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원전 480년 아버지 다리우스 1세가 마라톤 전투에서 패배한 뒤 페르시아 왕 크세르크세스는 설욕을 다짐하며 500만 대군을 이끌고 그리스로 출정했다. 헬라스인들은 힘을 합해 페르시아에 맞섰다. 스파르타 왕 레오니다스도 전사를 이끌고 아테네를 돕기 위해 건너왔다. 그는 페르시아군의 화살이 구름처럼 쏟아질 것이라는 말에 “그늘에서 싸우게 되어 좋다”면서 부하들을 고무하며 싸웠다. 그러나 300인의 결사대와 함께 테르모필레에서 몰살당했다. 풍전등화의 상황에서 아테네는 페르시아군을 살라미스 바다로 끌어들여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다.


폭풍이 지나가자 상황이 변했다. 아테네가 ‘제국의 권리’를 주장하고 나섰다. ‘첫째는 두려움이, 다음에는 체면이, 끝으로는 우리 자신의 이익이 그렇게 하도록 강요했다’고 했다. 페르시아 침공에 어깨를 맞대고, 힘을 모아 대항했던 아테네와 스파르타는 서로에게 적이 되었다. 제국이 된 아테네가, 부상하는 스파르타와 충돌하는 상황(투키디데스 함정)이 왔다.


결전의 무대는 그리스에서 수백킬로미터나 떨어진 시라쿠사(시칠리아). 시라쿠사는 스파르타인들이 이주해 사는 땅이다. 아테네는 밀 곡창인 시라쿠사가 스파르타에 넘어가면 패권에 위협받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아테네는 원정길에 나섰다. 그러나 참혹하게 패배했고 지휘관 니키아스는 생명을 구걸하다 처형됐다. 그리스의 패권은 스파르타가 차지했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지난달 28일오사카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사이에 앉아 있다. 오사카/AFP연합뉴스


스파르타의 영화도 오래가지 못했다. 아테네와 스파르타의 패권경쟁은 테베가 힘을 키우는 기회가 되었다. 스파르타는 압도적인 군사력으로 테베로 들어갔다. 레욱트라 평원에서 일전이 벌어졌다. 테베의 지휘관 에파미논다스의 전술에, 스파르타군은 종잇장처럼 날아갔다. 곧이어 테베도 그리스 북부변방에서 세력을 키우던 마케도니아의 수중에 떨어졌다. 불화와 다툼은 모두를 패자로 만들었고, 시대의 주인공 자리도 넘어갔다.


미·중이 패권경쟁을 하고 있다. 한국과 일본도 IT산업에서 유사한 상황이다. 대법원의 징용판결문제로 일본이 경제보복에 나섰다. 양국은 협조와 공생에서 갈등과 보복의 관계로 악화되고 있다. 서로가 만신창이로 끝날 싸움이라면 승리가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박종성 논설위원>

Posted by 경향 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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