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의 내일을 가다/ (6) 검은 대륙을 떠도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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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 가다 /경향신문 지나간 기획

아프리카의 내일을 가다/ (6) 검은 대륙을 떠도는 사람들

by 경향 신문 2010. 5. 17.
“여기서도 나가라 하면 또 어디로 가야 하나 고민입니다. 별 수 없이 고향으로 돌아가야 하는 것 아닌가 고민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지난달 22일 남아프리카공화국 남부 해안도시 케이프타운에서 자동차로 2시간 거리인 농촌 마을 드두어런스에서 만난 짐바브웨 출신의 이민자 머시는 앞날을 생각하면 걱정이 앞선다고 했다. 머시가 머물고 있는 곳은 유엔난민기구(UNHCR)에서 제공한 텐트가 모여있는 난민촌. 그는 얼마전까지만 해도 그곳에서 자동차로 10분 거리인 흑인거주지구 슬럼에 살았다. 열악한 환경이기는 해도 ‘집’이 있었고 남아공 주류 부족 중 하나인 코사족 이웃들도 있었다.
 


 

짐바브웨 출신 이민자들이 작년 11월 남아공 주류 부족 코사족에게 밀려나기 전까지 살았던
드두어런스의 슬럼. 이들이 살던 집에는 현재 코사족이 들어와 거주하고 있다. 드두어런스 | 이청솔 기자


슬럼에서 난민촌으로… 밀려나는 이민자들
 
코사족이 머시의 집을 부수고 집기를 빼앗아간 것은 지난해 11월. 이민자들이 일자리를 빼앗아간다는 이유에서였다. 포도농장을 운영하는 백인 농장주들이 ‘일을 잘하고 똑똑하다’는 이유로 짐바브웨 출신자들을 많이 고용했던 것이 화근이었다. 저임금 이민자들에게 일자리를 내준 코사족은 폭력으로 되갚았다.
머시를 비롯한 이민자 1000여명은 맨몸으로 내몰렸다. 머시는 “이번달말이면 유엔이 제공해준 텐트도 철거된다고 한다”며 어디로 갈지 고민이라고 했다. 짐바브웨는 여전히 엉터리 경제정책으로 살인적 인플레이션을 불러온 로버트 무가베 대통령의 철권통치 아래 있다. 무가베는 무리한 토지개혁으로 식량부족을 불렀다. 짐바브웨의 물가상승률은 2008년 2억3100만%를 기록했다.
 
대륙 곳곳을 떠도는 이주민 문제는 아프리카가 풀어야 할 숙제다. 유엔은 합법적 이민자와 난민 2200만명이 아프리카 대륙을 떠도는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불법이민자까지 합하면 그 수는 훨씬 늘어난다. 특히 가장 앞선 경제력을 가진 남아공은 인근 짐바브웨, 레소토, 모잠비크 뿐 아니라 멀리 콩고민주공화국, 가나, 나이지리아 등에서 몰려온 이주자들까지 더해져 골머리를 앓고 있다. 짐바브웨 출신 약 300만명을 포함해 불법 이주자만 대략 500만명으로 추산된다.
 
월드컵을 앞둔 남아공 정부가 일자리를 빼앗긴 서민들의 분노를 이용해 이주 노동자들을 몰아내고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지난 3월 요하네스버그 제2 축구경기장인 엘리스파크 경기장 부근 빈민가에서는 이민자들이 ‘붉은 개미’라 불리는 철거용역반의 폭력에 쫓겨났다. 이민자들이 얼기설기 지은 집들은 무너진 벽돌더미로 변했다.
붉은 개미는 정부 용역으로 궂은 일을 하는 사람들인데, 빨간 제복과 모자를 착용하고 있어 붙은 이름이다. 대부분 외국인 노동자들을 적대시하는 서민층으로 이뤄져 있다. 인권단체들은 “과거 백인정권이 가난한 백인들을 부추겨 흑인들에 대한 증오심을 키웠듯 흑인정권은 일자리 없는 서민들을 부추겨 외국인 노동자들을 미워하게 만들고 있다”고 비판한다.
 
