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읽기]미국 민주주의 위기와 한반도 평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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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 국제칼럼

[세상읽기]미국 민주주의 위기와 한반도 평화

by 경향 신문 2020. 11. 17.

200년 가까이 예외 없이 4년 주기 ‘제사(祭祀)처럼’ 치러온 미국 대통령선거가 끝났다. 78세 노익장을 과시한 조 바이든이 당선자가 되면서 도널드 트럼프의 파시즘적 폭정도 함께 멈췄다. 시나브로 트럼프 이야기는 과거시제(過去時制)가 됐다.

 

4년 전 이맘때 트럼프는 힐러리 클린턴을 이겼다는 선거결과를 믿지 못하겠다는 표정을 지으면서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워싱턴 비주류의 예상하지 못한 쾌거였다. 그로부터 4년이 지난 지금 미국은 지역적으로, 이념적으로, 경제적으로, 그리고 계층별로, 세대별로, 젠더(gender)에 따라 양분됐다. 부패 과두정(寡頭政)의 정점에 있던 트럼프가 주범이었다.

 

설상가상으로 패자가 승복 메시지를 내오던 전통을 트럼프가 불복하는 몽니를 연출, 대선 후 백악관의 광경은 그야말로 한 편의 ‘막장드라마’이다. 트럼프의 귀에 ‘다수에서 하나’라는 건국이념은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였다. 함량 미달의 망나니 함장이 미국호(號)를 제멋대로 끌고 왔던 셈이다. 트럼프는 미국 민주주의를 불태우고자 했던 일급 방화범이었다.

 

트럼프의 극우적 이념으로 촉발된 분열과 대립 그리고 증오심은 쉬이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앵글로·색슨 백인 프로테스탄트(WASP)는 미국 식민시대부터의 원초적 가치가 외부에서 유입된 ‘비프로테스탄적’이며 ‘비미국적’ 요인 탓에 변질되면서 자신들의 신분과 계층 변동에 극도의 경계심을 품었다. 인기영합주의 선동가 트럼프의 자극적이고 원색적인 용어는 이들의 좌절과 분노에 기름을 부었다. 여기에다 트럼프는 하층 백인 노동자들까지 우군화하는 데 성공했다.

 

애당초 트럼프 광신도들에게 ‘과학’과 ‘진실’은 사이비이자 거짓에 불과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파우치 박사와 레이 연방수사국(FBI) 국장을 백악관에 효수(梟首)해야 한다는 망언은 나올 수가 없었다. 바이든이 승리연설 일성으로 통합을 외친 이유는 결코 우연이 아니다.

 

바이든 임기 내 망가진 미국의 민주주의와 리더십을 완전히 원상 복구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게 중론이다. 자연히 트럼프와 김정은 간 진행되어 온 북·미관계의 속도도 저변속 기어로 바뀌게 될 공산이 커졌다. 충동적 트럼프의 한 방을 잔뜩 기대했을 김정은으로서는 현재 상황이 감내하기 힘든 충격이자 실망이겠지만 동맹파 시각에서 바이든 행정부의 등장은 비정상적 북·미관계의 정상화를 알리는 청신호이다.

 

사실 트럼프·김정은의 북·미 정상회담이 ‘솥 안에 풀어진 팥’이었다는 평가도 가능하겠지만 지금껏 한국의 미국 보기는 정치와 외교의 현상만 보고서 미국 전체를 파악하는, 말하자면 ‘시각장애인이 코끼리 만지기’식이었다. 미국 정치문명의 속살을 세부적으로 보지 않음은 물론 외교의 고갱이를 결정하는 국내 정치에 대한 얕은 이해와 섣부른 판단으로 남·북·미 관계를 근시안적으로 재단(裁斷)하는 우를 범했다.

 

바이든 시대에 ‘미국 우선’ 문구를 들을 기회는 줄어들겠지만 바이든이 직면한 국내외 상황은 녹록하지 않다. 북핵 문제가 대서양동맹 복원, 이란핵협정 복귀, 러시아와의 핵무기 감축 조약 연장 의제들보다 후순위로 밀려날 가능성이 높은 이유다. 이럴 경우 김정은이 내년 상반기까지 일체의 도발을 하지 않고 마냥 지켜만 볼지가 관건이다. 바이든 측으로부터 북한이 핵능력을 감축할 경우에도 북·미 정상회담이 가능한지 확약을 받은 후 이에 상응하는 구체적 보상 프로그램을 가지고 북한 신년 정책을 어떡하든 선순환 구조로 만드는 일이 문재인 정부의 발등에 떨어진 과제가 됐다. 망가진 미국 민주주의 탓에 한반도 평화마저 안갯속에 묻혔다.

 

이병철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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