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의 내일을 가다/ (9) 세계와 접속하는 대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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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 가다 /경향신문 지나간 기획

아프리카의 내일을 가다/ (9) 세계와 접속하는 대륙

by 경향 신문 2010. 5. 25.

나이지리아의 ‘경제수도’ 라고스는 살아있었다. 지난달 초 바닷가 마리나 로드에서 바라본 아파파 항구. 거대한 선박들이 잠시 휴식을 취하는 사이 항구를 에워싼 거대한 석유탱크엔 프랑스 석유회사 토탈(TOTAL)의 이름이 눈에 띄었다. 나이지리아에서 가장 큰 회사 중 하나인 하니웰 제분공장의 밀가루 사일로들도 보였다. 울타리 너머로 어마어마한 양의 컨테이너들이 쌓여 있고, 입구에는 컨테이너 차량과 레미콘과 탱크로리들이 줄을 이어 정체가 극심했다.
서아프리카의 경제 동맥이자,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더반과 함께 아프리카 최대 물동량을 자랑하는 아파파의 모습이었다. 짐을 내린 뒤 대기하고 있는 컨테이너 차량들 밑에선 하역노동자들이 차체를 그늘삼아 쉬고 있었다. 또 다른 항구인 틴캔 아일랜드로 이어지는 길에는 세븐업 음료공장과 설탕 정제공장 등이 보였다.




라고스의 아파파 항구



흙바닥 ‘컴퓨터 빌리지’

아파파에서 조금 떨어진 이케자 지역. 허름한 건물들 사이로 ‘인터넷 카페’ 간판이 보였다. 젊은이들에게 컴퓨터와 휴대전화는 최대 인기 품목이다. 이케자 안쪽에는 ‘오군비이 커뮤니티’라는 시장이 있다. 라고스 사람들이 ‘컴퓨터 빌리지’라 부르는 이 곳은 일종의 전자상가다. 포장도 되지 않은 흙길엔 자갈과 쓰레기가 한데 뒹굴고, 휴대전화 액세서리와 컴퓨터 부품 따위를 파는 노점상들과 구경 나온 시민들이 북적였다. 길 양옆 상가들은 전자제품 광고로 뒤덮여 있었다. 512mb 중고컴퓨터와 삼성·LG·파나소닉 모니터들이 흙먼지를 뒤집어쓴 채 손님을 기다렸다.
제법 그럴싸한 외양을 갖춘 휴대전화 상점에 들어갔다. 삼성이나 LG 휴대전화는 3000나이라(2만4000원)에서부터 5만3000나이라(42만4000원)까지 가격대가 다양했다. 노키아가 워낙 저가공세를 펼치는 탓에, 컴퓨터와 달리 휴대전화는 중고물품이 거의 유통되지 않는다고 한다. 에어컨을 틀어놓은 가게 안은 발디딜 틈이 없었다. 거리에는 구글 SMS 서비스가 시작된다는 광고판이 늘어서있었다.

남아공과 나이지리아 등 아프리카 몇몇 나라들은 경제력이나 자원을 바탕으로 국제무대에서 위상을 키우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자원 요소가 지배적이다보니 원자재 가격이 곧 이들 나라의 경제를 결정한다. 지난해 아프리카 국가들의 경제성장률은 일제히 떨어졌다. 글로벌 금융위기로 서방이 지갑을 닫은 탓이 컸다. 남아공의 경우 월드컵 특수를 홍보하고 있었음에도 성장률이 -1.9%를 기록했다. 그래서 아프리카 국가들에게는 ‘채굴 경제’, ‘플랜테이션 경제’를 벗어나는 것이 지상과제다.