나이지리아 라고스를 에워싼 거대한 슬럼의 주민들 중에도 인근 베냉, 토고, 니제르 등지에서 온 이주자들이 많다. 아프리카 내의 이주에는 ‘일자리’라는 경제적 이유 외에 정치적 동기도 중요하게 작용한다. 무가베가 철권통치를 일삼는 짐바브웨나 1990년대 후반 이후 내전이 끊이지 않고 있는 콩고민주공화국(DRC)은 이민자를 쏟아내는 대표적인 나라들이다. 여기에 서구 열강들의 일방적 국경 획정도 많은 사람들이 국경을 넘어 떠돌게 하는 이유다.



유엔난민기구(UNHCR)가 남아공 드두어런스 내 슬럼에서 쫓겨난 짐바브웨 출신 이민자들을 위해
부근에 천막으로 마련해준 난민촌의 모습. 드두어런스 | 이청솔 기자


 
곳곳에 ‘송금은행’
 
2002년 발발한 코트디부아르 내 남북 분쟁에는 50년전 독립 과정에서 벌어진 ‘국경선 그리기’의 실책과 북부 사하라 지방의 사막화 문제 등 복잡한 배경이 숨어 있다.

사하라 남부 사헬(건조지대) 지역에 위치한 부르키나파소와 대서양에 접해 있는 코트디부아르는 민족적·문화적·경제적으로 한 묶음이 되었어야 했지만 50년 전 국경선이 그어지면서 두 나라로 갈렸다. 코트디부아르는 열대우림과 바다, 농장과 항구를 모두 가졌지만 내륙국가인 부르키나파소는 독자적 생존이 힘든 조건이다. 게다가 부르키나파소와 말리 등은 점점 확장되어가는 사하라 사막의 남진(南進) 때문에 고통 받고 있다.
부르키나파소 사람들은 독립 이래로 꾸준히 남부의 코트디부아르로 내려왔고, 이제는 부르키나파소인 300만명과 말리인 100만명을 비롯해 600만명이나 되는 외지인들이 코트디부아르에 살고 있다. 이들 ‘국민 아닌 국민’은 자신들을 국민으로 인정해 선거권을 달라고 주장하는 반면에 정부는 거부하고 있다. 이로 인해 싸움이 일어났고, 남북간 휴전협정이 체결된 뒤에도 갈등이 해결되지 않아 대선이 계속 미뤄지고 있다.
부르키나파소는 물류를 코트디부아르에 의지할 뿐 아니라, 코트디부아르에 나가 있는 노동자들이 보내오는 송금에 경제의 상당부분을 의존하고 있다. 부르키나파소로 올라가는 코트디부아르 내륙도시 부아케에서는 미국 송금회사 웨스턴유니온 간판을 곳곳에서 볼 수 있다.





 

서아프리카에서 비교적 안정된 가나에는 90년대 혹독한 내전을 겪은 라이베리아에서 온 난민들이 수만명씩 거주한다. 이들은 전쟁 난민으로 가나에 들어왔지만, 내전이 끝나고 몇년이 지나도록 본국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유엔난민기구(UNHCR)는 이들을 정치적 난민으로 규정하고 난민촌을 지원해주었지만 라이베리아에 2005년 엘런 존슨-설리프 대통령의 민주정부가 들어선 뒤로는 지원을 끊고 송환작업을 하고 있다. 한때 10만명이 넘었던 난민 수는 지금은 3만5000명 수준으로 줄어들었으나, 이들은 끝내 귀환을 거부하고 있다. 이유는 단순하다. 라이베리아에는 일자리가 없지만 가나에서는 허드렛일을 하거나 국제기구의 원조라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정치적 난민과 일자리 때문에 고향을 벗어난 경제적 이주민을 가르기는 쉽지 않다. 가나에서 돌아가지 않고 있는 토고 출신 난민 8500여명도 이름만 난민일 뿐, 실제로는 이주노동자나 다름없다. 이 때문에 국제이주기구(IOM) 등은 ‘귀환시켜야 할 난민’으로 규정하는 대신 이들을 이주노동자로 보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동아프리카 중심국가인 케냐도 난민 반 이주민 반 성격을 띤 외지인들 문제를 안고 있다. 소말리아인 17만3000명과 수단인 7만3000명, 에티오피아인 1만6000명이 국경지대와 나이로비 주변 슬럼가에 살고 있다. 이들도 출발점은 분쟁과 살육을 피해 도망친 난민들이었으나, 지금은 경제적 동인이 가장 큰 것으로 추정된다.
 
