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노이 2차 북·미 정상회담이 결렬됐다. 회담이 과자라면, 여러 쪽으로 부서졌다는 뜻이다. 그런데 과자 조각을 다시 맞춰보려니 아귀가 잘 맞지 않는다. 원래 과자 모양이 어떤 것이었는지도 각자 의견이 다르다. 조각 하나하나 살펴보는 수밖에 없다. 먼저 단계적·동시적 해법. 미국 주류는 ‘일부 핵폐기, 일부 대북 제재 해제’로 시작하는 단계적 비핵화를 좋아하지 않는다. 처음부터 느린 차는 가다가 서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북핵 묵인으로 끝날 걸 의심한다. 그래서 시동을 걸자마자 시속 100㎞로 내달리는, 성능 좋은 자동차 아니면, 쳐다보지도 않으려 한다. 문제는 탑승자가 북한이라는 사실이다. 

차와 운전자에 대한 최소한의 신뢰도 없는데 북한이 터보 엔진을 장착한 차에 몸을 싣고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길을, 눈 질끈 감고 달려 갈 수는 없다. 김정은·트럼프 간에는 약간의 신뢰가 있는 것 같지만, 미국인과 김정은 사이에는 그런 게 전혀 없다. 북한이 생각하는 미래는 경제 번영을 하되 정권은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것이다. 그러자면 비핵화의 최종 단계까지 체제 불안 요인이 없는지 하나하나 짚어가며 나아가야 한다. 그걸 무작정 목적지에 먼저 도착하고 나서 나중에 할 수는 없는 일이다. 북한은 단계적·동시적으로 할 수밖에 없다. 여기서 조각이 어긋난다. 북한의 단계적·동시적 해법은, 북핵 의제를 모두 한 바구니에 담아 한 번에 해치우자는 트럼프의 일괄타결과 서로 맞아떨어지지 않는다. 

김정은·트럼프 간 정상 담판 결과가 그걸 입증한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담판에서 김정은은 이미 실무협상 때 미측 팀이 반대한 영변 핵과 제재 해제 맞교환이라는 단계적 방안을 내놓았고, 트럼프는 북한 수용 확률 0%라고 참모들이 반대한 일괄타결안을 제안했다.

 

김정은이 핵시설의 중요한 부분인 영변 핵 폐기안을 초기 조치로 제시한 것은 평가받을 만하다. 하지만 까다로운 조건을 내걸었다. 2016년 이래 5건의 제재 해제, 즉 사실상의 제재 전면 해제를 요구한 것이다. 영변 핵폐기는 사실상 불가역적 조치에 해당하지만, 핵심 제재를 마지막 순간 풀겠다는 미국 입장과는 균형이 맞지 않는다. 결국 공평하게 트럼프는 김정은 안을, 김정은은 트럼프 안을 거부했다. 단계적 과정이 없는 일괄타결, 최종 목표를 달성하는 방법이 없는 단계적·동시적 해법은 서로 엮일 수 없다. 그건 여우가 저녁 식사에 초대한 황새에게 바닥 넓은 접시에 수프를 주고, 황새는 호리병에 물고기를 담아 여우를 대접한 것과 같다. 그런데 두 방안의 차이는 마음먹기에 달렸다.

차이는, 해결 의사가 없다면 협상을 포기하기에 충분한 이유를 제공하지만, 해결 의사가 있다면 충분히 좁힐 수 있는 근거가 된다. 목표만 있고 과정이 없는 일괄타결, 과정만 있고 목표가 없는 단계적 해법은 서로 보완할 수 있다. 흩어진 조각, 맞출 수 있다. 스티븐 비건 대북정책특별대표가 미국 스탠퍼드 대학 강연에서 말했다. ‘우리의 목적은 마지막 핵무기가 북한을 떠나고, 제재가 해제되고, 상대국 대사관에 국기가 오르고, 협정에 서명하는 걸 같은 시간에 하는 것이다.’ 핵폐기, 관계 정상화 및 제재 해제, 평화체제 구축은 그 의제 하나하나가 여러 단계로 구성된 데다 의제 간 서로 얽혀 있다. 하나, 둘, 셋 하는 순간 달러와 마약을 동시 교환하는 건 조폭영화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단계를 밟지 않고, 준비와 원인 없이 어느 순간 모든 일이 동시에 일어나는 건 물리법칙에도 어긋난다. 일괄타결은 칭찬에 굶주린 트럼프가 국내정치를 위해서는 쓸 만한 카드겠지만, 북핵 해결을 위해서는 아니다. 단계적·동시적 해법은 그 장점만큼 결함도 있다. 최종 목표와 그 목표에 언제, 어떤 방법으로 도달하는가에 관한 포괄적 구상이 없다. 그렇다 보니 북한은 신뢰 수준에 맞게 단계적으로 하면 완전한 비핵화에 이르지 않겠느냐는, 막연한 말만 한다. 

초기 단계에 과감하게 영변 핵폐기를 제시했더라도 영변 외의 핵 문제에 침묵한다면, ‘비핵화 의사가 없다’는 미국 주류의 선입견은 씻을 수 없다. 단계적·동시적 해법과 일괄타결안을 망라한 종합판이 필요하다. 단계적·동시적 해법의 속도를 좀 높이고, 일괄타결에 시간 개념을 도입하면 가능하다. 포괄적 구상 아래 로드맵에 따라 실행하기. 그건 이렇게 보면 단계적·동시적 해법으로, 저렇게 보면 일괄타결로 보이는 마법을 연출한다. 여우와 황새가 함께하는 첫 식사는 실패했더라도 실패 이유를 안다면, 다음 식사는 서로 만족스럽게 할 수 있다. 이런 때일수록 북핵 해결이 가능하다는 낙관적 사고와 해결하겠다는 의지가 중요하다. 그게 없으면 어떤 묘약도 소용없다. 

<이대근 논설고문>



Posted by KHro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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