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거대한 기획, Big Society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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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 가다 /지난 시리즈

영국의 거대한 기획, Big Society (3)

by 경향 신문 2011. 2. 11.
김홍수영 / 영국 런던정경대학 사회적배제센터 박사과정 samarakim01@hotmail.com


큰 사회 프로그램의 비난에 대한 돌파구

그러나 이러한 비판 여론 가운데에서도 캐머런 내각은 약간은 예상치 못한 대안으로 돌파구를 마련하고 있어서 관심을 끈다. 예를 들어, 얼마 전 정부는 봉사활동을 활성화시키기 위해서 포인트 적립 서비스를 봉사활동과 연결시킨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한국에서도 통신회사나 일부 기업들이 포인트를 적립하면 영화, 레스토랑 등 문화시설을 누릴 수 있는 고객서비스를 운영하고 있는데, 영국에서도 대형 슈퍼마켓이나 기업에서 이와 비슷한 서비스를 실시하고 있다. 이에 영국 정부는 Nectar, Tesco 그리고 Recycle Bank 카드와 같이 기업의 유명한 포인트 서비스와 제휴하여 봉사활동을 했을 때 이와 같은 포인트를 적립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다. 
이는 지역화폐제도(LETS)에서 아이디어를 착안한 것으로서 사회적 공헌을 마케팅 전략으로 이용하고자 하는 기업에게도 이득이 되는 1석 2조의 효과를 갖는 아이디어다.




재원 확보에서도 일단 위기를 모면한 상태다. 2010년 11월 25일 보수당 정부는 당초 예상했던 6천만 파운드의 두 배에 이르는 1.5억 파운드의 자금을 출연하여 ‘큰 사회 은행’을 설립한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아직 총 목표 금액인 4억 파운드에는 못 미치지만 대단한 수확이다. 
큰 사회 은행에 자금을 투자하기로 결정한 은행들은 바클레이즈,HSBC, 로이즈 뱅킹그룹, 스코틀랜드 뱅크, 산탄데르 영국 법인 등 5개 대형 은행이다. 
은행이 소극적인 태도를 보일 것이라는 예상을 깨고 이러한 대대적인 참여를 이끌어낸 것은 보수당의 협상력 때문이었다. 캐머런 총리는 은행권에서 직원들에게 100만 파운드 이상의 보너스 지급을 할 때 그 세부내용을 공개하도록 요구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함으로써 은행권의 참여를 이끌어낸 것이다. 
이는 영국 사회에서 가장 임금이 높은 직업으로 보수 문제에 대해서 항상 사회의 눈총과 정부의 감시를 받아왔던 은행원들에게는 환영할만한 협상카드였다. 영국은행협회(British Bankers’ Association)에서는 "은행들이 보수지급과 관련한 사회 분위기를 이해하고 있으며, 그들의 사회적 의무를 알고 있다"며, "정부와 펀드 참여를 논의하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처럼 ‘큰 사회’ 프로젝트는 캐머런의 획기적인 구상에서 출발하여, 황당하고 엉성하다는 비판을 거쳐, 다시 전략적인 대안을 내놓는 방식을 거듭하면서 변모하고 있다. 때문에 아직은 정책의 성공과 실패에 대해서, 그리고 이 프로젝트가 진보파의 예상대로 시장화의 압박을 가속화하게 될지, 아니면 정말로 사회가 커지는 결과를 가져올지 예견하기는 어려운 단계다.