라고스의 '컴퓨터빌리지'. 나이지리아 라고스의 '컴퓨터 빌리지'. 흙바닥 먼지속에서 노점상들이 컴퓨터와 휴대전화를 팔고 있다. 나이지리아는 휴대전화 가입자가 6299만명에 이르는 거대 IT시장이다. 라고스/구정은 기자


르완다는 정부가 주도하는 ‘비전 2020’ 프로그램을 통해 정보화 실험을 하고 있다. 인구 90%가 농민이지만 휴대전화 사용자 비율은 해마다 배로 늘어 2008년 현재 14%로까지 높아졌다. 남아공 통신회사인 MTN 직원들은 유니폼을 갖춰입고 수도 키갈리 곳곳에서 선불제 휴대전화카드를 판다.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궁벽한 농촌의 구멍가게에도 MTN 로고는 붙어있다. ‘르완다에서는 MTN이 왕’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무선인터넷망도 속속 깔리고 있다. 국제입찰을 통해 사업자로 선정된 KT도 그곳에서 와이브로망을 구축하고 있다. 현지 정부 관계자는 “내륙의 소국인 르완다가 세계와 연결되려면 정보통신기술(IT) 발전이 필수”라고 말했다.
아프리카 빈국들은 기존 유선통신망이 없기 때문에 곧바로 무선으로 ‘점프’하는 경우가 많다. 서아프리카의 코트디부아르도 그런 곳이다. 간선도로를 벗어나면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시골마을이지만 휴대전화만 있으면 언제든 무선통신망에 접속할 수 있다. 아비장 근교의 허접한 버스정류장 곳곳에는 어김없이 나무 탁자로 된 전화카드 가판대가 있다.


르완다 수도 키갈리 도심의 컴퓨터 관련용품 상점 ‘IT 센터’의 모습.
르완다인들의 구매력이 낮아 값싼 중국산이 대부분이다. 키갈리 | 이청솔 기자



코트디부아르 아비장 곳곳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는 휴대전화 카드판매소.
통신요금이 비싸고 신용거래가 없기 때문에 대부분 선불카드를 사서 입력해 사용한다. 아비장/구정은 기자



코트디부아르 아비장국립대학 학생들이 프랑스 지원으로 설립된 인터넷센터에서 컴퓨터 실습을 하고 있다. 아비장/구정은 기자



문제는 경제력이 IT 발전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코트디부아르는 통신요금이 워낙 비싸, 휴대전화를 들고다니면서 받기만 하는 사람들이 많다. 르완다의 휴대전화 요금은 분당 150~200원, 인터넷 이용요금은 월 4만~8만원이다. 나이지리아의 휴대전화 요금은 분당 800원선. 서비스 공급자들은 인프라 투자비를 회수하기 위해 비싼 요금을 매긴다. 아직은 시장이 작아 가격이 내려가지 않는다.
‘신용 경제’가 없다보니 무조건 선불제다. 그래도 휴대전화는 많이 퍼졌으나, 컴퓨터를 살 수 있을 정도로 일반인들의 소득이 늘어나려면 좀더 시간이 걸릴 것이다. 키갈리에서 ‘IT 센터’라는 컴퓨터가게를 운영하는 중국인 레이(36)는 “조금씩 판매가 늘고는 있지만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려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이제는 원유도 가공해서 판다

코트디부아르 아비장 동쪽의 그랑바삼. 흙길 5㎞를 자동차로 달려가면 주변 시골풍경과 어울리지 않는 현대적인 시설이 나온다. 정부가 지은 IT 벤처육성단지 ‘비팁(VITIP)’이다. 원래 국영정유회사 SIR 것이던 땅을 정부가 넘겨받아 2008년 비팁을 지었다. 지금은 60헥타르 면적에 건물 몇 동이 전부이지만 근처에 680헥타르의 대규모 단지를 짓고 있다. 지금까지 100억세파(250억원) 이상이 투자됐다.
출범 당시 20개 회사가 협력 협약을 맺었고 그 중 15개가 입주를 끝냈다. 세네갈·프랑스 합작기업도 있고, 당국이 남아공 기업과 자국 기업과의 파트너십 협정을 중개해준 경우도 있다. 아직 15개 기업 고용인원은 모두 100명에 불과하지만 올해 말까지는 IT 분야와 생명공학(BT) 분야 기업 40개로 늘릴 예정이다. 비팁 매니저 클로드 데니는 “아직 기술수준이 낮고 벤처 마인드가 부족한 것이 문제”라면서 “지금 들어와 있는 회사들은 컴퓨터 부품을 수입해 조립한 뒤 주변 가나나 베냉 등으로 재수출하는 수준이지만 발전성은 크다”고 말했다.



