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전만 해도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거칠 게 없었다. 2017년 10월 공산당대회에서 연임해 집권 2기를 열었고, 다섯 달 뒤 두 번, 10년만 할 수 있는 주석 임기제를 폐지했다. 주석은 임기가 있고, 황제는 임기가 없다. ‘시 황제’의 등장이었다. 헌법에는 ‘시진핑 사상’을 집어넣었다. 잠재적 경쟁자들은 집권 1기 때 사정의 칼날로 정리해둔 상태다. 권력의 정점에 시진핑이 있고, 지배사상에도 시진핑이 있다. 2010년 일본을 제친 세계경제 2위, 2030년 미국을 추월한 경제최강국, 2050년 군사력이 뒷받침된 세계 최강국. 20년 주기로 도약해 ‘중국몽(중화민족의 부흥)’을 그의 손으로 만들고 싶어했을 것이다.


시진핑이 가려는 길 앞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서 있다. 트럼프가 무역 문제를 건드릴 때만 해도 이런 상황이 전개될 줄은 몰랐을 것이다. 지난해 중국의 대미 수출은 수입의 5배다. 중국이 미국산 수입량을 늘려 미국에 어느 정도는 적자폭을 줄여주고 싶어도 워낙 격차가 크다. 지난해 12월 양측이 휴전을 선언하고 류허 부총리의 주도로 협상해 초안까지 마련했다. 그런데 시진핑이 “내가 책임지겠다”며 뒤집으면서 상황은 순식간에 변했다. 트럼프의 격앙된 반응은 예상됐던 바다. 시진핑이 작심했다는 얘기다. 


무역전쟁이 다시 격화된 이후 시진핑이 장시성 위두현을 찾아갔다. 1934년 국민당군에 포위된 홍군이 370일에 걸쳐 8400㎞를 이동한, 대장정의 출발지다. 시진핑은 “지금 우리는 새로운 대장정을 시작하고 있다”고 말했다. 2019년 대장정은 미·중 무역전쟁의 승리를 위한 길임을 해석하기 어렵지 않다.


시진핑은 왜 판을 엎었을까. 물론 합의 내용이 만족스러웠다면 그랬을 리는 없다. 지난 10일 워싱턴 고위급 무역협상 결렬을 확인한 류허 부총리가 “원칙 문제에선 절대로 양보할 수 없다”고 했지만, 이번 협상은 애초에 중국의 양보를 전제로 진행됐다. 미국에 최대한 적게 내주고 상황을 봉합하는 게 중국의 협상 목표였을 것이다. 트럼프는 “중국이 최근 협상에서 너무 심하게 당하고 있어 2020년 대선까지 기다리는 게 낫겠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고 했다. 시진핑 입장에선 곱씹을수록 ‘너무 심하게 당할’ 합의는 늦더라도 최종 서명하기 전에 없던 일로 만들어야겠다고 여겼을 수 있다. 이는 국가적 자존심의 문제일 수도 있고, 여기서 미국에 굴복하면 ‘만년 2인자’밖에 안될 것이라는 걱정 때문일 수도 있다. 재선이 급한 트럼프가 협상 타결을 간절히 원할 테니 나은 조건으로 다시 협상할 수 있다고 판단했을 수도 있다.


힘과 힘의 충돌은 현실이 되고 있다. 트럼프 정부는 중국이 ‘중국제조 2025’라는 야심을 위해 자국 기업에는 보조금을 남발하고, 외국기업에는 기술이전을 강요하고, 지식재산권을 도둑질하는 등 불공정한 무역 관행이 일어나고 있다고 인식한다. 관세 폭탄으로 무역전쟁의 포문을 연 미국은 중국 기술혁신의 상징인 화웨이 공격으로 목을 죄기 시작했다. 여기에 중국의 환율조작 문제를 겨누고 있다. 미국은 1985년 일본의 부상을 눌러놓기 위해 엔화의 평가절상을 하도록 만든 플라자합의를 만든 전력이 있다.


시진핑은 어떤 길을 선택할 것인가. 관영매체들은 무역전쟁을 “중국 굴기의 마지막 관문이자 역사적 기회”로 본다. ‘중국몽’을 위해선 어차피 미국과는 맞붙을 수밖에 없었던 만큼, 지금을 기회로 삼자는 것이다. 무기는 ‘중국 특색 사회주의’다. 중국이 세계 2위의 경제대국으로 성장한 동력인 중국식 발전 모델은 여전히 유효한 카드로 여긴다. 실제 시진핑은 “애국주의의 본질은 애국, 애당을 견지하고 사회주의를 사랑하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외교부 대변인도 나서 “무역전쟁을 원하지 않지만 전쟁을 건다면 끝까지 상대해주겠다”고 말했다.


밖으론 ‘할 테면 해보라’ 식의 자신감이 충만하지만 내부에선 불안감이 엄습한다. 급격한 경제성장으로 나라에는 막대한 부가 쌓였지만 ‘중국 특색’ 이름으로 자유와 인권을 억누르고 노동자의 희생에 기댄 모델은 극심한 양극화를 낳았다. 계층 간, 지역 간 불균형은 중국 사회의 내재된 갈등 요소다. 


무역전쟁의 불투명한 전망은 중국몽이 안갯속에 빠지는 것만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시진핑의 정치적 미래와도 직결된다. 공산당이 통치 정당성을 가지며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경제적 성과였는데 무역전쟁에 따른 경제 하향, 인민생활의 어려움이 깊어질 경우 그 정당성은 흔들릴 수밖에 없다. 절대권력자 시진핑에게 책임을 묻게 될 것이다.


미·중 정상이 한 달쯤 뒤에 일본 오사카에서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를 계기로 만난다. 당초 무역전쟁의 종전 선언장으로 예상됐던 이 만남에 전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안홍욱 국제부장>

Posted by KHro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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