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마의 실패에서 배울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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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칼럼=====/손제민의 특파원 칼럼

오바마의 실패에서 배울 것

by 경향 신문 2016. 10. 19.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집무실에서 직원들의 아기를 어르는 사진을 보노라면 그의 소탈한 이미지에 반하지 않을 수 없다. 역대 어느 대통령보다 지적이고, 사회문화적 진보 성향인 오바마는 매력적인 인물이다. 그래서인지 임기 말 대통령으로는 이례적으로 높은 인기를 누리고 있다. 하지만 그가 중요한 어떤 측면에서 실패한 대통령이라고 생각한다.

 

미국, 일본 등 12개국이 타결한 거대 자유무역협정(FTA)인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은 오바마의 아시아·태평양 재균형의 핵심이라 할 정도로 큰 비중을 차지한다. 하지만 어느 때보다 FTA에 대한 반감이 강한 상황에서 TPP 처리는 불투명하다. 2008년 오바마를 대통령으로 만들기 위해 발벗고 나섰던 노조, 환경단체들은 실망을 표하며 상당수 돌아섰다. 엘리자베스 워런, 버니 샌더스 등 민주당 정치인들도 강하게 비판했다. 오바마 밑에서 TPP를 추진했던 힐러리 클린턴마저 지난 3월 미시간 경선에서 샌더스에게 패한 뒤 TPP 반대로 돌아섰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국립 흑인역사문화박물관 개관식에서 연설을 하고 있다. AP연합뉴스

 

그럼에도 오바마는 모든 FTA가 나쁜 것은 아니며 특히 TPP는 노동자 권리, 환경보호 등에서 어떤 FTA보다 진보적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협상 타결 후 공개된 TPP 조항에서 확인됐듯 지적재산권, 투자자-국가 분쟁 해결(ISDS) 조항 등 본질적으로 거대 기업들의 이해관계가 집중 반영됐다.

 

미국 내 반FTA 정서는 무역적자 증가, 제조업 일자리 감소 문제로 치부되지만 어떤 나라가 무역수지 흑자를 보고 적자를 보느냐의 문제는 아니다. 그것은 해외 직접투자, 지적재산권, 국가의 공공정책 제약 등을 규정한 신자유주의 세계화 규범이다. 강한 로비력을 가진 금융·법률·제약 회사 등 거대 기업들과 부자들의 이해가 어느 국가를 막론하고 중산층, 노동자, 농민들에 우선한다. 오바마는 그런 협정을 대선 때까지 숨죽이고 있다가 유권자들이 모두 집에 돌아가기를 기다린 뒤 의회 비준을 받으려고 기회를 보고 있다.

 

나는 오바마가 어쩌다 지지층을 배반하면서 TPP를 추진하게 됐는지 늘 궁금했다. 이는 노무현 대통령이 2006년 돌연 한·미 FTA를 국정의 최우선 과제로 들고나온 과정과 흡사하기 때문이다.

 

그 궁금증의 일부가 최근 공개된 클린턴 선거본부의 좌장 존 포데스타의 e메일에서 풀렸다. 오바마 정권인수팀 팀장이던 포데스타가 대선 한 달 전인 2008년 10월 마이클 프로먼 당시 인수위원으로부터 받은 e메일에는 오바마 집권 시 각료, 참모로 기용할 리스트가 포함됐다. 프로먼은 소수계, 여성, 각료 후보를 각각 작성해 보고했다. 래리 서머스와 티머시 가이트너(재무장관), 아니 던컨(교육장관), 캐슬린 시벨리우스(보건장관), 에릭 홀더(법무장관), 에릭 신세키(보훈장관), 람 이매뉴얼(비서실장) 등은 대부분 기용됐다.

 

당시 프로먼은 시티그룹 경영자 자격으로 인수위에 참여했다. 오바마 행정부 고위직 인사의 밑그림을 월가 인사가 짰던 것이다. 프로먼은 오바마의 국제경제보좌관을 거쳐 2기 때 미 무역대표부(USTR) 대표를 맡아 TPP 협상을 진두지휘했다.

 

이 과정에서 오바마는 무슨 역할을 했을까. 냉정히 말해 그는 특수 이해관계를 모두의 이익인 것처럼 좋게 포장해 전파하는 역할에 충실했던 것 같다. 이는 오바마가 사회문화 현안에는 진보적 입장을 취한 것에 비해 경제적 측면에서는 공화당과 구별되는 대안 집권 플랜이 허약했음을 방증한다. 민주당과 진보진영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나는 여기서 한국의 대통령을 꿈꾸는 정치인들을 생각한다. 인지도와 지지율 수치를 재가며 대선 출마를 저울질하기 앞서 사회문화적 측면과 경제적 측면에서 혁신적이라고 할 만한 진보적 집권 플랜을 만들지 않으면, 정권을 잡더라도 그럴싸한 국정 구상을 그려온 재벌의 뜻에 기울어져 버리기 쉽고 빠르게 지지층의 열망을 저버리게 될 것이다.

 

워싱턴 | 손제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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