조화로운 사회를 향한 끊임 없는 성찰

그러나 이 초기 단계에서 확실히 아쉬운 점은 하나 있다. 바로 관심의 초점이 "큰 정부냐, 큰 사회냐"와 같이 양과 규모에 치중하여 있다는 점이다. 
사실 ‘사회’는 귀에 붙이면 귀걸이 코에 붙이면 코걸이가 되는 애매모호한 단어다. 대처는 1987년 ‘사회’를 ‘국가’라는 말과 같은 개념으로 사용했다. 그녀는 개인과 가족이 인간의 복지를 개별적으로 책임져야 한다는 주장을 하면서, ‘세상에는 사회라는 실체는 없다(There is no such thing as society)’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이는 국가의 권력을 대폭 없애겠다는 뜻이었다. 
반대로 캐머런은 ‘사회’와 ‘국가’를 포함하거나 서로 다른 개념으로 사용한다. 캐머런은 이를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사실 세상에는 사회라는 실체는 있다. 그러나 그것이 국가와 같은 것은 아니다 (There is such a thing as society. It is just not the same thing as the state)’. 
다시 말해 개인 차원을 넘어섰지만 국가가 아닌 공동체, 예를 들어 시민사회나 시장이 엄연히 존재하고, 큰 사회 프로젝트가 지향하는 바는 큰 국가가 아니라, 큰 시민사회나 큰 시장이라는 뜻이 숨어 있다. 시민사회의 부흥을 암시하는 이러한 표어 때문에, 한국의 시민사회단체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박원순 변호사는 2010년 10월 3일 미래포럼에서 발 빠르게 큰 사회 프로젝트를 한국의 시민단체들에 소개하고 선전하기도 했다.




그러나 사실 지난 노동당의 ‘큰 정부’이나, 보수당의 ‘작은 정부’ 그리고 최근의 ‘큰 사회’ 담론에서는 질과 과정에 대한 성찰이 빠져있다. 
정부의 역할을 시장이 대신한다거나, 정부가 줄어들면 시민사회가 커질 것이라는 계산은 다소 기계적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시장, 정부, 시민사회는 결코 다른 영역이 대신할 수 없는 고유한 역할을 담당해 왔다. 시장만큼 자원을 자유롭고 신속하게 교환할 수 있는 메커니즘은 드물며, 대부분의 재화와 서비스를 생산하는 데 시장이 가장 효율적인 시스템이라는 것은 의문의 여지가 없다. 
시민사회는 지역주민들이 살아가는 생활세계이고 따라서 시민들의 실상과 욕구가 제일 잘 반영된 공간이다. 그러므로 민주적이고 참여적인 행정 운영을 위해서는 시민사회단체나 공동체를 활성화시켜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아무리 시민사회가 자유롭고 참여적인 민주주의를 진작시키는 공간이라고 하지만, 전체적인 조율과 큰 그림을 짜는 역할은 모든 이익집단과 단체를 넘어설 수 있는 정부에게 기대할 수밖에 없다. 그것이 정부의 본질적인 역할이다.

따라서 누구의 역할을 줄이고, 늘이느냐의 문제와 함께 반드시 논의 되어야 하는 것이 ‘큰 사회’라는 틀 안에서 정부, 시민사회, 시장이 어떻게 권력을 배분하고, 협력하며, 자신의 역할을 담당해나갈 것이냐는 문제다. 
다시 말해 ‘큰 사회’를 지속하기 위해서는 ‘조화로운 사회’에 대한 성찰이 반드시 수반되어야 한다. 그리고 조화로운 행정이 지속될 수 있도록 정부, 시민사회, 시장이 함께 머리를 맞대고 대화할 수 있는 상설적인 협상, 토론기구가 마련될 필요가 있다. 그렇지 않으면 결국 파트너십이라는 명목 하에 한쪽 기구, 예를 들어 시장에만 권력이 쏠리는 시장화나, 정부의 역할만 커진 비대한 정부나, 시민사회의 카오스를 면할 수 없다. 

이러한 맥락에서 사회철학자 하버마스는 ‘의사소통(communication)’만이 민주주의 사회를 성숙시키는 최고이자 최선의 길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아직까지 큰 사회 구상에는 정부, 시민사회, 시장이 어떻게 소통하면서 세부 사업을 진행해나갈 것인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은 부족해 보인다. 
물론 첫술에 배부를 수 없다. 그러나 아직 걸음마 단계인 큰 사회가 말 그대로 큰 사회를 넘어 조화로운 사회로 귀결되기 위해서는 크고 작은 몸집 크기만이 아니라 소통이 흐를 수 있는 혈관을 놓는 작업이 더 필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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