코트디부아르 그랑바삼의 '비팁(VITIP)' 정보기술산업단지. 그랑바삼/구정은 기자


에너지 분야에서도 1차 산품 수출을 넘어 부가가치를 높이려는 노력이 진행되고 있다. 세계 10위권의 석유수출국인 나이지리아는 원유를 정제·가공·유통시킬 능력이 없어 다국적 에너지기업들에 유전을 내줬다. 석유매장량이 362억배럴이나 되는데 국내에선 정제유가 모자라 기름값 폭동이 일어난다. 반면 코트디부아르는 원유 매장량이 1억배럴에 불과하지만 ‘똑똑한 수출’을 시도하고 있다. 해안 유전에서 퍼올린 질 좋은 석유는 비싸게 팔고, 나이지리아와 앙골라에서 파라핀이 많이 들어있는 질 낮은 원유를 사들인다. 이를 정제해 국내에서 쓰거나 다시 외국으로 판다. 제3세계 산유국 중에선 드물게 업스트림(탐사·시추·채굴)을 넘어 다운스트림(석유의 정제·가공·유통 부문)에 손대고 있는 것이다. 아비장 해안가에는 미래의 원동력이 될 정유소들이 들어서 있다.
박윤준 주 코트디부아르 대사는 “나이지리아는 정유소들이 낡고 고장나 가동율이 27%에 불과하지만 코트디부아르의 정유소 가동율은 90% 이상”이라고 귀띔했다. 석유 수출은 이 나라 최대 수출품목이던 카카오 수출액을 2006년 추월했다. 근래 카카오와 커피, 팜오일(야자유) 등 플랜테이션 작물 가격도 올라가는 추세다. 코트디부아르는 농산물을 거둬들인 그대로 수출하는 것이 아니라 가공해 부가가치를 높이는 방안을 찾고 있다.

라고스·키갈리·그랑바삼|구정은·이청솔 기자 ttalgi21@kyunghyang.com



문제는 인프라


아프리카 어느 나라이건, 수도 혹은 최대도시를 벗어나면 전기도 수도도 없는 시골이다. 사정이 나은 축이라는 코트디부아르는 독립 뒤 1960~70년대 농산물 호황에 힘입어 ‘서아프리카의 기적’이라 불리는 경제발전을 보여줬다. 장기집권을 했던 펠릭스 우푸에-부아니 초대 대통령은 수도를 아비장에서 자기 고향인 야마수쿠로로 옮기고 내륙지역까지 수도·전력공급망을 깔았다.
하지만 이 나라의 인프라는 아직도 그 선에 멈춰서 있다. 지난달 아비장에서 만난 현지 사람들은 “2002년 내전 때에도 전기와 수도는 끊어지지 않았다”고 자랑하지만 유지·보수는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 한국 교민들은 “겉으로 드러나 보이는 포장도로들과 고층건물들은 대개 30~40년 전 만들어진 것”이라고 말했다. 아비장 도심 상업·행정지구인 플라토의 고층건물들은 멀리서 보면 근사한 스카이라인을 자랑하지만 가까이 갈수록 흉물스런 외관을 드러낸다.





