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짓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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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칼럼=====/김민정의 '삶과 상상력'

이름 짓기

by 경향 신문 2013. 1. 31.

이름과 사람 되기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김춘수의 시처럼 그렇게, 사람들은 이름을 통해 서로 연결된다. 모든 사회는 새로 태어난 아기에게 특정한 방식으로 이름을 붙이고, 그 이름을 통해 사회성원으로 받아들인다.

모리스 고들리에(Godelier)라는 프랑스 인류학자는 여러 지역의 부족사회 연구를 통해, 한 명의 인간이 탄생하는 데에는 부모가 아이의 몸을 만드는 생식과정 이상이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하였다. 많은 부족사회에서 아이의 숨은 조상이나 신이 영혼을 불어넣어주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아이에게 이름이 붙여지기 전까지는 아직 완전히 태어난 것이라고 여기지 않았다. 아이의 이름은 부모와 가까운 사람의 이름을 골라 받는 경우에서 부터 아버지 쪽 친족의 이름을 받는 경우까지 다양하였다.

이름은 그 사람에게 고유한 것이지만 사실 완전히 새로운 창작물이 아니다. 대부분의 사회에서 이름은 앞서 산 누군가의 이름을 물려받거나, 의미있는 자연현상을 지칭하거나, 특정한 가치가 담긴 단어를 빌려 온 것이다. 기독교 문화권에서 성인(saints)의 이름을 가져와 세례명으로 사용하는 것이 그렇고, 한국에서 아버지 집안의 성씨를 물려받고 문중의 항렬자를 쓰는 것이 그렇다. 유교의 격식을 벗어난 현대 한국에서 부모들은 간혹 자기가 존경하는 사람이나 좋아하는 연예인의 이름을 자식에게 붙이기도 한다. 즉, 각 사회마다 이름에 인간의 의미와 삶의 가치를 담아내기 위한 각기 다른 문화적 방식, 이름 짓는 방식이 있다. 

아이슬란드식 이름 짓기

북극권 바로 아래 위치한 화산섬 나라 아이슬란드는 고대 노르딕의 이름체계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이름은 두 개에서 네 개로 구성되는데, 첫 번째부터 세 번째 이름은 부모가 가까운 친척이나 친구, 좋아하는 사람의 이름 중에서 가져온다. 마지막 이름은 보통 아버지의 첫 이름 즉 ‘퍼스트 네임’에 ‘-의 아들’(-son)이나 ‘-의 딸’(-dottir)이란 수식어를 붙여서 만든다. 그러니까 아이슬란드에서는 마지막 이름. 즉 ‘라스트 네임’이 ‘-도띠르’로 끝나면 모두 여자이고, ‘-손’으로 끝나면 모두 남자인 것이다. 이 ‘라스트 네임’은 단지 그 사람의 아버지의 (간혹 어머니의) 첫 이름을 알려 줄 뿐, 한 가족 안에는 여러 ‘라스트 네임’이 뒤섞여 있다. 독특한 감수성의 뮤지컬 영화, <<어둠 속의 댄서>>로 우리에도 알려진 아이슬란드 가수 비욕의 가계도를 보면, 삼 세대에 속한 가족 일곱 명은 제각기 다른 ‘라스트 네임’을 가진다. 

 

비욕 사진의 출처는 홈페이지 http://www.bjork.com, 가족관계는 http://en.wikipedia.org/wiki/Bj%C3%B6rk

 

비욕네 가족들은 두 개 또는 세 개로 구성된 이름을 가지고 있는데, 아이슬란드에서 이름은 최대 네 개로 구성할 수 있다. 비욕의 두 번째이자 마지막 이름은 아버지의 첫 번째 이름(Guðmundur)에 ‘-의 딸’(-dottir)라는 수식어를 붙인 것이다. 비욕의 아들(F)의 이름은 세 개로 구성되었는데, 아이슬란드인 아버지 이름 중 두개를 물려받아 아이슬란드식으로 지은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딸(G)의 이름이다. 이사도라의 이름은 미국인 아버지의 부계성(Barney)을 물려받아 미국식이다. 그렇지만 ‘비욕의 딸’(‘비욕’이 형용사형 ‘비야카르’가 되어, Bjarkardottir)이란 아이슬란드식 마지막 이름형태를 두 번째 이름으로 넣었기 때문에 아이슬란드식과 미국식이 혼합된 퓨전형이라 할 수 있다.   

아이슬란드의 이름 소송

새해 들어 외신에 보도된 아이슬란드 소식 중 하나는 블래르(Blær Bjarkardottir)라는 15세 소녀가 국가의 이름위원회(Naming Committee)를 상대로 낸 이름 등록 소송이다. 아이슬란드 이름위원회는 남녀로 구분된 삼천 여개의 이름을 정하여 등록을 허용해준다. 유니섹스 이름은 사용할 수 없으며, 리스트에 없는 새 이름은 위원회의 허가를 받아야 등록할 수 있다.

