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거대한 기획, Big Society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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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 가다 /지난 시리즈

영국의 거대한 기획, Big Society (1)

by 경향 신문 2011. 2. 11.
영국 런던정경대학 사회적배제센터 박사과정에 계신 김홍수영(samarakim01@hotmail.com)님께서 유로진보넷에 올리신 글입니다. 저자의 동의를 얻어 이 곳에도 게재합니다.


1997년부터 지난 14년 간 집권했던 영국 노동당 내각이 막을 내렸다. 그리고 2010년 5월 데이비드 캐머런(David Cameron)이 이끄는 보수당이 정권을 잡았다. 

‘큰 사회(Big Society)’ 프로젝트는 노동당과 보수당이 접전을 벌이던 5월 총선부터, 이후 보수당과 자민당의 연립 내각이 출범하고현재에 이르기까지, 올 한 해 동안 영국 사회를 가장 뜨겁게 달군 보수당 정부의 새로운 정책 청사진이다. 
‘큰 사회’에 대한 세간의 관심은 과거 토니 블레어가 이끌던 노동당의 정책 지표인 ‘제 3의길’만큼이나 뜨겁다. 연일 뉴스와 신문지상을 장식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유명한 개그만이 풍자소재로 삼기도 한다. 영국만이 아니라 유럽 학계에서도 ‘큰 사회’를 주제로 연구와 논평을 내놓는것이 대세가 되었다. 정계에 몸 담은 사람이라면 큰 사회라는 말을 하루에도 한번은 하고 넘어갈 만큼 큰 사회의 사회적 파장이 문자 그대로 크다. 

아직 보수당이 집권한 지 1년이 안 되었고, 큰 사회라는 공약이 밑그림을 갖기 시작한 것은 2010년 7월 이후부터다. 따라서 정책에 대한 평가를 하기는 조금 이르다. 하지만 큰 사회 담론은 대처리즘이나 제 3의 길처럼 영국을 넘어서 세계 정책의 향방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다. 
또한 큰 사회가 시민단체를 통해 사회서비스를 제공하고 사회적 기업을 육성하는 것을 주요 목표로 삼고 있는 점에서, 민간 파트너십으로 진행되고 있고 사회적 기업을 자활사업단의 발전 모델 중 하나로 보고 있는 한국의 자활사업과 일맥상통하는 면이 많다. 따라서 영국의 ‘큰 사회’ 프로젝트에 대한 비평은 한국 사회의 사회정책을 위해서도 의미가 있을 것이다.  



2월 5일 독일 뮌헨에서 열린 국제안보회의에서 연설하고 있는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 /AP


‘큰 사회’ 프로젝트가 표방하는 핵심모토는 화이트홀(영국 관청 밀집 구역)로부터 지역사회로 권력을 대대적으로 이양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보수-자민당 내각은 

1) 시민사회단체에 공공서비스를 위탁하고
2) 협동조합, 자선단체, 사회적 기업 등 제 3섹터 시장을 육성하며
3) 지역사회 주민들이 지방 행정에 실질적인 역할을 담당할 수 있는 기회를 넓히고
4) 정부의 행정정보를 민간에게 공개한다는 정책 기조를 발표했다. 

이 청사진을 실행하기 위해서 정부는 우선 셔턴, 버크셔, 에덴밸리, 리버풀 4개 도시를 정책 시범 실시 지역인 이른바 ‘전위 지역(vanguard areas)’으로 지정했다. 또한 지난 7월 지역 공동체 운동 활동가들(community activists)과 시민단체 지도자들을 초대해 큰 사회 네트워크(Big Society Network)라는 전국 시민단체 조직을 발족시켰다. 
뿐만 아니라 시민단체 Teach First의 창시자인 냇 웨이를 큰 정부 프로젝트의 공식 정책 조언자로 내정하고, 그를 상원의회의 의원으로 임명하기까지 했다. 정부는 이러한 대대적인 프로젝트를 통해 ‘관료주의적이고, 융통성이 적은 거대한 정부(big government)가 갖는 폐단을 줄이고, 영국의 파손된 사회(broken society)를 아래로부터 개혁하여 지역 공동체가 활성화된 거대한 사회(big society)를 재건하는 것’이 영국의 새로운 국정 철학의 목표라고 밝혔다. 
사실 이와 같은 보수당 내각의 국정 철학은 뜬금없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2005년 39세의 젊은 나이로 보수당의 당수가 된 캐머런이 주도적으로 구상하고 밀고 나갔던 공약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큰 사회 프로젝트를 말할 때, 캐머런에 대한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정치적 전략가, 캐머런 총리 

캐머런 총리는 한마디로 영리한 이미지 메이커이자 전략가다. 
정치선거에서 이미지의 중요성을 이야기할 때 대표적으로 언급되는 사례는 케네디와 닉슨의 미국 대통령 선거다. 케네디에게 닉슨이 결정적으로 패배하게 된 이유는 당시 미국 선거에 도입되기 시작한 TV 토론이었기 때문이었다. 이미지 경쟁이 관건인 TV 프로그램에서 평범한 스타일인 닉슨은 수려하고 부드러운 이미지를 가진 케네디를 이기기에는 어려웠다. 
물론 선거에서는 정책내용과 유권자의 이해관계가 승리를 좌우하는 관건이다. 하지만 정치가 사람의 마음을 끌고 이끌어가는 활동이라고 할 때 후보자의 이미지도 이에 못지않게 중요하다. 같은 맥락에서 한국에서도 정치인의 이미지, 상징색깔, 로고송이 중요한 선거 전략 포인트가 되고 있다.

