다. 2012년 세상을 떠난 마지막 핀타섬땅거북이다. 조지가 죽으면서 이 종은 세상에서 사라졌다. 다른 거북이들도 언제 핀타섬땅거북이의 운명을 따를지 모른다. 그래도 인간에게 시달리던 이 단단한 생명체들은 코로나19 덕에 숨을 돌릴 수 있었을 것이다.

 

키토대학과 찰스다윈재단의 과학자들은 모처럼 이 섬의 생태계를 차분히 연구할 틈을 가졌다. 사람들 발길이 끊긴 관광지구에서 수질과 해저 환경, 토양 침식, 지표식물 등을 조사했다. 바닷가에 고유종들이 늘어나고 부비새가 더 많이 오고 자연이 활기를 띠는 게 눈에 띄었다고 한다. 지난해 갈라파고스를 찾은 관광객이 27만명이라는데 올해엔 현저히 적을 것이다. 하지만 이 휴식이 지속될 수는 없다. 13일 에콰도르 환경장관은 트위터 글에서 관광 재개를 알렸다. 당장 비행기가 오가는 것은 아니지만 관광신청 사이트를 다시 열고 예약을 받는다고 했다.

 

코로나19 뒤 인도와 태국의 바닷가를 거북이들이 뒤덮고 영국의 거리를 산양들이 거닐고 칠레 도심에 퓨마가 활보하고 캐나다의 주택가에 새끼여우가 산보를 나왔다는 뉴스가 잇달았다. 로스앤젤레스의 청명한 하늘, 차들과 사람들이 사라진 파리와 밀라노와 모스크바의 초현실적인 풍경. 자동차와 공장들이 멈추자 지구가 맑아지고 빈사 상태의 생태계가 되살아나는 것 같은 신호가 줄을 이었다.

 

코로나19에 숨 돌렸을 갈라파고스의 거북이들
잠시 멈춤에 맑아진 지구 산업·삶의 방식 안 바뀌면 돌아온 ‘생태’는 착시일 뿐

 

영국의 생태학자들은 ‘인간휴지기(anthropause)’라는 말을 썼다. 추적장치가 붙어 있는 야생동물들의 움직임을 조사해보니 코로나19 이후 동물들이 “인간의 부재를 최대한 활용”하고 있었다고 한다. 도시를 자유롭게 이동하고 있었으며 어떤 곳에서는 인공 환경이 다시 야생화되는 조짐이 나타났다. 과학자들은 불가피하게 환경 파괴의 일시중지 버튼을 누르게 한 코로나19와 원전 사고 뒤 야생동물의 터전이 된 체르노빌을 비교했다.

 

그러나 코로나19는 생태계 구원투수가 아니다. 베네치아 운하의 해파리도, 뭄바이 거리의 공작도 인적이 드물어진 틈을 타 잠시 모습을 드러냈을 뿐이다. 공장은 다시 가동될 것이고 비행기가 날아다닐 것이다. 부자나라 자본이 개도국 땅을 집약농장으로 만드는 땅뺏기가 반복될 것이고, 벌목과 채굴과 수십억 명의 무지막지한 소비도 계속될 것이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올해 세계 에너지소비가 70년 만에 가장 큰 폭으로 줄어들 것이라 예상했다. 중국 공장들이 한동안 멈췄던 까닭에 석탄 수요는 지난해보다 8% 감소할 것으로 봤다. 그래 봤자 전체 에너지소비로 보면 겨우 6% 덜 쓰는 것이다.

숲을 베어낼수록 야생동물들이 사람이나 가축과 더 많이 접촉하고, 바이러스가 더 빨리 진화하고, 전염병이 돌 가능성은 높아진다. 사스와 신종플루 때부터 많이 나온 지적이다. 코로나19가 세계를 휩쓸면서 인수공통 감염증을 부르는 사회·경제적 요인에 관심을 두는 이들이 크게 늘어난 것 같다. 그러나 과연 달라질까.

 

체르노빌에서 인간이 사라진 지는 30여년이 지났다. 바이러스는 그렇게 오래가지 않을 것이며 오래가서도 안 된다. 자연 착취의 ‘잠시 멈춤’은 말 그대로 잠시에 그칠 것이다. 인간이 다른 종들과 행성을 공유할 새 전략을 짜야 한다고 과학자들은 말한다. 하지만 생태계 파괴의 ‘록다운’은 벌써 해제되고 있다.

 

시베리아 베르호얀스크의 기온이 38도로 치솟고 알프스 빙하는 조류가 끼어 분홍색이 됐다. “코로나19만큼이나 기후변화도 심각한 위협”이라고 그레타 툰베리가 말해도 세계는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우리는 K방역을 자찬하고 상품과 서비스에 언택트라는 라벨을 붙이지만 환경에 대한 성찰은 적다. 한전은 인도네시아 석탄발전소에 투자하기로 했고, 디지털그린뉴딜에서 ‘그린’은 어디 있는지 잘 모르겠다. 도시 풍경과 농촌 경관, 산업과 삶의 방식이 바뀌지 않는 한 코로나19의 생태적 효과는 착시에 불과하다. 바이러스가 지구를 살릴 수는 없다. 거북이도, 산양도, 퓨마도, 여우도 곧 다시 떠날 것이다.

 

<구정은 국제부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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