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과 미국 간 고위급회담이 연기된 가운데 기싸움이 심상치 않다. 협상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하기 위한 샅바싸움의 성격이 짙어 보이지만 양쪽이 내놓는 발언들의 수위를 보면 우려스럽다. 미국 자유아시아방송(RFA)은 지난 8일 미 국방부의 한 고위 관리가 북한이 완전한 비핵화를 계속 거부한다면 미국은 북한의 정권교체를 추진할 수 있다고 발언했다고 보도했다. 트럼프 행정부의 정책이 아니라 개인 의견이라는 전제를 단 데다 ‘완전한 비핵화’를 강조하기 위한 맥락으로 보이지만, 미국 정부 현직 고위 인사의 발언으로는 대단히 부적절하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거친 언사는 협상 상대를 불필요하게 자극할 뿐 아니라 트럼프 행정부의 대북정책 목표를 달성하는 데도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지난 6일 방북 일정을 마치고 귀국길에 오른 미겔 디아스카넬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을 평양국제비행장에서 환송하는 모습을 7일 조선중앙통신이 보도했다. 연합뉴스

 

북한도 마찬가지다. 북한의 입장을 대변해온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 기관지 ‘조선신보’는 지난 10일 “미국이 ‘서두르지 않겠다’는 표현으로 속도조절론을 주장하면서 현상유지를 선호한다면 구태여 대화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했다. 또 핵·경제 병진 노선의 부활을 언급한 북한 외무성 미국연구소장의 최근 논평을 거론하면서 “개인 판단으로 써낼 수 있는 구절이 아니다”라며 “경종이 울렸다”고 했다. 미국의 제재완화를 촉구한 발언치고는 수위가 높다. ‘핵·경제 병진 노선’ 부활은 핵을 완성했기 때문에 폐기하겠다던 내·외부 약속을 되돌리겠다는 모순적 발언일 뿐 아니라 북·미대화의 근간을 해칠 수 있는 내용인 만큼 기싸움의 수단으로 사용해서는 안된다.

 

이런 양측의 기싸움은 북·미 협상이 순탄치 않을 것임을 예고하는 것으로도 비친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중간선거가 끝난 뒤 ‘서두르지 않겠다’는 말을 여러 차례 반복했다. 협상 교착이 장기화되더라도 손해볼 게 없다는 태도다. 마이크 펜스 미 부통령은 지난 9일 워싱턴포스트 기고문에서 “북한에 대해 전례없는 외교적·경제적 압박을 계속 가해 나갈 것”이라고 한술 더 떴다.

 

큰 흐름에서 본다면 북·미 협상구도는 유지되고 있고, 이런 발언들도 ‘협상용’으로 분석된다. 하지만 양측 간 기싸움이 거듭되면서 감정의 골이 깊어지게 되면 협상 결렬이나 교착 장기화로 이어질 수도 있다. 더구나 국가 간 외교에서 선을 넘는 언사들은 언제든 협상을 파국으로 몰아갈 수 있다. 평창 동계올림픽 이후 8개월간의 북·미 협상 과정에서도 이미 경험했던 일이다. 올 상반기 양측이 쌓아올린 신뢰를 흔드는 상황이 이어지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북·미 양측은 더 이상의 기싸움을 멈추고 조속히 대화로 복귀해야 한다.

Posted by KHro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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