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샌더스가 남긴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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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칼럼=====/오관철의 특파원 칼럼

[여적]샌더스가 남긴 것

by 경향 신문 2016. 6. 16.

미국에서 사회주의자들의 활동이 가장 활발했던 시기는 1910년대였다. 하지만 반짝했을 뿐 역사적으로 사회주의가 미국에서 견실하게 뿌리내린 적은 없었다. 아마도 서구의 발달된 산업국가 중 사회주의가 주요 정당의 강령으로 자리 잡지 못한 유일한 나라가 미국일 것이다. 이런 점에서 ‘민주적 사회주의자’를 자처하는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이 지난해 4월 민주당 대선 후보 경쟁에 뛰어들었을 때 힐러리 클린턴은 누가 봐도 벅찬 상대였다. 미국 북동부의 작은 주 버몬트를 정치무대로 삼아 평생 비주류의 길을 걸어온 샌더스는 모든 이의 예상을 뒤엎고 22개주 경선에서 클린턴을 이겼다. 그의 지지가 없다면 클린턴은 본선에서 도널드 트럼프를 이길 수 없을지 모른다.

14일 워싱턴DC 프라이머리가 마무리되며 135일간 펼쳐진 클린턴과의 경선레이스가 끝났다. 샌더스는 패배했으나 미국 사회에 던진 경제정의의 화두는 그 울림이 크다. 현대 자본주의 본산인 미국에서 그는 평생 빈곤과 불평등 해소를 화두로 붙잡고 살아왔다. 그에게 “젊어서 마르크스에 빠지지 않으면 바보고, 나이가 들어서도 마르크스주의자로 남아 있으면 더 바보다”라는 말은 해당되지 않았다. 샌더스는 부자 증세, 대학등록금 무상화, 보편적 복지 등 북유럽 모델을 미국에 적용하겠다는 공약을 통해 1980년대 이후 불어닥친 신자유주의 시대가 미국에서 종말을 고하고 있음을 입증했다. 미국인들은 그를 통해 미국의 불평등을 부끄러워했다. 기득권 벽에 막힌 샌더스가 대통령 자리에는 오르지 못하나 그의 꿈은 ‘샌더스 키즈’가 이어받을 것이다.


샌더스 선거유세_샌더스 SNS


20 대 80의 사회를 넘어 1 대 99의 사회로 흘러가는 게 비단 미국만의 문제는 아니다. 이를 막을 수 있다는 그의 용기와 비전은 세계적으로 강한 인상을 남겼다. 특히 선거가 끝나면 공약을 쉽게 내팽개치는 한국의 정치인들은 샌더스의 일관된 소신이 주는 신뢰감과 진정성을 교훈으로 삼아야 한다. 지난 1년여 동안 미국에서 가장 뜨거운 노인이었던 샌더스는 결과와 상관없이 이미 역사에 큰 획을 그었다. 만약 그가 현실 정치에서 물러난다면 그를 우리 편이라고 여겼던 한국의 많은 시민들도 아쉬워하게 될 것이다.



오관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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