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며]트럼프 없는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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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 국제칼럼

[아침을 열며]트럼프 없는 세상

by 경향 신문 2020. 11. 2.

세상이 시끄럽다. 전대미문의 전염병과 보조라도 맞춘 것일까. 미국과 중국은 하루가 멀다 하고 으르렁댄다. ‘중국 공산당’이라는 단어가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 입에서 나왔고, 중국은 “제국주의 침략에 맞선 정의로운 행동”이라며 한국전쟁까지 소환했다. 이대로 가다가는 ‘악의 제국’을 구소련에서 중국으로 대체한 007류의 영화가 다시 유행할 판이다. 미·중이 싸우는 틈바구니에서 러시아는 구소련 영광을 재현하려는 야심을 드러낸다. 우리는 어느 시대를 살고 있나.


난장판의 원흉으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목된다. 그가 ‘미국 우선주의’ 정책을 펴면서 끊임없이 중국을 압박하고, 코로나19 책임을 덮기 위해 중국 책임론까지 부각시킨 결과 미·중 갈등이 고조되고 세계가 시끄러워졌다는 것이다. 죄가 많다. 이란 핵합의 파기, 파리 기후변화협약 탈퇴, 일방통행으로 했다. 경찰국가를 자처했던 최강대국 미국 대통령이 오히려 기존 질서를 흩뜨리면서 혼란이 더 커진 것은 사실이다. 오죽하면, 유럽연합(EU) 외교정책 전문가들이 최근 모인 자리에서 “코로나19보다 ‘트럼프의 4년 더’가 두렵다”는 말이 나왔겠는가.


그러나 오로지 트럼프 때문에 세계가 이 지경이 됐다고 할 수 있을까. 트럼프만 없으면 세상이 좋아지는가. 다른 국가들에서 벌어지는 각종 사건·사고, 세계 곳곳에서 번지는 혐오와 차별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나. 복잡하게 얽혀 있는 혼돈의 실타래를 풀기가 너무 어렵고, 이대로 방치하면 그 끝이 어떻게 될지 직시할 용기가 없어 트럼프에게 모든 책임을 돌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트럼프 때문이야. 트럼프만 없어지면 돼.”


3일(현지시간) 미국 대선에서 트럼프보다는 상식적으로 보이는 민주당 대선후보 조 바이든 전 부통령이 당선된다면 국제사회는 덜 시끄러워질 것이다. 중국과 미국이 주고받는 험한 말의 수위도 낮아질 것이고, 한국을 향해 “방위비 더 내라”는 미국의 노골적 요구도 적어도 수면 밑으로 가라앉을 것이다. 국제무대에서도 기행을 일삼던 트럼프가 없어질 경우 유엔 등 각종 다자회의에서 가십이 만들어지는 일도 줄어들 것이다. 하다못해 국제부 기자들도 트럼프 트위터를 체크하느라 밤늦게까지 신경을 곤두세울 필요는 없겠다.


그럼에도 ‘트럼프 있는 세상’과 ‘트럼프 없는 세상’은 다를 것이 없다. 무엇보다 미·중의 패권전쟁은 그대로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중국몽에 맞서 ‘아시아로의 회귀’ 정책을 펴면서 미·중 갈등은 수면 위로 떠올랐다. 중국 반발을 부른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도 오바마 전 대통령 때 결정됐다. 오바마 행정부 외교정책에 깊이 관여했던 바이든이라고 다를 게 없다. 정치적 필요에 따라 타협도 서슴지 않던 트럼프와 달리 바이든은 중국 문제에 대해 더 완고할 수 있다.


중국은 피해자인가. 미국의 전방위 압박에도 시진핑은 대국의 야심을 꺾지 않는다. 중국에서 시작된 코로나19로 전 세계가 고통받고 있지만, 미안한 기색은 없다. 오히려 중국이 코로나19를 선도적으로 극복했다는 체제 선전은 주변국의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코로나19 책임론을 제기한 호주 등 몇몇 국가에는 가차 없는 무역보복을 가했다. 티베트와 신장위구르 등 소수민족 인권탄압에 대한 전 세계적 비판에도 아랑곳없다.


이 세계의 ‘문제아’들은 넘쳐난다. 블라디미르 푸틴의 러시아는 구소련 시절을 그리워하는 듯 시리아 내전, 아르메니아와 아제르바이잔 전쟁 등에 개입하며 영향력 확대를 노린다. ‘톨레랑스’의 나라 프랑스도 갈등의 중심에 섰다. 에마뉘엘 마크롱 행정부가 이슬람 극단주의자의 범죄를 고리 삼아 이슬람 전반에 대해 강경정책을 펴면서 이슬람 국가들과 부딪치고 있는 것이다. ‘오스만튀르크’의 영광을 재현하겠다는 터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의 행태는 또 어떤가. 세계 곳곳에서 혼란들이 겹쳐지면서 북한 핵 문제가 뒷전으로 밀려날 정도다.


세상이 이렇게 엉망진창이다. 하여, ‘트럼프만 없으면 돼’라며, 트럼프 재선 실패를 고대하는 것 외에 아무것도 하지 않겠다는 심산이라면 그건 낙관적이다 못해 위험하다. 강대국의 폭주와 패권대결에 제동을 걸고, 세계 곳곳에 만연한 혐오와 차별에 대응하기 위해 무엇이든 해야 한다. 패권국가에 맞선 중소국의 연대든, 평화를 고리로 한 세계 시민사회의 연대든. 뻔한 해법이라고? 몸부림이라도 쳐봐야 하지 않겠는가. 세상은 갈수록 위험천만해지고 남은 시간은 별로 없다.


<이용욱 국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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