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는 데자뷔다. 일본이 한국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판결에 수출규제로 반발한 가운데 66년 전에도 한·일 간에 역사 문제가 통상 갈등으로 비화된 적이 있다. 바로 1953년 열린 국교정상화 교섭에서였다. 한국이 식민지배에 대한 배상을 요구하자 일본 측 수석대표인 구보다 간이치로는 “일본도 철도·항만에 대한 청구권을 말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만약 일본이 (한국에) 진출하지 않았다면 중국이나 러시아에 점령돼 더욱 비참한 상태에 놓였을 것”이라고도 했다. 격분한 이승만 정부는 즉각 일본과의 무역중단을 선언했다. 이른바 ‘구보다 망언’ 사건이다.


구보다 망언사건은 일본이 식민지배의 불법성을 부정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또한 이 때문에 불법성을 주장하는 한국과 갈등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도 시사한다. 이 문제는 한·일 양국이 타협할 수 없는 역사문제의 하나가 되었다. 이번 일본의 수출규제 사태의 본질도 여기에 있다. 법원이 1965년 한일협정에 따라 일본이 한국에 지불한 3억달러로 모든 청구권이 매듭되었다는 일본의 주장을 수용하지 않았고, 일본이 이에 반발해 일으킨 것이 이번 사태이기 때문이다.


물론 1953년의 한·일 무역분쟁과 수출규제 사태는 공통점 외에 차이도 있다. 무엇보다 양국의 위상이 크게 달라졌다. 일본은 여전히 동북아 강국이지만 한국은 무역대국으로 성장했다. 문제는 이런 현실을 일본이 인정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양국 갈등이 발생할 때마다 한국을 힘으로 윽박질러 해결하려 드는 태도가 여전하다. “국제정치의 본질은 권력(힘)”이라고 주장한 정치학자 한스 모겐소 신봉자가 아닌가 싶을 정도다. 그러나 그런 모겐소도 힘의 본질과 한계를 인식하고 협상 등 외교적 수단을 고수하라고 권장했다.


이번 사태를 돌아보면 과연 ‘준비의 일본’답다는 감탄이 절로 나온다. 경제와 안보 분야를 한국의 아킬레스건으로 간주하고, 이 분야를 포괄하는 반도체를 콕 집어 공격 대상으로 삼은 것부터가 용의주도하다. 반도체를 집중 공격하면 기업들이 비명을 지르고 한국 정부를 ‘종북’으로 몰아 무릎을 꿇릴 수 있을 것으로 계산한 것 같다. 특히 대북 문제는 한국과 미국의 보수 세력이 문재인 대통령에게 뒤집어씌운 이른바 ‘김정은 대변인’ 프레임을 염두에 뒀을 것이다. 과거 진주만 공습 1년 전부터 어뢰투하훈련을 했다는 나라이니 이런 정도는 약과일지 모른다.


하지만 일본의 스텝은 시작부터 꼬였다. 한국에 대한 ‘대북제재 불이행 의심국가’란 일본의 의혹제기는 1주일도 안돼 근거 없는 허위로 판명났다. 오히려 일본이 레이더 등 전략물자를 북한에 수출한 사실이 드러났다. 이에 따라 수출규제 명분은 무너지고 한국으로부터 국제기구의 대북제재 위반 조사를 받자고 역공당하는 처지에 몰렸다. 자유한국당의 ‘초당대처’ 방침으로 ‘종북몰이’도 큰 기대를 걸기 어려워졌다. 수출규제 조치가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을지 점점 더 불분명해지고 있다. 근거 없는 주장과 억지 논리의 끝이 드러나고 있는 셈이다.


일본이 간과한 대목은 더 있다. 국제사회는 정글 같은 곳이지만 동시에 이성과 상식이 여전히 통용되는 무대란 점이다. 역사를 통상 문제와 엮는 것은 21세기 자유무역질서에 반하는 행동이다. 여태껏 자유무역을 주장해온 일본의 태도와도 모순된다. 따라서 이런 시도는 성공할 수도 없고 해서도 안된다.


현시점에서 일본의 한국 보복이 실패할 것이라고 결론짓는 것은 성급한 일이다. 비록 수출규제 명분이 약화됐어도 쉽게 물러서지 않을 것은 분명하다. 지금 일본을 지배하는 것은 ‘약속을 안 지키는’ 한국 정부를 혼내줘야 한다는 의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이 과연 가능한 일인지, 가능하다 해도 근본적인 해결책인지 진지한 고민이 필요하다. 한국은 66년 전의 만만한 국가가 아니다. 혹시 일본이 미국에 차이고 중국에마저 추월당해 구겨진 자존심을 세울 상대로 한국을 선택했다면 잘못 고른 것이라고 말해주고 싶다.


한국과 일본은 떼려야 뗄 수 없는 이웃국가다. 같은 아시아 경제 블록의 주요 국가로, 서로 부품과 완제품 제공국가로 종횡으로 얽혀 있다. 북한 등 동북아 안보 문제에 대해 협력해야 하는 관계이다. 더구나 관광과 한류 등 양국 민간 교류도 긴밀하다. 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인권이라는 보편의 가치를 신봉하는 동북아 ‘유이(有二)’의 국가들이기도 하다. 양국 갈등으로 인해 이런 소중한 공유자산을 훼손하지 않기 바란다. 이들 가치는 식민지배의 불법성 문제와 연계해 논의할 수도 있을 터이다. 특히 아베 총리가 이 대목에 유의했으면 한다. 일본 참의원 선거가 열리는 21일을 계기로 한·일 양국이 닫아둔 마음의 문을 열기 바란다.


<조호연 논설주간>

Posted by KHro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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