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걱정거리가 된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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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 국제칼럼/김재중의 워싱턴 리포트

세계의 걱정거리가 된 미국

by 경향 신문 2020. 6. 17.

“지난 몇 년 동안 선거의 공정성, 사법부 독립, 부패 억제 안전장치에 대한 압박을 포함해 민주적 규범과 기준들을 훼손하려는 노력 때문에 문제가 더욱 심각해졌다. 언론, 법의 지배 그리고 민주주의를 떠받치는 다른 기둥들에 대해 대통령을 비롯한 정치 지도자들이 퍼부은 사나운 언어를 동원한 공격은 이 나라가 다른 정부들을 향해 핵심적인 인권과 자유를 지키라고 설득할 수 있는 능력을 훼손했으며, 오히려 독재자들과 선동가들이 적극적으로 악용하는 데 활용됐다.”


미국의 인권단체 ‘프리덤 하우스’가 지난 3월 발표한 ‘2020 세계자유보고서’의 한 대목이다. 이 단체가 심각한 어조로 평가한 대상은 남미나 동유럽, 혹은 동남아의 어느 나라가 아니다. 자유와 인권, 민주주의를 금과옥조로 내세우는 미국이 주인공이다. 미국 정부로부터 재정 지원을 받지만 독립적으로 활동하는 비정부기구를 자처하는 프리덤 하우스는 매년 전 세계 국가들의 자유와 민주주의를 점수로 환산해 순위를 매기는데, 미국 정부는 인권과 민주주의 후진국들을 압박할 때 프리덤 하우스의 평가를 자주 인용해 왔다.


민주주의의 후퇴 징후는 미국만의 현상은 아니지만 최근 벌어진 사건 몇 가지만 봐도 미국 민주주의가 세계의 걱정거리가 됐다는 말이 과장이 아님을 느낄 수 있다. 코로나19로 타격을 입은 미국에선 야당인 민주당이 오는 11월 동시에 치러지는 대선과 총선거를 앞두고 유권자들의 안전과 투표권 보장을 위해 우편투표를 확대하자고 주장하지만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여당인 공화당은 한사코 거부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위증 혐의로 기소된 자신의 측근 마이클 플린의 유죄 판결이 임박하자 ‘정치판사’가 편향적인 판결을 하고 있다면서 사법부를 수시로 공격한다. 심지어 윌리엄 바 법무장관은 플린에 대한 기소 취하를 일선 검사들에게 종용해 담당 검사들이 집단 사퇴했다. 그리고 예산 및 권한 남용과 부패를 감시하기 위해 행정 각부에 임명된 감찰관들이 트럼프 대통령의 심기를 거슬렀다는 이유로 줄줄이 잘려 나갔다. 흑인 남성 조지 플로이드가 백인 경찰관의 무릎에 목이 짓눌려 숨진 사건 역시 인종 차별 실태를 충격적인 방식으로 드러냈다. 이 사건을 항의하기 위해 워싱턴 백악관 근처에 모여 평화롭게 시위를 벌이던 군중을 군경이 무력을 동원해 진압하는 장면도 미국의 경계를 넘어 전 세계적 공분을 자아냈다.


미국인들은 ‘어쩌다 이 지경이 됐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면서 해법을 찾기 위해 애쓰고 있다. 최근 갤럽 여론조사에서 미국인이라는 것이 ‘극도로 자랑스럽다’거나 ‘매우 자랑스럽다’고 답한 비율이 2001년 이후 최저로 떨어졌다는 사실은 미국인들이 느끼는 당혹감의 한 단면을 보여준다.


해법은 단순하다. ‘민주주의의 후원자’를 자처한 그들이 그간 권위주의 국가와 민주주의 후진국에 해왔던 조언과 요구를 스스로 실천하면 된다. 앞서 인용한 프리덤 하우스 보고서에 나온 선거의 공정성과 사법부 독립, 부패 억제, 법의 지배, 언론 자유 확대를 비롯해 소수자의 권리와 평등 보장 같은 것들이다. 관건은 민주주의의 교사를 자처해온 미국이 민주주의를 배우는 학생으로 돌아가려는 겸손함과 유연성을 발휘할 수 있느냐이다.


<워싱턴 | 김재중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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