자신의 이미지를 만들어가는 데에 있어서 캐머런도 케네디만큼 영리하고 한편으로는 운이 좋은 정치인이다. 

운이 좋았던 것은 그의 경쟁자가 고든 브라운이었다는 점이다. 세계적인 정치 지도자였던 토니 블레어에 이어 노동당 당수가 된, 정책 브레인 출신 고든 브라운은 일선 지도자가 되기에는 다소 딱딱하고 지루하며 추진력이 없다는 낮은 평가를 받아왔다. 
반면 캐머런은 옥스퍼드 대학에서 철학, 정치학 및 경제학을 졸업한 수재라는 사실만이 아니라, 학교 클럽에서 마약을 하며 방황했던 젊은 시절이 있었다는 점이 함께 부각되면서, 능력도 있지만 원칙만 고수하지는 않는 자유분방한 지도자의 이미지를 대중에게 보여주었다. 
캐머런의 역동적이고 도발적인 모습은 오히려 보수적인 이미지인 노동당의 고든 브라운을 탐탁지 않아 했던 노동당의 일부 지지층과 젊은 층의 표를 흡수하기에 충분했다. 여기에 아내 사만다의 임신 소식은 캐머런 스스로가 말했던 것처럼 총선의 ‘비밀병기’가 되어주었다. 캐머런 부부가 어린 아들을 잃은 경험이 있기 때문에 새로운 임신 소식이 상당한 동정표를 끌어왔던 것이다.

그러나 그의 전략가적 면모는 정치적 수사에서 단연 두각을 드러냈다. 그는 "대처리즘은 아니지만 대처를 존경한다."고 말하며, 보수당의 대처 지지자들을 건드리지 않은 상태에서 대처리즘의 비판세력을 포섭하는 데 성공했다. 또한 자신을 "토니 블레어의 상속자"라고 선전하며, 블레어 이후 리더십 있는 지도자를 찾던 노동당 지지자까지 자신의 지지층으로 만들었다. 
‘큰 사회’ 담론은 캐머런 스스로 선전하듯이 ‘제 3의 길’의 보수당 버전이다. 블레어 노동당 전 총리가 사민주의의 길에 자유주의의 길을 가미한 제 3의 길을 발표하면서 진보당 내에서 보수적 색깔을 띤 것처럼, 캐머런은 보수당 총수로 집권했지만 보수당 내에서는 다소 진보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것은 이 이유 때문이다. 

하지만 사실 공공부분을 시장과 개인에게 이양하여 정부의 재정부담 줄이는 것이 목표였던 ‘대처리즘’과 중앙정부의 권력과 공공서비스를 지역사회와 공동체로 이양한다는 ‘큰 사회’는 결과적으로 같은 그림일 수도 있다. 이것이 노동당의 새 지도자 에드 밀레반(Edward Miliband)이 ‘큰 사회는 민영화를 포장한 말장난일 뿐’이라고 비난한 이유다. 
하지만 어쨌든 간에 캐머런의 정책 청사진에서는 대처를 비롯한 보수당이 공공연하게 밀고 나갔던 ‘작은 정부’라는 용어를 쉽게 찾을 수 없다. 대신 작은 정부와는 정반대의 인상을 주는 ‘큰 사회’라는 표어를 내건다. 

캐머런은 큰 사회 청사진을 발표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하기도 했다. 

"큰 사회 정책은 정부 재정을 줄이는 것이 아니라, 사회를 더 크고 멋지게 만들려는 목적을 갖는다. 그 과정에서 정부 재정이 절약되는 효과가 있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일이다." 

"국가는 작아질(smaller)지도 모른다. 그러나 국가의 목소리는 더 커질(louder) 것이다. 왜냐하면 시민사회가 국정에 참여하도록 촉진시키고 신장시키고 격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같은 말이지만 정부의 역할을 줄인다는 표현보다는 사회의 기능을 촉진한다는 말이, 문제를 축소한다는 표현보다 장점을 확대한다는 말이 훨씬 듣기 좋다. 캐머런 내각이 이러한 심리를 이용한 것은 기가 막힌 정치적 수사가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이를 노동당의 비판처럼 단순히 말장난이라고만 비하할 수는 없을 듯하다. 정책이 어떤 지향점을 표방하지는 매우 중요하기 때문이다. ‘작은 정부’가 정책의 공급자적인 측면에 초점을 맞추었다면, ‘큰 사회’는 수요자적 관점에서 정책을 설명한 것이다. 물론 진짜 의도는 정부 예산 절감에 있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기존의 시각에 반전을 시도하는 도발, 그것이 캐머런이 보수당의 10여 년간의 열세 속에서 돌파구를 만들 수 있었던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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