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은 바이든 대북정책을 환영할 때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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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 국제칼럼/유신모의 외교 포커스

아직은 바이든 대북정책을 환영할 때가 아니다

by 경향 신문 2021. 5. 21.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는 최근 공개한 새로운 대북접근법을 ‘조정된 실용적 접근’이라고 표현했다. ‘완전한 비핵화’를 최종목표로 ‘외교적 방법’을 통해 북한의 핵위협을 ‘단계적으로 감소’시키는 방법이라는 점에서 실제 내용은 단계적 접근법이다. 새로운 것은 아니다. 그동안 북핵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시도됐던 외교적 해법의 대부분이 단계적 접근법이었다. 1994년 북·미 제네바기본합의나 2005년 6자회담 참가국의 9·19 공동성명이 대표적이다.

 

단계적 접근법에는 긴 시간이 필요하다. 이행 과정에서 정권 교체와 같은 국내 정치적 환경 변화가 일어나기 때문에 장기적으로 흔들림 없이 추진하기도 어렵다. 하지만 시작하기가 쉽고, 일단 시작하고 나면 외교적 노력이 진행 중임을 내세워 정치적 비판을 피할 수 있다는 게 장점이다.

 

단계적 접근법은 첫 단계부터 하나씩 밟아나가 최종목표에 도달하도록 설계되지만, 실제로 ‘걸어서 하늘까지 가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그 과정을 모두 이행하겠다는 것은 아니다. 긴 과정을 거치는 동안 돌발 변수로 인해 의도치 않은 해결이 이뤄질 수도 있음을 기대하는 것이 단계적 접근법이다. 제네바합의는 경수로 건설이 완성단계에 이르고 북한에 대한 특별사찰이 시작되는 ‘진실의 순간’이 도래하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계산하고 그 기간 동안 북한 정권이 붕괴할 수도 있을 것이라는 기대 속에 시작된 여정이었다. 9·19 공동성명 역시 핵활동 동결·신고·검증·폐기 등의 긴 과정을 거치면서 작은 주고받기를 하는 동안 신뢰가 쌓여 ‘큰 거래’를 하게 되거나, 북한에 내부적 변화가 일어나는 등의 외생적 변수를 염두에 두고 있었다.

 

이런 단계적 접근법은 ‘핵개발 계획을 가진 북한’을 다루던 방식이다. 핵무력 완성 단계인 지금의 북한과 협상하기에 적합하지 않을 뿐 아니라 북한의 핵능력 지위를 강화시켜줄 위험성도 있다. 바이든의 단계적 접근법이 과거의 단계적 접근법과 다를 수밖에 없는 이유다. 실제로 바이든 행정부는 지금까지 있었던 모든 (실패한) 정책을 참고했다고 했다. 바이든 행정부가 ‘스텝 바이 스텝’이라는 표현을 꺼리는 것도 과거와 같은 방식의 단계적 접근법이 아님을 강조하려는 의도다.

문제는 ‘무엇이 다른가’이다. 바이든의 단계적 접근법은 작고 쉬운 것부터 시작해 점차 핵심적인 부분으로 다가가는 과거의 패턴에서 벗어날 것이다. 먼저 손을 대는 순서가 달라질 수 있다. 특히 북한의 핵능력이 미국의 안보를 위협하는 수준으로 커졌기 때문에 이를 제거하는 작업을 가장 먼저 시작할 가능성이 높다. 만약 미국이 이 같은 ‘프런트 로딩’에 무게를 둔다면 그것은 단계적 접근법이라고 말하기도 어렵다.

 

새로운 대북정책을 만들었다고는 하지만 원칙만 세웠을 뿐 산적한 문제가 남아 있다. 구체적인 세부 내용과 협상전략을 조율하고 이행 방안을 모색하는 가장 어려운 과정은 아직 시작도 하지 않았다. 장기간에 걸쳐 하나씩 이행해야 할 비핵화 단계와 로드맵을 모두 담은 ‘한 번의 완벽한 합의’를 목표로 할지, 아니면 우선 북한의 핵능력을 제한하는 의미 있는 초기 조치를 이끌어내는 데 집중할지 알 수 없다. 만약 의미 있는 초기 조치를 추구한다면 첫번째 타깃은 영변 핵시설인지, 장거리미사일 능력 제한인지, 현존하는 핵무기 감축인지 등을 정해야 한다. 또한 이를 검증할 방법과 북한에 어떤 반대급부를 어떤 순서에 따라 제공할지 등등을 세밀하게 조율해야 한다.

 

문재인 정부는 미국이 대북정책 원칙을 공개하자 즉각적으로 환영한다고 했다. 하지만 아직은 그런 평가를 내릴 단계가 아니다. 미국이 이 원칙을 실행에 옮기기 위한 구체적 전략을 채택하는 단계에 가야 비로소 한국의 입장에서 이건 좋다, 저건 곤란하다 등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오히려 지금은 환영보다 우려해야 할 부분이 더 많다. 겉으로는 한·미·일 공통의 의견을 강조하지만 정책을 주도하는 것은 미국이다. 그걸 단계적으로 하겠다는 것은 미국의 국익에 맞는 해법을 우선적으로 추구하겠다는 말과 같다.

 

지금은 같은 길을 걷고 있는 것 같지만, 실행단계에 들어가면 각국의 이해관계가 엇갈리는 지점에 곧 도달하게 된다. 지금은 모든 것이 불확실한 엄중한 시기다. 바이든 행정부 당국자 입에서 ‘싱가포르 합의’ 언급이 나온 것에 반색하면서 ‘싱가포르 합의를 계승하라는 한국 정부의 입장이 반영됐다’는 자의적 해석에 빠져 있을 때가 아니다.

 

유신모 외교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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