내륙의 교역중심지 부아케는 북부의 부르키나파소와 니제르로 이어지는 교통의 요지다. 19세기 말 프랑스가 노예시장을 세웠던 곳이고, 한때는 아비장과 니제르를 잇는 철도교역 중심지였다. 지금은 화물철도만 운행하며 노예 대신 목화와 커피, 카카오, 사이잘(선인장의 일종), 담배, 얌, 야자같은 농산물을 실어나른다. 부르키나파소와 아비장을 잇는 고속도로 위로는 어마어마한 양의 화물을 실은 트럭들이 위태롭게 달렸다. 아프리카의 침식성 토양 때문에 아스팔트 여기저기에 움푹한 구멍이 나있지만 보수가 되지 않아 차들이 널을 뛴다.
내전 때 반군의 거점도시였고 지금도 정부의 통치력이 제대로 미치지 않는 부아케에 이르자 총 든 반군이 고속버스에 올라타고 ‘통행료’를 뜯었다. 차창 밖에선 반군 병사와 정부군 병사 간에 싸움이 났다. 충돌이라도 일어날까 걱정한 사람들이 달려들어 두 병사에게서 총을 빼앗았다. 유엔 평화유지군 차량이 혼잡을 뚫고 지나갔다. 이 나라에서 반군이 ‘통행료’로 거둬들이는 돈이 연간 3억달러(약 3500억원) 규모라고 한다.
반지오 다고베르 경제인프라부 장관을 만나 인프라 투자 계획을 묻자 그는 “돈이 모자란다”는 말부터 꺼냈다. 이 나라 올해 예산은 4447억세파(1조1117억원). 그중 인프라 투자비용으로 943억 세파를 잡아놨다. 예산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작지않지만 예산 규모 자체가 작다. 다고베르 장관은 “아비장의 수도물 공급에만 앞으로 몇년 동안 3000억 세파가 필요할 것으로 보고 있는데, 예산이 너무 적다”고 말했다. 최대도시 아비장 인구 500만명 중 3분의 1은 수돗물을 공급받지 못하고 있다. 내륙으로 들어가면 상수도를 쓰지 못하는 사람이 3분의2다. 포장도로의 88%는 노후 도로여서 재정비에 매년 4000억 세파가 필요하다. 돈은 역시 없다. 정부는 2대 항구인 아비장 항구와 산페드로 항구의 보수공사에 민간 자본을 유치하려 애쓰고 있다. 다고베르 장관은 “재정을 충당하려면 공항을 비롯한 자산들을 민영화하는 수밖에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이미 아비장 공항은 민간에 팔았다.
나이지리아는 인프라 부족이 특히 심하다. 가장 큰 문제는 전력난이다. 연간 1만2000㎽ 이상의 전기가 필요한데, 지금은 발전소를 모두 돌려도 6000㎽ 밖에 못 만든다. 그나마도 설비가 낡아 실제 가동량은 2500~3000㎽에 머물고 있다. 필요한 전기의 4분의1만 공급되고 있는 것이다. 교민 조홍선씨는 “하루에 6시간만 전기가 들어온다고 보면 된다”면서 “라고스 도심 빅토리아 아일랜드에 전기가 좀 들어온다 싶으면 그 옆 이코이에는 하루 2~3시간 밖에 안 들어간다”고 말했다. 정수시설이 모자라 물도 제한급수를 하고 있다. 그나마 내륙은 전력망이 안 깔렸거나 끊어져 나이지리아 전체 인구의 40%만이 전기를 쓸 수 있다.
조씨가 전하는 에피소드가 있다. 라고스 주(州) 정부가 지난해 거리미화를 위해서라며 영국에서 쓰레기통을 20만개 수입했다. 쓰레기통 정도는 라고스에서 충분히 만들 수 있지만, 전력 공급이 모자라고 전기요금이 비싸다보니 차라리 수입하는 것이 더 쌌기 때문이다. 나이지리아는 산유국이지만 국영석유회사 NNPC와 셸, 엑손모빌 등 외국기업 합작회사들을 통해 모두 수출하고 정제유를 수입한다. 그래서 기름이 비싸고 전기는 모자란다. 수시로 기름값 인상에 항의하는 폭동이 일어나기도 한다.
운전기사 수라주는 라고스 시내를 돌다가도 기름은 꼭 같은 주유소에서만 넣는다. “여기가 NNPC 주유소라서 기름 질이 좋다. 다른 곳에서 넣었다가 낭패를 본 적이 많다.” 주유소의 주유기 중에서도 하나만 제대로 작동한다. 줄줄 새는 주유기 앞에 잘못 줄을 섰다간 돈 내고 땅바닥에 기름을 다 버릴 수 있다. 이것이 ‘세계 10위 석유수출국’의 현실이었다. 코트라 라고스 비즈니스센터의 곽희윤 센터장은 “이곳 사람들도 사업감각이 늘고 있고 경제붐이 일고 있으나, 에너지가 늘 문제”라고 지적했다. 곽 센터장은 “정부가 45개 ‘완제품 생산금지품목’을 정해 자국 산업을 키우려 하고 있지만 인프라와 전력난 때문에 역부족인 것 같다”고 아쉬워했다. 


부아케·아비장·라고스|구정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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