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버지니아주 리치몬드에서 20일(현지시간) 인종차별 철폐 지지자들이 ‘흑인 목숨은 소중하다’(BLM·Black Lives Matter) 등으로 도배된 로버트 리 장군 동상 앞에서 손팻말을 들고 있다. 로버트 리 장군은 남북전쟁 당시 남군 사령관을 지냈다. 조지 플로이드가 경찰의 체포 과정에서 사망한 이후, 미 곳곳에서 노예제를 옹호했던 인물들에 관한 기념물들이 철거 위기를 맞고 있다. EPA연합뉴스


지난달 25일 미국에서 8분46초간 경찰의 ‘무릎 목 누름’에 숨진 조지 플로이드가 세상을 바꾸고 있다. 수천~수만명이 참가하는 인종차별 철폐 시위가 지구촌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고, 흑인 탄압의 기억·기념물들을 역사에서 지우는 작업도 본격화하고 있다. 유엔은 탄압국으로서 미국을 조사하는 위원회 설치를 추진 중이다. ‘흑인 목숨은 소중하다(BLM·Black Lives Matter)’라는 구호는 이제 차별 철폐의 상징이 됐다. 


흑인 시위는 언론도 바꾸고 있다. 뉴욕타임스의 오피니언 담당 에디터는 “(흑인 시위를 막기 위해) 군대를 보내라”는 상원의원의 기고문을 실었다가 사임했다. 일부 시위대의 건물 방화 등을 지적하며 ‘건물도 중요하다(Buildings Matter, Too)’는 제목의 칼럼을 게재한 필라델피아 인콰이어러의 수석편집장 역시 자리에서 물러났다. 표현의 자유는 미국에서 필수불가결하고 우월적인 가치다. 1791년 제정한 수정헌법 1조를 통해 어떠한 법률로도 언론·출판의 자유를 제한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그런 미국에서 의견 기사로 언론인이 사임한 것은 이례적이다. 


흑인을 지칭하는 블랙(Black)을 표기할 때 첫 알파벳 ‘B’를 대문자로 바꾸는 언론이 늘고 있다고 한다. 인종 정체성을 존중한다는 의미인데, 로스앤젤레스타임스·USA투데이·NBC 등에 이어 글로벌 뉴스통신사 AP가 기사 작성 지침을 바꿨다. 100년 전 미국 흑인인권지위향상협회가 흑인의 또 다른 표현인 니그로(negro)에서 ‘n’을 대문자로 바꿔달라며 언론사에 편지쓰기 운동을 벌였는데 이제서야 미 언론계가 화답한 셈이다. 


그런데 미 언론의 반성을 남의 일로 치부할 수 없다. 국내 일부 언론은 특정 지역·사건을 폄하하는 표현을 하고, 위안부 할머니들을 폄훼하는 책 <반일종족주의> 내용을 거리낌없이 전달하고 있다. 여성 비하 표현인 ‘○○녀’ 등은 얼마 전까지 신문과 방송에서 일상처럼 접했다. 장애인과 외국인을 조롱하는 표현을 무심코 쓰고 있는 게 현실이다. 헌법 21조 제4항은 “언론·출판은 타인의 명예나 권리 또는 공중도덕이나 사회 윤리를 침해하여서는 아니 된다”고 못 박고 있다. 한국 언론 역시 차별과 혐오에서 자유로운지 되돌아봐야 할 때다.


<김종훈 논설위원>

Posted by KHro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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