문제가 된 ‘블래르’란 이름은 ‘가벼운 바람’이란 뜻인데, 아이슬란드 어에서는 바람이 남성 명사이기 때문에 남자이름으로 등록되어 있다. 그런데, 노벨문학상을 받은 아이슬란드의 대문호 할도르(Halldor Laxness)가 일찍이 1957년에 소설 속 여자 인물의 이름으로 사용하였다. 이후 1973년에는 여자 한 명이 이 이름으로 등록된 적이 있다. 원고의 어머니가 새로 태어난 딸에게 이 이름을 붙이려고 할 때 교회목사도 별다른 문제제기 없이 이 이름으로 영세를 주었다. 그런데, 이름위원회에서 등록을 거부하여 블래르는 입학서류 등 공식 문건에 그냥 ‘여자아이’로 기재되어 있었던 것이다.

아이슬란드 이름 소송 기사가 실린 영국의 일간지, 사진은 블래르 모녀

국가가 이름을 선택할 개인의 자유를 제한한다니 어이없어 보일 수도 있지만, 아이슬란드의 사정을 들어보면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이름위원회는 1991년에 출범하였는데, 아이슬란드 문법에 따라 젠더별로 형용사 변용이 가능한 이름만 허용하여 아이슬란드 언어를 지켜고자 한다. 또한 오늘날에도 사용되는 역사서의 이름들이 중요한 문화 자원이라고 생각하여 그 리스트를 관리하고자 한다. 실제 정부의 이름 관리는 훨씬 더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25년에 이미 아이슬란드식 ‘라스트 네임’을 사용하도록 법을 제정하였고, 1952-1995년 사이에는 외국인도 아이슬란드식 이름을 가지도록 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도 1991년에 새로 위원회를 구성한 이유는 아마도 해외로 이주한 아이슬란드인 수가 증가하고 또 새로운 스타일의 이름을 원하는 젊은 세대가 늘어났기 때문일 것이다. 아이슬란드 국내의 최근 보도에 의하면 위원회는 블래르의 이름 등록을 허용할 것으로 보인다. 

이름의 젠더 구분과 평등

여기까지만 보면, 아이슬란드가 전통 수호라는 기치를 내걸고 성차별을 하는 사회로 보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사실 아이슬란드는 1980년에 이미 여성대통령이 나왔고, 세계경제포럼(WEF)이 발표한 성평등 지수가 세계 1위인 나라이다 (여성신문 2012년 10월 26일).

아이슬란드는 남한 면적 85% 정도의 영토에 남한 인구의 0.6%인 30여만명이 사는 작은 나라로 독자적인 언어를 사용한다. 과거에는 입국 심사 시 출입국관리 직원이 여권을 보지 않고 아이슬란드어로 말을 걸어 자국민인지 판단했을 정도라고 한다. 과거 노르웨이와 덴마크의 지배하에 있었고 이차대전 후에는 영국과 어업전쟁을 겪었던 작은 나라로서 아이슬란드는, 주권수호를 위해 여러 차원에서 ‘토종의’ 것을 지키려는 노력을 한다. 예를 들면, 아이슬란드의 토종말은 일단 국경을 벗어나면 다시 돌아 올 수 있다. 아이슬란드 어는 노르딕 고어에 속하는데 변화가 늦어 현재에도 천여 년 전의 고서를 읽을 수 있다고 한다. 오늘날 사람들의 이름으로도 천여 년 전 역사서에 등장하는 조상의 이름이 여전히 사용된다. 작은 나라로서 국민정체성을 유지해야 생존할 수 있다는 절박감으로 국가가 전통 이름체계를 유지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름의 성별 ‘구분’은 문법상 젠더별로 다르게 변용하는 언어를 보존하려는 것이지, 이름체계를 통해 성 ‘차별’을 하려는 것은 아니다. 주로 아버지의 이름을 따서 만든 ‘라스트 네임’은 부계 혈통을 따르는 집안의 성씨가 아니라 아버지만을 기억하기 위한 것이며 이마저도 호칭으로 사용되지 않는다. 대통령이나 교수라는 직함, 또는 미스나 미스터 칭호 뒤에 붙는 이름은 ‘라스트 네임’이 아니라 ‘퍼스트 네임’이고, 전화번호부도 첫 번째 이름순으로 되어 있다. 게다가, 드물지만 어머니 이름으로 ‘-의 아들’ 또는 ‘-의 딸’이라는 라스트 네임을 만들기도 하고, 부모 이름을 다 사용하여 ‘ -와 -의 아들’ 또는 ‘-와 -의 딸’이라는 이름을 만들기도 한다. 그러고 보면 우리나라에서도 최근 어머니 성을 같이 쓰는 경우가 있고, 내 남동생네 부부의 예처럼 부모 이름에서 한자씩 떼어서 아이의 이름을 만드는 경우도 있다.

이렇게 이름에도 한 사회의 가치와 성규범, 가족과 친족, 사회의 변화 방향 등이 담겨있다. 아이슬란드 국가의 이름관리는 세계화의 시대에 고유의 정체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유연성을 발휘해야 한다는 역설의 교훈을 전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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