내부 유민(IDP)들도 넘쳐난다. 케냐는 비교적 안정된 나라임에도 불구하고, 2007년 대선 선거부정 시비로 폭동이 일어난 뒤 25만~40만명에 이르는 이들이 집을 떠나 국내를 떠도는 유민이 됐다. 콩고민주공화국에는 앙골라에서 넘어온 13만3000명과 르완다인 3만7000명 등이 떠돌고 있다. 내전이 끝난 뒤 몇년이 지나도록 고향에 돌아가지 못한 유민은 140만명에 이른다. 


드두어런스·부아케·라고스 | 이청솔·구정은 기자 taiyang@kyunghyang.com



“정치인들 민생고 화살 이주민에 돌려”


지난달 14일 남아프리카공화국 요하네스버그 옛 도심에 자리잡은 난민사회협의체(CBRC)를 찾았다. 이 협의체는 주로 요하네스버그 부근에 거주하는 난민과 이민자들을 돕는 비정부기구다. 요하네스버그 옛 도심은 1994년 백인정권 붕괴 이후 사실상 슬럼으로 전락했다. 시내에 거주하는 주민들은 “이주민들이 도심을 ‘점령’했기 때문”이라며 외부인들 탓으로 돌리고 있다.

난민은 인종·종교·민족·정치적 입장 등의 차이로 인해 국외에 거주하며 출신 국가로 돌아갈 수 없다고 인정을 받은 이들이다. 그러나 난민 단체인 CBRC의 모습은 초라하기 그지없었다. 16.5㎡(5평) 남짓한 작은 사무실에서 상근직원 3명이 일하고 있다. 재키스 카만다 사무국장은 “단체 운영이 어려워 별도의 수익사업으로 꾸려나가고 있다”며 2005년에 발간한 소식지를 건넸다. 네덜란드 정부의 후원이 끊어진 이후로는 소식지도 찍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남아공 경제중심지 요하네스버그의 난민사회협의체(CBRC) 사무실.
‘더 나은 아프리카를 위해 서로 사랑합시다’라고 쓰인 걸개그림이 벽에 붙어 있다. 요하네스버그 | 이청솔 기자


카만다는 2008년 대규모 유혈사태가 벌어진 요하네스버그 뿐 아니라 “이주민이 있는 곳이면 남아공 어디든 제노포비아(인종혐오) 범죄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토착 유권자들의 마음을 얻기 위한 정치인들의 선동이 이주민들에 대한 증오를 부추기는 요인이라고 설명했다. 수도, 전기, 보건시설 등 부족한 사회서비스에 대한 불만은 제대로 서비스를 공급하는 것으로 풀어야 하는데 마치 이주민들이 공공서비스를 ‘훔쳐가는’ 것처럼 오도하고 있다는 것이다. 카만다는 “저임금 일자리를 놓고 벌어지는 이주민들과 남아공 서민들의 경쟁을 생산적으로 풀기 위해서는 정부가 미숙련 노동자들의 기술교육을 책임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이주민들에 대한 남아공 정부의 태도는 ‘무관심’이나 마찬가지다. 콩고민주공화국 출신인 카만다는 1999년에 남아공으로 와 난민 지위를 인정받았지만 2003년에 기한이 만료된 신분증을 아직도 갱신하지 못했다. 7년동안 4차례나 재발급을 신청했지만 소용이 없었다는 것. 그는 “신분증이 없어 일자리를 구하기 힘들지만 정치범 신세라 고국에 돌아가지도 못한다”며 울상을 지었다.


요하네스버그|이청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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