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통령 선거에 우리가 관심을 갖는 것은 초강대국 미국의 대통령이 누가 되느냐에 따라 우리 삶도 일정한 영향을 받는다는 엄연한 현실 때문이다. 하지만 세계가 유독 2020년 미국 대선에 많은 관심을 쏟는 것은 이런 현실적인 이유만은 아닌 것 같다. 기존 미국 대통령에게선 찾아볼 수 없었던 ‘독특한’ 국정운영 스타일로 미국을 두 쪽으로 나눠놓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할지 지켜보는 것은 어떤 정치 드라마보다 흥미를 자아낸다. 트럼프 대통령 재선을 저지하겠다고 나선 민주당 후보들이 벌이는 경쟁 역시 그 자체로 보는 재미가 쏠쏠한 데다 미국 정치 지형을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아직 초반이지만 민주당 경선 판세를 요약하자면 ‘원조 진보’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의 강세가 두드러진다. 미국 정치전문매체 리얼클리어폴리틱스가 최근 여론조사를 집계해 낸 평균치를 보면 샌더스 상원의원의 지지율 그래프는 지난 10일을 기점으로 조 바이든 전 부통령의 지지율을 뚫고 위로 올라섰다. 38세 신예이자 중도 성향인 피트 부티지지 전 인디애나주 사우스벤드 시장이 아이오와주와 뉴햄프셔에서 돌풍을 일으키며 샌더스 상원의원과 각축을 벌였지만 ‘뒷심’을 의심받고 있다.


샌더스 상원의원의 강세와 비례해 민주당 기존 주류층의 ‘걱정’이 도드라진다. 그가 민주당 후보가 되면 트럼프 대통령을 이길 수 없다는 ‘샌더스 필패론’을 제기한다. 샌더스 상원의원이 자처한 ‘민주적 사회주의자’라는 이념적 지향은 공화당 지지층뿐 아니라 민주당 지지층도 결집시킬 수 없다고 주장한다.


미국 언론과 민주당 주류가 샌더스 상원의원의 급진성을 부각시키며 필패론을 주장할수록 궁금증도 커진다. 샌더스 상원의원의 주요 공약인 국가 단일 의료보험 도입, 공립대 무상교육, 증세를 통한 복지재원 마련 등은 2016년 경선 때와 별반 차이가 없다. 샌더스 상원의원이 2016년에 이어 2020년에도 진보적이고 급진적인 공약을 앞세워 선전하는 동안 민주당 중도 진영은 무엇을 했을까? 시선을 ‘트럼프 이전으로의 복귀’에 고정시킨 나머지 살인적인 의료비와 주거비·교육비 등 미국인이 느끼는 문제를 풀 대안 제시에 게을렀던 것 아닐까?


민주당 주류에서 엿보이는 퇴행적 행태는 이런 의심을 강화시킨다. 경선 시작 직전 뛰어들어 막대한 재산을 뿌려대며 지지율을 쌓아가고 있는 억만장자 마이클 블룸버그 전 뉴욕 시장과 2016년 민주당 대선 후보였던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의 러닝메이트 아이디어까지 나왔다. 삼세판 가위바위보에서 두 번 연속 질 가능성이 높자 ‘오판삼선승제’를 하자고 떼쓰는 아이가 연상된다. 민주당 주류는 2016년에도 전당대회에서 클린턴 전 장관에게 표를 몰아줌으로써 표심 왜곡 논란을 일으켰다.


미국 정치분석가들이 조심스럽게 점치듯 샌더스 상원의원이 민주당 최종 후보가 될지, 그리고 트럼프 대통령에게 필패할 것인지는 아직 모르겠다. 하지만 샌더스 필패론을 열심히 설파하는 민주당 주류가 자기 혁신 노력을 게을리한다면 앞으로도 고전을 면치 못할 것은 확실해 보인다.


<워싱턴 | 김재중 특파원>

Posted by KHro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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