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핵 문제와 ‘글로벌 중추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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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 국제칼럼/김재중의 워싱턴 리포트

북핵 문제와 ‘글로벌 중추국’

by 경향 신문 2022. 5. 4.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지난달 워싱턴포스트 인터뷰에서 한 말 가운데 인상 깊었던 대목은 문재인 정부에 대해 “북한과의 관계에만 너무 많은 역점을 두는 바람에 글로벌 외교가 실종됐다는 지적을 받는다”고 비판한 것이었다. 그의 말대로 한국은 세계 10위 경제대국으로서 지역이나 이슈에서 외교의 지평을 확대하고 리더십을 발휘해야 하고 그렇게 할 역량도 갖췄다.

윤 당선인의 말은 북한과 군사적 대치를 계속하고 있는 한국이 처한 딜레마를 외면하거나 경시한다는 인상을 준다. 그가 목표로 내건 ‘글로벌 중추 국가’로 가기 위해서도 북한 문제는 풀어야 할 숙제이다. 말하자면 북한 문제는 한국이 피할 수 없는 ‘근본 모순’인 셈이다. 북한이 연초부터 가속페달을 밟고 있는 핵·미사일 문제는 윤 당선인이 취임과 동시에 직면할 도전 과제의 앞자리를 예약해둔 상태다.

특히 우크라이나 사태는 북핵 문제 대처와 해결을 더욱 어렵게 만든다. ‘조건 없는 대화’ 제의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호응을 이끌어내지 못한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의 대북 외교는 우크라이나 사태로 인해 우선순위가 밀릴 공산이 크다. 실제로 북한이 지난 3월 미국 본토에 도달할 수 있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발사를 재개하면서 미국이 암묵적으로 설정한 ‘레드라인’을 넘었지만 미국 내 여론의 관심과 우려는 북한이 ICBM 완성을 선언한 2017년에 비해 판이하게 낮았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북한의 ICBM 시험발사에 대해 제재는커녕 규탄 성명 하나 채택하지 못하는 상황은 느슨해진 국제 공조체제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북한의 핵·미사일 능력이 더욱 고도화될수록 비핵화로 돌아가기 위한 길은 더욱 멀어진다. 빅터 차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한국석좌는 최근 외교잡지 포린어페어스 기고문에서 미국이 유럽에서 벌어진 강대국 간 충돌에 매몰된 사이 북한의 핵·미사일 능력 고도화는 질주할 것이며 미국은 지난 30년 사이 가장 강력한 핵 위협에 직면할 것이라고 경고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바이든 대통령이 이달 말 방한해 대통령에 취임한 윤 당선인과 한·미 정상회담을 가질 예정이지만 중국 견제를 목표로 한 ‘인도·태평양 전략’과 미국에 발등의 불로 떨어진 반도체·배터리 공급망 강화 등의 의제가 북한 이슈보다 앞에 놓일 가능성도 엿보인다.

‘북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 및 평화체제 구축’이라는 스스로 설정한 목표를 미완으로 남긴 정권을 교체하고 북한에 대한 단호한 대응과 ‘힘을 통한 평화’를 앞세운 정권이 들어서는 이상 정책 변화는 불가피하다. 변화한 국제 정세와 환경을 반영할 필요도 있다. 그렇지만 윤 당선인이 지난달 월스트리트저널 인터뷰에서 한 발언을 보면 이명박 정부의 ‘비핵·개방·3000’을 답습할 것이란 우려와 비판에 힘을 실어줬다. 그는 북한이 비핵화를 위한 첫 조치에 나선다면 문재인 정부가 약속했던 인도적 지원보다 더 많은 인센티브를 제공할 것이라고 말했지만 현실에 대입하면 공허하다. 대화를 거부하고 핵·미사일 능력 고도화에 몰두 중인 북한을 비핵화 초기 조치로 이끌 구체적인 방법론이 빠져 있기 때문이다. 이 공백을 채우지 못한다면 글로벌 중추 국가라는 목표의 실현 역시 요원할 따름이다.

 

김재중 워싱턴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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