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김정은 모두 서로에 대한 신뢰를 완전히 저버리지는 않았을지라도 비핵화가 순조롭게 실현되기란 힘들 것이다. 싱가포르 북·미 정상 회담은 A4 용지 두 장의 짧은 합의문이라도 있었지만 하노이 회담에서는 예정된 오찬마저 취소하고 합의문도 없이 헤어졌다. 산토사 회담은 성공했고, 하노이 회담은 실패했다. 어긋남은 이미 예견됐다. 북은 일관되게 단계적 비핵화를, 미국은 핵무기에다 생화학무기까지 포함하는 대량살상무기(WMD) 동결 내지 해체까지를 포함하는 비핵화를 요구했다. 다행히도 트럼프와 김정은은 헤어지면서도 애써 적의(敵意)를 감추려 했다. 어디서 틀어진 것일까.

 

미국은 북한이 요구한 ‘민수경제와 인민생활에 지장을 주는 항목의 제재’를 기본적으로 전면 해제로 간주했다. 그러면서 북한이 대량파괴무기를 직접 타깃으로 한 제재를 제외한 나머지 모든 제재를 해제해주는 조건으로 영변 핵시설의 일부를 폐쇄하겠다고 제안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북한은 자신들의 제재 해제 요구를 부분 해제로 인식했다. 영변에 대해서는 “다 내놓는다고 했다”고 주장했다.

 

정리하면, 북·미는 이번 회담에서 4개 축(軸)의 하나였던 비핵화 정의를 제외하곤 상호 연락사무소 설치, (종전선언을 포함하는) 평화체제, 북한 내 미군 유해 송환 등에 대해서는 상당한 의견 접근을 봤다. 다만 제재 완화와 관련, 상호 간 의견의 차이가 있었던 것이 가장 크게 부각됐다. 제재 해제 항목을 두고서는 북·미 당국뿐만 아니라 국내외 전문가들 간에도 견해가 엇갈린다. 북한은 특성상 인민경제와 군(軍)경제 간 경계가 모호하기 때문이다. 영변 핵시설의 폐기 범위를 두고서는 북한과 미국이 서로 상반된 주장을 펴고 있으며, 영변 이외 또 다른 장소까지 거론되는 것과 동시에 산음동 위성체 제작기지와 동창리 미사일 발사기지 복구 움직임 등으로 비핵화 협상은 더욱 꼬여가는 양상이다.

 

미국의 비핵화협상 목표가 ‘전부가 아니면 무(All or Northing)’로 굳어지는 느낌이다. 트럼프는 변심한 걸까? 아니면 처음부터 트럼프는 ‘원 샷 딜’을 일관되게 주장한 것인데 이를 북한과 한국이 오독(誤讀)한 걸까? 트럼프는 싱가포르 회담 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비핵화가) 20%에 이르면 되돌아갈 수 없는 시점이 올 것”이라고 했다. 영변과 미사일 발사 시험장을 포함해서 20% 정도만 해체돼도 북한이 요구하는 제재 해제를 해줄 수 있다는 해석이 가능한 발언이었다. 100%를 모르면서 20% 운운은 모순적이긴 해도 트럼프임을 감안하면 이를 전혀 이해하지 못할 것도 없다.

 

트럼프는 핵실험이 없는 한 비핵화 협상이 오래 걸려도 상관없다는 입장이다. 더 이상 로켓실험도, 핵실험도 없고 미국인 인질들과 미군 유해도 돌려받았다고도 했다. 하노이 만찬에서도 김정은이 로켓이나 핵실험을 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했음을 재차 강조했다. 트럼프로서는 김정은의 약속이 유지만 되더라도 만족할 것이라는 추론이 가능하다. 반면 북한은 무기력했고, 무기력한 만큼 비분강개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야밤에 기자회견을 할 이유가 없었다. 대미협상 경험이 많은 최선희 북한 외교부 부상은 “신년사로부터 시작해서 상응 조치가 없으면 새로운 길을 찾겠다는 입장도 표시했기 때문에 미국 측의 반응 보고 많은 생각을 하고 있다”고 일찌감치 한 자락을 깔았다.

 

그렇다고 북한과 미국 간 긴장이 단기간 내 고조될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양 정상이 겉으로는 좋게 헤어진 것이 나쁘지 않은 신호다. 북·미는 따라서 당분간 비핵화 협상의 종언을 고하는 관에다 대못을 박는 발언은 자제하면서 협상의 모멘텀을 모색할 것이다. 그럼에도 비핵화에 대한 북·미 양국의 극명한 인식 차이 때문에 북핵 문제가 단기간에 완전히 해결될 가능성은 영(零)이다.

 

낙관적 전망으로 코언 변수 등을 놓쳐 결과적으로 정보실패를 자초한 문재인 정부는 비핵화의 순류(順流)·역류(逆流)가 복잡하게 엉킨 불확실한 상황에서 ‘상상할 수 없는 걸 상상해야’ 하는 중대 도전에 직면했다. ‘상상할 수 없는 일들이 야기할 것까지 감안해’ 비핵화 전략을 정교하게 다듬어야 할 위중한 때다.

 

<이병철 평화협력원 부원장>

Posted by KHross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