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2일 벌어진 주스페인 북한대사관 습격사건은 한 편의 첩보영화를 연상케 한다. 멕시코와 미국, 한국 등 다국적자 10명으로 구성된 무리가 마드리드 외곽 한적한 곳에 있는 북한대사관을 향해 차를 몬다. 몇 달 전 사업가로 가장해 북한대사관 경제참사와 안면을 튼 주범이 대사관 경비의 주의를 끄는 사이 나머지 범인들은 안으로 침투한다. 그리고 대사관 직원들을 제압, 눈을 가린 뒤 지하실로 끌고가 심문한다. 그사이 스페인 경찰이 초인종을 누르자 주범은 김정은 국무위원장 배지를 단 옷을 입고 나가 “별일 없다”며 돌려보낸다. 컴퓨터를 다 뒤진 범인들은 4개조로 나뉘어 정문과 후문으로 빠져나간 뒤 리스본을 거쳐 미국으로 향하는 비행기에 오른다. 


하지만 이번 습격사건은 여느 테러와 다르다. 우선 범인들이 마드리드에서 구입했다는 주 무기가 모의권총과 마체테(정글칼), 수갑 등이다. 진짜 총기는 없다. 또 테러범들은 창문으로 탈출하는 대사관 여직원을 막지 못했다. 범행을 주도한 반북단체 ‘자유조선’이 “우리는 습격한 게 아니라 초대받았고, 대사관 내 긴급상황에 대처했을 뿐”이라고 한 것과 연관이 있을 수도 있다. 대사관의 경비가 강하지 않다는 점을 사전에 파악한 뒤 일부러 저강도로 테러를 했을 가능성이 있다. 


범인들 구성과 범행 이후 대응도 석연찮다. 주범 아드리안 홍 창과 한국 국적자 ‘람 리’, 미국 국적자 ‘샘 류’ 등 한국계로 보이는 면면이 프로 공작원과는 어울리지 않는다. 주범은 미국에서 공개적으로 반북활동을 했다고 한다. 자유조선은 “미 연방수사국(FBI)과 비밀유지에 합의하고 잠재적 가치가 막대한 특정 정보를 공유했다”며 미국을 끌어들였다. 그러나 미 국무부 대변인은 “미국과 무관하다”고 선을 그었다.


북한도 일절 반응이 없다. 말레이시아에서 독살당한 김정남의 아들 김한솔을 탈출시킨 반북단체 천리마민방위가 자유조선으로 이름을 바꿔 단 뒤 벌인 첫 공작에 대한 의도적인 무시일까. 하노이 협상이 깨진 후 협상 모멘텀을 유지하기 위해 일을 크게 만들지 않으려고 할 수도 있다. 관건은 자유조선이다. 존재감을 과시하고 북·미 협상을 막기 위해 가만히 있을 것 같지 않다.


<이중근 논설위원>

Posted by KHro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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