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사례로 본 차별금지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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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 국제칼럼

유럽의 사례로 본 차별금지법

by 경향 신문 2022. 4. 27.

최근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의 지하철 탑승 시위를 보며 포괄적 차별금지법이 자연스레 떠올랐다. 한국에서 차별금지법은 2007년 처음 발의된 이후 일곱 차례 법안 제정을 시도했으나 연거푸 실패해 왔다. 현 21대 국회에서도 총 4건의 차별금지법이 발의됐지만 심사조차 되지 않았다. 한국의 차별금지법 제정 논의는 성적 지향, 동성애 등의 지엽적인 문제에 갇혀 해당 법의 진정한 효과인 평등권에 대한 관심은 점차 사라진 채 표류하고 있다.

계속 제자리걸음을 반복하고 있는 차별금지법은 대체 왜 필요한 것일까? 앞서 차별금지법을 도입한 유럽의 사례가 그 이유를 보여준다. 우선, 유럽 국가들의 차별금지법은 차별의 정의와 범위를 규정한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있다. 영국의 포괄적 차별금지법인 평등법은 차별의 의도성을 바탕으로 직접차별·간접차별을 분류하고, 차별금지에 해당하는 여러 영역(예: 여성, 노인, 장애)의 정체성이 결합된 사람이 차별을 받았을 때, 각각의 사유를 입증하지 않아도 차별받은 것으로 간주하는 개념인 복합차별을 규정했다. 스웨덴의 차별금지법도 비슷하게 차별을 직접·간접차별, 괴롭힘, 성희롱, 차별의 지시로 정의했다. 차별의 개념을 간명하게 표현하여 혼란을 방지하고 직관적으로 이해하기 쉽게 한 것이 특징이다. 한국의 경우 국가인권위원회법과 같은 개별 영역에서의 차별금지법이 있지만 간접차별, 괴롭힘, 성희롱 등의 개념이 존재하지 않거나 모호하게 규정되어 있어 보호하지 못하는 차별의 영역이 존재한다.

두번째로, 차별금지법은 차별에 대한 국민의 공감과 감수성을 높여주는 데 기여했다. 2017년 ‘독일의 차별 경험’ 보고서는 독일의 포괄적 차별금지법인 일반평등대우법 도입 이후 설문조사의 응답자 중 다수가 차별을 소수그룹에만 속한 것이 아닌 사회 속에서 종종 마주할 수 있는 일상적 문제라고 답했음을 보여준다. 영국의 2012년 평등법 시행 평가에 따르면 평등법 도입 이후 직원 250명 이상 기업 중 78%가 직장 내 차별 문제를 보다 중요하게 인식하게 되었다고 밝혔다. 필자가 최근 발표한 논문에서는 스웨덴의 차별금지법이 스웨덴 내 한국 기업에 제도적 압력으로 작용하여 기업들이 성평등한 직장문화에 더 신경쓰게 되었다고 확인한 바 있다.

또한 차별금지법은 사회의 변화에 따라 새로이 나타나는 차별에 대한 논의를 가능하게 했다. 세계화로 인한 이주, 다문화 확산은 유럽 국가들에 개개인의 다양한 정체성의 이해를 요구하게 되었다. 이에 대응하기 위해 독일과 영국의 차별금지법은 복합차별을 규정하여 여러 가지 사유로 차별받는 이가 차별을 주장하기 용이하게끔 만들었다. 이는 정체성에 따른 차별을 복합적으로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어 차별 사각지대에 놓인 이들을 구제하였다.

차별금지법은 차별·혐오 문제를 해결하는 만능열쇠가 아니다. 하지만 유럽의 사례에서 보듯, 차별금지법은 인권을 보호하는 최소한의 장치, 차별을 폭넓게 이해하는 출발점으로서 사회에 기여할 수 있다. 2020년 6월 국가인권위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88.5%가 차별금지법에 찬성한다고 답했다. 이제 지난했던 입법논의에 종지부를 찍고, 차별금지법이 모두의 평등을 위해 한국에 정착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송지원 영국 에든버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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