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매케인의 승복 연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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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 국제칼럼

[여적]매케인의 승복 연설

by 경향 신문 2020. 11. 10.

 

2018년 공화당 대선후보로 나선 존 매케인. 경향신문 자료사진

2008년 11월4일 밤(현지시간) 미국 공화당 대선 후보인 존 매케인 상원의원이 카메라 앞에 섰다. 그는 “친구들, 긴 여행이 끝났다”며 착잡한 표정으로 대선 승복 연설을 시작했다. “미국인의 뜻은 확고했다. 조금 전 버락 오바마 당선자에게 전화를 걸어 우리 둘 다 사랑하는 이 나라의 차기 대통령으로 선출된 것을 축하했다.” 그는 두 손을 들어 야유하는 지지자들을 진정시키며 말을 이어갔다. “오바마를 축하해줄 뿐 아니라 그가 필요한 화합을 찾을 수 있도록, 우리의 아들딸과 손자손녀들에게 우리가 물려받은 나라보다 더 나은 나라를 물려줄 수 있도록 (오바마에게) 우리의 선의와 노력을 보내자.” 선거운동 기간 내내 오바마의 경험부족을 비판한 그였지만 이날엔 시종일관 승자를 치켜세웠고 지지자들에게 화합을 강조했다. “오늘밤 여러분이 실망하는 건 당연하다. 하지만 내일은 그걸 넘어서야 한다.” 지지자들은 조금씩 연설에 몰입했고, 이윽고 박수와 환호가 터져나왔다.

 

매케인 전 상원의원의 이 연설은 품격 있는 승복 연설의 모범 사례로 꼽힌다. 10분의 짧은 연설에서 그는 선거전의 상처를 치유하고 미래를 위한 통합을 주문하는 데 집중했다. 미국 대선 패자의 승복은 대개 두 단계로 이뤄진다. 승자에게 축하 전화를 하고 이어서 지지자들을 향해 연설을 하는 게 관례다. 2016년 민주당 힐러리 클린턴 후보도 대선 이튿날 도널드 트럼프 당선자에게 미국을 이끌 기회를 주자고 연설했다. 2000년 민주당 앨 고어 후보도 재검표 문제로 법정공방을 벌였지만 36일 만에 결국 승복 연설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민주당 조 바이든 후보의 승리 선언 이후에도 패배를 인정하지 않으면서 매케인 전 상원의원의 승복 연설이 재조명되고 있다. 연설 영상은 대선 직후부터 SNS에 빠르게 공유되기 시작해 벌써 1500만회가 넘는 조회수를 기록했다. “미국이 저럴 때도 있었는데…”라며 트럼프 시대 미국의 현실에 한숨 쉬는 이들이 적지 않다. 미국 사회의 상처를 키우고 갈등과 분열을 자극하는 게 트럼프 대통령의 집권 전략이고 국정 기조였다. 대선 불복도 지지층 유지를 위해 계산된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트럼프에게 아름다운 승복, 우아한 퇴장을 기대한 것 자체가 무리일지 모른다.


박영환 논설위원

 

 

오피니언 여적 -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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