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동상의 수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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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 국제칼럼

[여적]동상의 수난

by 경향 신문 2020. 6. 16.

10일(현지시간) 미국 미네소타 주 세인트폴에서 인종차별에 항의하는 시위대가 끌어 내린 크리스토퍼 콜럼버스 동상 주변을 주 경찰관들이 둘러싸 지키고 있다. AP 연합뉴스


동상은 ‘구리(銅)로 만든 조각상’이다. 그리스 신상이나 불상도 조형의 재료가 구리라면 모두 동상이다. 하지만 철이나 돌, 석고로 만든 인물조각상 역시 동상의 범주에 포함시키기도 한다. 동상은 흔히 재질에 상관없이 인물을 빚어낸 조형물을 가리킨다. 중국 간신 진회의 동상이나 전두환의 감옥 동상처럼 악인을 징치하기 위해 만든 동상이 있기는 하다. 그러나 대부분의 동상은 인물을 기리고 기억하기 위해 세운다. 주인공은 거개가 군주, 장군, 선각자와 같은 영웅이다. 그렇다고 영웅이 모두 동상의 대상이 되지는 않는다. 건립 당시의 정치·사회적 이데올로기를 담아내야 한다. 미술평론가 맬컴 마일스의 말을 빌리면, 동상은 “과거 권력자의 담론이 아니라 그것을 활용하고 있는 현재 권력자의 담론”이다. 


동상 건립은 국민의 통합과 일체화의 수단으로 활용되곤 한다. 근대 국민국가 형성기에 동상 건립이 집중된 사실은 이를 방증한다. 서양에서는 20세기를 전후해 동상이 대대적으로 만들어졌다. 일본에서는 1910년대에 동상 건립 붐이 일었다. 1960~70년대 박정희 정권은 국민통합을 내세우며 동상건립운동을 전개했다. 이순신, 세종대왕, 이황, 정약용 등의 동상이 이때 건립됐다. 흔히 동상을 ‘불멸의 신체’라고 한다. 그러나 합의 없이 건립된 동상은 오래가지 못한다. 남산에 세운 이승만 동상은 4·19와 함께 종말을 고했다. 수많은 스탈린 동상은 그의 사후 짓밟혔다. 필리핀의 마르코스 동상, 사담 후세인 동상 역시 같은 운명을 겪었다. 


미국인 조지 플로이드 사망으로 인종차별 반대 시위가 전 세계로 번지면서 서양인의 동상이 수난을 당하고 있다. 미국 보스턴의 크리스토퍼 콜럼버스 동상은 시위대에 의해 끌어내려졌다. 영국 브리스틀에 있던 17세기 노예상인 에드워드 콜스턴의 동상은 바다에 던져졌다. 런던의 윈스턴 처칠 동상은 낙서로 훼손됐다. 서양 영웅으로 추앙받던 이들이 원주민 학살, 인종차별의 장본인으로 격하되면서 벌어진 일들이다. 동상 훼손과 함께 역사 왜곡 논란도 거세다. 그러나 ‘권력자의 기록’이 역사의 전부는 아니다. ‘모든 역사는 현대사’라는 말처럼 역사는 새롭게 쓸 수 있다. 동상 역시 ‘불멸의 신체’일 수는 없다.


<조운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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